II-1. 문화이론

한국문화연구 10년을 평가한다(중대대학원신문, 2003.4)

김성윤 2005. 9. 30. 05:33

한국문화연구 지형도 다시 그리기 -① 문화연구, 10년을 평가한다
문화연구 자체가 문화적 진보는 아니다

김성윤 / 서울문화이론연구소 연구원


올해로 10년이 된 과학적 문화이론 연구는 일상에 만연한 자본주의 문화의 본질을 밝혀내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번 학술 기획은 한국문화연구 10년을 되짚어 그 성과와 방향성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글싣는 차례>
① 문화연구, 10년을 평가한다
② 일상에서 변혁을, 분과학문의 벽을 넘어
③ 한국문화연구의 미래 : 이데올로기와 욕망, 삶의 실천


97년.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발간을 기념하는 ‘오늘의 맑스주의’라는 심포지움에서 김세균이 발제를 끝마치자 토론자 강내희가 말문을 열었다. ‘본질주의적-환원주의적 총체성론’과 ‘탈중심화된 총체성론’ 사이에서 김세균이 변증법적으로 도출한 ‘중심성을 인정하는 비본질주의적-비환원주의적 총체성론’에 대한 것이었다. “김세균 선생은 본질주의와 환원주의로부터 벗어나려고 하지만 특정한 중심성을 여전히 인정하는 한, 사람들의 상상력과 같이 감수성에 관련된 문제는 여전히 설명할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1년뒤, 98년. 가칭 한국문화학회 창립을 위한 준비모임에서 서동진, 이재현, 손동수 등 문화평론가들은 강내희가 소위 ‘10매 비평’에 대해 비판적으로 지적한 것에 대해, 자신들의 작업은 단순히 비평적/담론적 개입이 아니라 실천적 개입으로 확대해석할 수 있는 운동적 활동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같은 해나온 <경제와 사회> 37호에서 손호철은 “다양한 포스트주의 문화이론과 담론이론의 지적 유행이 현실적인 정치경제적 문제들을 간과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했다.

문화적 맑스주의로의 전환

1983년부터 국내의 비판커뮤니케이션 연구자가 영국문화연구적 분석틀로써 ‘텔레비전 뉴스 담화의 이론적 고찰(김응숙)’이라는 논문을 제출했을 때부터, 문화연구의 적자 대우를 받곤 하는 <문화과학>이 창간 10주년을 맞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근 20년이 흘러왔다. 그동안 한국의 문화연구는 이 두 극한을 오락가락해왔다. 분명 계급 재생산의 기제로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의 문제가 거론되기도 했지만, 그에 반해 현실적으로는 소비에트의 실패로 인해 국가에 관한 담론은 대중들에게서 아예 자취를 감췄다.

사실 비판커뮤니케이션에서 문화연구를 원용했을 때, 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주된 연구방법론은 정치경제학적 틀이나 문화제국주의적 틀에 있었다.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토대-상부구조론 재해석이 받아들여지긴 했지만, 여전히 텍스트에 대한 비판적 해석이 주를 이루었다. 분기점은 문화연구가 10년에 가까운 맹아기를 거친 92년이었다. 이 시점을 고비로 문화연구의 방법론은 서서히 기호학/텍스트-재현체계 분석/민속지학 쪽으로 선회한다. 92년은 외부와 내부에서 각각 동구붕괴와 강경대 정국이 전개된지 1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리고 그해에 신세대담론이 유포되고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하면서 문화적 충격이 거세지는 등, 정세적으로 무엇보다 문화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했다. 그리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비판컴 내부에 침잠해 있던 문화연구가 외부로 확장했고, 마침내 91년 강내희의 ‘독점자본과 문화공간 - 롯데월드론’과 93년 현실문화연구의 <신세대, 네 멋대로 해라>를 필두로 담론 시장 전면에 문화담론이 배치되었다.

