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남북한 사회통합 모델의 새로운 모색(윤인진)
*본 논문은『아세아연구』제44권 1호(2001년): 199-228에 게재되었다.
*http://www.nkhumanrights.or.kr/volunteer_edu_program/lecture/6th/3rd_97.hwp
남북한 사회통합 모델의 새로운 모색
윤인진(고려대학교 사회학과)
요약문
이 논문의 주요 목적은 남북한의 사회통합에 관한 국내 학자들의 기존 연구를 검토하고 기존 연구의 접근방법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평가하는데 있다. 아울러 기존 연구들이 주로 독일, 베트남, 예멘 등의 분단국가들의 통일과 사회통합경험에 기초하기 때문에 접근방법과 시각이 제한되었던 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캐나다와 같은 다인종?다민족사회의 사회통합 원리로서의 다문화주의를 소개하려고 한다. 비록 캐나다와 한국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은 다르지만 다문화주의의 원칙과 접근방법들은 기본적으로 다문화 사회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통일한국의 사회통합의 비전을 형성하는데 시사점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사회통합의 방식은 남북통일이 누구의 주도하에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이 논문에서는 남한 주도하의 평화적 통일을 전제로 하여 통일 이후의 남북한 사회통합의 모델을 모색하려고 한다.
남북한 사회통합은 남북한 주민들이 통일된 정치?경제체계 내에서 공통의 민족정체성과 애착을 형성하고, 서로의 문화, 사상, 가치, 생활양식 등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사회의 기회구조에 공평하게 참여하고 혜택을 받으며, 상호 의존적이고 협력적인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이다. 남북한 사회통합에 이르는 조건들로는 첫째,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도 공통의 핵심 가치와 상징에 기초하여 민족적 화합과 일치를 추구하는 가치와 사상이며, 둘째, 출신지역에 의한 차별 없는 형평한 기회의 보장, 셋째, 사회통합을 실현하려는 정부의 강력하면서도 효과적인 정책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남한이 통일 후 사회통합을 주도하려고 한다면 정치, 경제, 이데올로기, 사회복지 등의 측면에서 북한출신 주민들을 포용할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한 역량은 하루아침에 길러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부터 통합역량을 증진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우리 사회의 사회약자층과 소수자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고, 지역, 성, 인종/민족, 계층에 따른 불평등체계를 개선해서 누구나 사회의 기회구조에 형평하게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통일을 준비해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자체가 보다 성숙한 선진사회로 발전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I. 서론: 통일에서 통합으로
1. 남북정상회담의 의의
한반도의 분단 이후, 남한과 북한은 통일에 대해 서로 다른 비전과 계획을 수립하고 발전시켜 왔다. 비록, 명칭이나 내용의 측면에서 양측의 통일 계획은 변해왔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남한이 기능주의적인 접근을 취했다면 북한은 연방주의적 접근을 취해왔다(임혁백, 1992: 45; 조휘각, 1999: 87). 남한의 기능주의 통일방안은 비정치적 분야에서의 교류 확대를 통해 남북한간에 신뢰와 기술?경제적 상호의존관계를 확대하고 나아가 정치 영역에서도 협력을 증진시켜 정치통합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반면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은 정치, 군사 문제의 일괄타결을 먼저 이룬 후 경제 및 문화교류를 하자는 것이다. 즉 연방제라는 정치공동체 또는 국가통합을 먼저 이루고, 그 연방국가의 지도력과 시민사회의 자발성에 의해 교류?협력을 증가시켜 경제, 사회, 문화부문에서 민족공동체를 성취하고자 한다(강정구, 1996: 217).
남북한의 통일정책에 있어서 또 하나의 경향은 서로 간의 관계에 있어서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측이 보다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입장을 취하는 반면, 수세적인 위치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는 측은 방어적이고 폐쇄적인 정책을 견지했다는 점이다(임혁백, 1992: 52; 박기덕, 1995: 353). 남북한간의 경제복구 경쟁에서 적어도 1960년대까지는 북한이 우위에 있었고 북한의 비교우위는 통일문제에 있어서 북한이 남한보다 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게 하였다. 북한의 남북연방제 제안은 북한의 자신감을 반영하였다. 그러나 남한이 북한을 경제력에서 앞지르기 시작한 1970년대 초부터 교류?협력을 통한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하는 점진적?단계적 통일방안을 제시하기 시작하였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도 강자인 남한이 북한에 체제위협을 가하지 않으면서 점진적으로 북한으로 하여금 개혁개방을 하도록 하여 한반도에서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를 정착하려는 것이다.
