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1. 문화이론

우리에게 자발적 대중은 가능한가(중대신문, 2000.5.15)

김성윤 2005. 9. 30. 05:29

카치아피카스 방한 ‘유럽의 아우토노미아 운동’ - 우리에게 자발적 대중은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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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국내에 소개되어온 아우토노미아 운동은 우리에게 두가지 방식으로 읽혀지고 있다. 하나는 90년대 이후 침체되어온 변혁운동 ‘조직’의 새로운 대안으로서, 다른 하나는 개인과 국가라는 억압적 질서를 전복시킬 반(反)정치학으로서이다. 이러한 가능성을 떠안고 아우토노미아는 이미 우리나라의 부문운동과 적잖은 교접을 시도하고 있다. 이미 학생운동 진영의 일부는 꼬뮤니즘적 시도로서 아우토노미아를 주목하고 있고, 최근에는 페미니즘까지 구획적인 성정체성을 횡단하려는 기획 아래 이 운동과 접선을 만들고 있다.

80년대와 90년대를 넘나들며 운동에 ‘경험이 있는’ 세대라면 이 대중의 자발성이란 것에 대해 의심을 품을 만하다. 여태껏 우리는 대중의 자발적인 변혁시도를 경험한 적이 드물며, 게다가 전위로서의 오랜 경험 덕에 자발적인 대중의 그림조차 그리기 어려운 실정인지 모른다.
이런 찰나, 조지 카치아피카스의 내한은 일종의 청량음료와 같다. 이번이 두 번째 방한인 그는 지난 13일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와 ‘진보평론’이 공동주관한 “유럽의 아우토노미아 운동”이라는 콜로키움에 발표자로서 참석했다.

카치아피카스는 우선 유럽의 아우토노미아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을 볼 경우, “혁명을 위해 모인 자들도 있지만, 집이 필요해서 혹은 부모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과 같이 다양한 군집들이 형성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이론적 실천이 결여되어 있을 위험성이 있지 않은가. 물론 그렇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어떤 이데올로그도 필요 없다. 따라서 알튀세르가 발견했던 이데올로기로부터 언제나-이미 자유로울 수 있으며, 권력에 예속될 수밖에 없는 푸코적인 딜레마로부터도 벗어나 있다.

그렇지만 카치아피카스의 부연이 우리의 의구심을 완전히 씻기우지는 못한다. 아우토노미아 운동의 근간이 비조직에 있다고는 하지만, 핵발전 시설에 반대하고 건물을 불법적으로 점거하는 데에 어떤 추동력도 없었다는 것은 믿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카치아피카스의 말대로 아우토노미아가 “주변성의 힘”이라고 정의될 수는 있어도, 한국적 경험의 감정구조(structure of feeling)로서는 이 주변적인 힘마저 포괄·결집하면서 전략·전술을 수립하는 동작방식이 존재할 것이라는 의심이다.

이러한 의문이 떨어지자 카치아피카스는 “아우토노미아에는 여러 군집이 존재한다”는 전제를 상기시키며 “그 그룹 중의 일부가 선전작업의 일부를 떠맡을 수는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곧 이들의 회합방식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의 답변인 즉, “아우토노미아 참가자들은 하루에도 수십번씩 회의를 하기도 한다. 어떤 때는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 싸움으로 회의가 도배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토론의 주제 역시 전략을 수립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것일 수 있지만, 공동으로 물건을 구입하는 문제며 다양하기만 하다.” 그의 답변은 이들이 누구에 의해 계몽되거나 조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언하는 것이다.

아우토노미아가 자랑하는 ‘주변성의 힘’은 어떤 복수적이거나 몰적인 동작방식에 의존하지 않고, 이와 대비되는 단수적(singular)이며 분자적(molecular)인 초한적 추동력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궁금증은 여전하다. 그래도 뭔가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침잠되어 있는 것이다. 레이건이 독일에 방문했을 때 모였던 수만 군중이 정말 자발성에 의해서만 모였을까 하는 여전한 의심이다. 이에 대해 이날 콜로키움에 참가했던 윤수종 교수(전남대 사회학과)는 “우리가 이해하기 힘들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며 “서로(서구와 우리)가 가졌던 애초의 출발점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카치아피카스의 대답이 시원치 못한 것 역시 이 때문이다. 우리로서는 전혀 체득치 못한 ‘대중의 자발성’과 ‘전위의 부재’에 대한 무경험이 가져오는 평행선인 것이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변혁운동이 아우토노미아 운동을 수용할 때 이 부분이 가장 맹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당장에 아우토노미아가 우리에게 체득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유럽과는 달리 부문운동간의 네트워크적인 횡단적 가로지르기가 부재했던 탓이다. 가령 우리의 변혁노선은 IMF 당시 노숙자들이 서울역을 ‘점거’했을 때, 연대활동은 물론이고 어떤 설득적인 비전조차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의 노동자들 역시 전위-대중의 이항적 구도를 깨뜨리기에는 ‘사회적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이 성숙되지 못하였기는 매한가지이다.

그러나 카치아피카스의 방한과 이를 둘러싼 쟁점의 발산은 분명 우리를 새로운 경험의 장으로 유도하고 있다. 아우토노미아 운동이 우리에게 체득, 그야말로 몸으로 닿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눈에 점점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김성윤 기획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