새로운 지적 기획이 필요했던 시점에서 이른바 유물론적 문화론을 내세우며 등장한 ‘문화과학의’ 문화연구는, 표상체계 등의 담론들을 신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문화적 맑스주의로의 전화를 진행해갔다. 계급의식을 본질적인 것으로 파악하곤 했던 구좌파와 대조적으로 알튀세르의 호명 테제와 상대적 자율성을 수용했고, 부르주아적 엘리트주의나 정전주의와는 다르게 유물론적 관점을 내세우며 이데올로기에 선행하는 계급투쟁을 동시에 인정했다. 물론 덕택에 <문화과학>이 역설적으로 이들 두 진영과 동시에 ‘싸워야’ 하는 제3의 길에 서게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일 것이다. 간혹 비평가들에 의해 ‘감성적인 문화를 이성화하면서 이론적 결락이 있는 독자들을 소외시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을 듣기도 했지만, <문화과학>의 정치적 진보와 문화적 진보를 동시에 노리는 행보로 인해 그만큼 문화연구자들에게 이론적 영향을 끼쳤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 <문화과학>이 문화좌파를 표방하는 동안 새로운 경향이 발생했다. 국가론이 대중적 설득력을 잃게 된 시점에서 계급/이데올로기/계급의식 대신에 문화연구자들 사이에서 대중/욕망/감수성 등의 개념이 필수적인 사용어가 되었다. 마치 알튀세르의 우발성과 마주침만을 강조하고 실재하는 갈등을 통한 마키아벨리적 구성(constitution)이 가능할 수 있다는 의견제출에는 괄호를 쳐버린 것처럼, 문화연구자들은 점점 문화가 상대적 자율성이 아니라 절대적 자율성을 가진 것처럼 이야기하게 되었다. 단적으로, 저널리즘 문화비평이 푸코 등의 니체주의를 등에 업고 하나의 유행형식처럼 확산되었다.

물론 이들이 창비나 문지가 형성했던 상징권력의 독과점으로부터 탈각해, 신세대문학론과 연이은 문화담론으로 기존의 비평생산메커니즘에 균열을 낸 공로는 인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이 증면경쟁을 통해 필자에 대한 수요가 급해진 일간지나 주간지들과 결탁하면서 일종의 공모관계를 형성했던 것이 문제였다. 물론 이들은 나름대로 ‘이론의 빈곤’을 근거로 내세우며 실천의 양태로 저널리즘 문화비평에 종사했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그만큼 이론을 재구성하지 못했다는 점, 특히 맑스주의적 변혁이론을 재구성해내지 못했던 결과로 인해 중차대한 오류가 발생했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은 점점 무뎌져 갔고 급기야는 손호철의 표현대로 “현실적인 정치경제적 문제들을 간과하는 결과를 낳”고 만 것이다. 98년 이후로 구제금융 등을 겪으면서 문화담론은 마치 그것이 거품이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잠잠해진 요즘이지만, 여전히 정치적 진보와 문화적 진보 사이의 갈등은 여전한 것 같다.

일상문화에 대한 비판적 개입

물론 문화비평가들이 상대적으로 계급적 관점이 소원해진 탓에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이는 안이영노/김종휘/서동진/성기완 같은 평론가들이 실천을 우선적으로 강조하는 지점과도 맥락이 닿아 있는 부분인데, 바로 주체의 역동성을 믿기 때문에 저항의 의미를 과잉 부여하기까지 하면서 문화생산에 주목을 했다는 것이다. 실천이라 했을 때 계급적 실천보다는, 단순히 상징적 저항이라 하더라도 비계급적 실천에서 생산적이고도-생체권력적인 의미를 찾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문화연구에서 수용자의 주체적 역동성을 어느 정도까지라고 보아야 할까. 주체는 문화를 생산하는가, 아니면 유행형식으로 존재하면서 문화자본에 편입되는 것인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에 문화수용주체는 형식적으로 포섭된 존재인가, 아니면 실질적으로 포섭된 존재인가. 이런 의문들은 끊임없이 제기되어온 바 있다. 어쨌든 맑스주의와 니체주의, 이데올로기 비판과 욕망이론은 한번쯤 큰 충돌을 빚어야 할 것 같다. 이를 통해 맑스주의가 벌려놓은 대중적 거리감과 니체주의가 야기시킨 문화적 무기력증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