통일에 대한 구상을 수정, 개선하려는 남한과 북한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양국은 55년간의 정체와 대립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는 양국 관계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특히 북한이 남한으로 하여금 받아들이기 어려운 전제조건을 고집해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반도 통일에 관한 남북 정상들의 2000년 6월 15일 공동선언은 분명 남북대화에서 획기적인 사건임에 틀림없다. 이번 공동선언의 가장 큰 의의는 55년간 지속되어 온 남북간 불신과 반목을 청산하고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여는 전환점이 되었으며, 남북관계 정상화의 기틀을 마련하였다는 것이다. 공동선언에서는 남북한이 현재 가지고 있는 통일 방안이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였으며 그러한 합의에 기초하여 통일을 추구할 것임을 선언하였다.1) 동시에 공동선언의 첫 항목에서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한다”라고 선언하였듯이 양국의 주체적인 의지와 능력으로 통일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사실을 국제사회에 천명하였다.
그러나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강대국들은 우리에게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은 겉으로는 정상회담의 성공을 환영하고 한반도의 긴장완화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속으로는 새로운 역학 구도형성으로 인해 자국의 국익이 어떻게 영향을 받을까 신경을 쓰고 새로운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추진한 세계 전략구도가 흐트러지는 난처한 입장에 있고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행정협정개정 등의 압력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한편으로는 한반도에서의 주한미군의 존속을 정당화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과의 외교적, 경제적 관계를 개선하여 북한을 미국의 영향력 안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이 중국식의 개혁정책을 택하도록 유도하고 북한과는 정치적으로 긴밀한 우호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남한과는 경제교류를 활성화하여 자국의 경제발전을 꾀하려 하고 있다. 러시아는 태평양 세력임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서의 정책실패로 상실한 자국의 영향력을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일본은 이번 회담에서 자신들이 소외되고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일본은 남북한이 통일되면 통일한국은 일본을 지역내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간주하게 될 것이며, 남한의 경제력을 뒷받침으로 미사일과 핵 프로그램을 보유하게 되면 이는 일본에 강력한 군사적 위협이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도 남북관계를 놓고 주변 강대국들의 입김과 영향력은 여전히 드셀 것이며 이들의 이해관계는 한반도의 통일 가능성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서독이 통일준비과정에서 그랬듯이 이들을 우리편으로 끌어들여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는 자주적인 역량과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2. 독일통일경험의 교훈
동유럽 사회주의권 붕괴와 구소련 해체와 같은 냉전체제의 종식과 맞물려 1990년 10월 독일이 통일된 후 11년의 시간이 지났다. 독일 통일에 대한 연구는 국내외에서 많이 진행되어 왔고 현재도 진행중이다. 동서독과 남북한간에는 현저한 역사적, 문화적 차이가 존재하지만 독일의 통일 경험은 지구상의 마지막 분단국가인 남북한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다음은 기존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독일통일의 시사점이다.
첫째, 제도나 정책의 통합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결국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점에서 사람들간의 통합을 고려해야 한다. 즉 경제, 정치 체제의 단일화는 동시에 사회, 심리적인 통합과정을 뒷받침 할 수 있어야 한다(김학성, 1992; 전성우, 1997; 전태국, 2000). 전 내독부 차관보였던 부르크하르트 도비에 박사가 진정한 통일은 국가체제의 통합만으로 달성될 수 없다고 지적하면서 심리적 측면의 통합문제를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처럼 단순히 체제의 통합은 바로 사람의 통합으로 이어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홍성균 외, 1993). 그는 독일이 국가간의 통합은 이루었지만 내적 통일은 진행형임을 말하는데, 동서독 주민들의 문화, 역사, 언어 등의 동질성만을 쉽게 믿고 시작한 통합과정은 동독주민들의 적응 어려움으로 훨씬 악화되어 나타나고 있으며, 서독의 법과 체제의 일방적인 동독 이전은 문제가 있었다고 말한다. 남북한은 독일의 경우와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겠지만 통일을 준비할 때 북한주민들의 적응 그리고 남북주민들의 통합을 위한 노력에 초점을 둘 필요가 있다.
둘째, 북한출신 주민들의 통합과정에서의 자발적 참여와 능동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서독은 동독출신 주민들의 잠재력을 활용하기 보다 오히려 이 잠재력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정책들을 시행한 결과 동독출신 주민들은 통일이후 ‘2등국민’이라는 열등감에 빠지게 되었다(전태국, 1998; 유팔무, 1999). 이 열등감과 자괴감은 쉽사리 치유가 안되고 있으며 사람의 통합을 위한 통일이 오히려 사회해체라는 결과를 낳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동서독의 경우를 보면서 북한출신 주민들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그들의 가치와 능동적 존재로서의 자아를 깨달아 갈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 이것은 자본주의체제가 사회주의체제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의 교정을 필요하게 된다. 즉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모두 인간다운 삶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며 체제 자체의 장단점은 인정하되 우리와 다르다고 사회주의체제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을 근본적으로 ‘경제적 존재’로 보는 자본주의와는 달리 ‘공동체적 존재’로 보는 사회주의2)는 오히려 자본주의의 경제논리로 인한 약점들을 보완해줄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으며, 동독출신 주민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북한출신 주민들 역시 자신들의 가치를 추구해왔다는 점에서 남북한 통합과정에서는 북한의 자율적인 변혁의 가능성을 그들에게 열어줘야 한다.
셋째, 동서독의 꾸준한 교류와 접촉을 주목해야 한다. 서독의 전 수상이었던 브란트의 동방정책으로 동서독은 1972년에 기본조약을 합의할 수 있었는데 이 조약을 바탕으로 동독과 서독의 유엔 동시가입, 국제적인 외교자주권 인정, 상호불가침 등을 합의할 수 있었다. 국민생활의 불편을 줄이기 위한 실질적인 정책의 일환으로서 경제, 체육, 문화, 언론, 환경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꾀하였다. 베를린 장벽이 설치된 후에도 이산가족이나 친척의 방문은 보장되었고 1964년 이후에 동독의 연금수혜자가 서독을 방문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이러한 동서독의 인적교류는 통일 직전까지 1천만 명에 이르렀으며 서독정부가 정치와 인적 왕래를 분리시킨 실용주의적 접근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국민의 신뢰를 얻어낼 수 있었으며 동독과의 절충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이러한 독일의 꾸준한 인적교류는 후에 급변하기 쉬운 국제환경 속에서도 주체적으로 통일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자신감이 되었는데 남북한 역시 주위 강대국의 영향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지역적 환경 속에서 서로간의 신뢰야말로 통일의 바탕이 됨을 인식한다면 경제, 정치적 요소와는 별개의 인도적인 인적교류가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한반도에서 통일의 후유증과 사회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통일에 대한 구체적인 대비가 필요하다. 그런데 통일에 대한 구체적인 대비는 원초적인 동포애로서 막연히 통일을 열망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통일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때 시작된다. 그동안 남한사회에서 논의된 통일방안의 주된 흐름은 남한 주도하에 북한을 흡수통일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994년의 김일성 사망 후에도 북한체제가 큰 동요 없이 유지되는 것을 발견하고, 서독이 통일 이후 엄청난 통일비용으로 인해 후유증을 겪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흡수통일의 문제점이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현재는 독일이 경험했던 ‘선통일 후통합’의 방식이 아니라 그것을 역순으로 이루는 ‘선통합 후통일’의 방안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선통합 후통일’의 방안은 우선 남북한이 부문별로 서로 통합가능한 지점들을 찾아내어 점진적인 통일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상호합의 하에 단계적으로 실천해나가다가 적절한 시기가 오면 대등한 위치에서 통일을 이룸으로써 통일비용과 통일 이후의 후유증을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반세기가 넘도록 각기 다른 체제에서 상이한 의식과 삶의 경험을 겪어 온 남북한이 정치경제적 통일을 이루고 사회문화적 통합을 이루는 과정이 순탄하지 않은 것은 자명한 일이다. 비록 남북정상회담이 남북한 교류와 협력의 물꼬를 텄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인 교류와 협력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산재해있다. 또한 언제 북한이 지금의 화해분위기에서 예전의 ‘벼랑끝 외교’로 전환해서 남북관계를 대립구도로 몰아갈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이 일회성의 만남에서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상호 신뢰와 교류, 상호 의존관계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3. 통일에서 통합으로
원론적인 수준에서 통합이란, 특정한 사람이나 집단들이 단일한 체제에 속해서 소속감을 공유하고 상호간의 유대관계를 발전시키는 과정으로 정의될 수 있다(Deutsch, 1978: 198). 통합이란, 단지, 정치나 법적인 수준에서의 체계통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통일은 기본적으로 정치적 통합을 의미한다), 국가정체성, 생활방식에 대한 공통의 가치체계, 교육 등에서의 사회통합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통일이 일회적이고 이분법적인(예컨대, 통일되었느냐 아니냐의) 현상이라면, 통합은 정도의 문제로서 통일에 선행하며, 동시에 그 이후에도 지속되어야 하는 과정의 성격을 지닌다(이문규, 1988; 최협, 1992; 장경섭, 1995). 이같은 이유로 인해, 통합은 통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상위의 개념으로 간주되며, 국내 연구자들도 통일보다는 통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사고의 변화를 반영하듯, 남북한 통합에 대한 다양한 개념과 접근방식들이 제기되고 있다. 예컨대, “사회적 통합”(전성우, 1995; 이온죽, 1997)”, “문화통합”(오기성, 1998), “내적통합”(전태국, 2000), “사회문화적 통합”(김경웅, 1995; 조한범, 1998), “사회경제적 통합”(이상목, 1998), “심리적 통합”(차재호, 1993), “내적통합”(전우택, 2000), “문화공동체”(김창순, 1995), “사회문화적 공동체”(윤덕희?김도태, 1992), “민족 공동체”(윤여령, 1998) 등이 통합의 문제와 관련돼 제시되는 다양한 생각과 접근 방식이다. 우리의 연구관심이 과거 통일관련 논의에서 지배적이었던 정치, 국제관계, 경제 분야 등을 뛰어 넘어, 사회, 문화, 심리, 생활 세계의 영역으로 확대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통합의 개념을 확대하고 더욱 풍부히 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더 다양하고 창조적인 사고와 비전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그러나, 통합과 관련된 현재의 논의들은 다소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다. 통합의 첫 번째 조건으로 남북한의 문화 및 가치체계의 동질화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동질화의 필요성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보인다. 즉 남북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면 또 다른 이들은 통합이 사람들의 가치나 태도변화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에게 평등한 시민적 권리와 자격을 보장하는 일에서 시작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통합을 위한 조건들의 우선순위와 조건들간의 상호관계에 대해 명시하지 않은 채 통합에 대해서 상이하고 때로는 대립적인 주장들이 제시되면서 현재의 통합담론은 교착상태에 빠진 듯하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한 단계 높은 수준의 학문적 논의를 위해서 통합에 대한 기존의 논의들을 통합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비판적인 관점에서, 본 논문에서는 국내 학자들에 의해 진행된 남북한 통합에 대한 논의들을 검토하고 정리해 보려고 한다. 또한 본 연구자는 기존의 시각과 접근 방식을 비판적으로 평가한 후, 아직 한국의 학계에서 충분히 검토되지 못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여기서 소개하는 새로운 시각은 문화적 다원주의로서 이는 다인종, 다문화 사회인 캐나다,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및 서구 유럽사회에서 발전된 시각이다. 비록, 그들 사회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이 우리와 다르긴 하겠지만, 문화적 다원주의의 원칙과 메커니즘은 통일 한국 시대의 사회통합을 위한 구상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통일 한국사회는 기본적으로 지역, 계급, 사고방식, 가치관, 생활양식 등에서 다원화 사회가 될 것이다. 현재 남한사회의 획일적이고 배타적인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으로는 다원화 사회를 이끌어갈 수 없다. 이때 캐나다와 같이 인종, 민족, 문화적으로 다원화된 사회의 사회통합 원리로 작동하고 있는 다문화주의의 특성, 메커니즘, 성과 및 문제점을 연구하여 남북한 사회통합을 준비하는 것은 중요한 의의를 가질 것이다.
II. 사회통합에 대한 기존 연구
1. 서구의 사회통합연구
통합이론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나타난 국가간의 통합이라는 국제적인 현상을 대상으로 연구가 시작되면서 개발되었다. 전쟁이나 폭력이 아닌 평화적인 절차를 통해서 민족국가의 경계를 넘어 유럽공동체와 같은 국가들간의 협력체가 형성되어 가는 현상을 설명하면서 통합이론이 발달하였다. 분석수준에서 통합연구는 단일국가 내부의 통합인 국가통합(national integration)과 둘 이상의 국가들간의 통합인 지역통합(regional integration)으로 나뉘어진다. 그리고 연구의 초점에 따라서 통합의 조건과 요인을 연구하거나 또는 통합과정을 연구하는 것으로 나뉘어진다.
국제정치학에서 “통합이란 여러 부분들을 하나의 전체로 구성하게 하는 것 또는 상호의존(interdependence)을 산출한다”고 정의되고 있다(Nye, 1968: 858). 다원론적 통합이론을 발전시킨 도이치(Deutsch, 1957)는 통합을 이전의 분리된 단위들이 하나의 결합된 체계의 구성요소들로 전환시키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그러나 그는 후에 통합의 의미를 안전공동체(security community)의 조건과 연결시켰다. 즉 한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일정한 영역 안에서 장기간에 걸쳐 ‘평화적인 변경’이 가능하다고 믿을 수 있는 기대를 약속 받는, 가장 강하고 광범위한 공동사회의 의식, 제도 및 실제를 달성하는 조건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이온죽, 1997: 24).
신기능주의 통합이론을 발전시킨 하스(Hass, 1958)는 유럽 통합 연구와 관련하여 통합의 결과적 조건보다는 단위 국가들이 국가간 갈등 해소의 기법을 습득하면서 주권 국가임을 중지하고 인접 국가들과 융합?병합?단합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에 의하면 통합은 몇 개의 서로 다른 국가의 정치행위자들이 그들의 충성심과 기대 및 정치적 활동을 기존의 관계되는 민족국가들에 대한 관할권을 갖고 있거나 요구하는 새로운 중심으로 이전하도록 설득하는 과정이다. 즉 서로 상호관계를 갖는 국가군들이 국제기구를 통하여 상호관계를 증진시켜 국제기구와 국가군들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선을 점차 무의미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합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이문규, 1988: 13).
연방주의적 관점을 견지하는 에치오니(Etzioni, 1965)에 따르면 통합은 무력수단의 사용에 대한 효과적인 제도적 권위를 지니게 될 때 이루어지며, 공동체를 구성하는 단위가 상호간의 유대를 강화하는 과정에 의하여 효율적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자원과 보상의 분배를 좌우하는 의사결정 중심을 형성하여 대중적인 정치적 일체감을 지니는 우세한 구심점을 가진 상태를 통합공동체로 간주할 수 있다고 한다.
통합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을 한 와이너(Weiner, 1966)는 통합을 문화적으로 또한 사회적으로 분리된 집단들을 하나의 영토적 단위로 결합시키고 국민적 정체성을 확립시키는 과정으로 보았다. 이러한 의미에서 통합은 (1) 사회문화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집단들을 하나의 영토적 단위로 결합시키고 국민적 정체 의식을 확립하는 과정, (2) 특정 사회 집단이나 역사적 정치 단위들에 대한 불일치를 느끼는 하위 단위 혹은 지역들에 대하여 국가의 중앙적 권위를 확립하는 것, (3) 정부와 피지배자, 엘리트와 대중간의 간격과 갈등 가능성을 줄이고 연계를 이룩하는 과정, (4)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가치나 목표를 둘러싼 최소한의 합의를 얻는 것, (5) 공통 목표를 위해 조직화하려는 사회의 인민 능력과 관련하여 통합적 행동을 유발하는 것 등으로 이해될 수 있다(이온죽, 1997: 26).
통합연구의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는 통합을 촉진시키는 요인들을 찾아내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 제이콥과 터니(Jacob and Teune, 1964)는 통합을 상호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한 집단적 행위로 간주하면서 다음과 같은 10가지의 통합요건을 제시하였다: ① 지리적 근접성, ② 재산, 지위, 지역, 인종, 언어, 가치 등의 동질성, ③ 집단간, 개인간의 상호교류, ④ 상호간의 인지(인식상의 인접성), ⑤ 공유된 기능적 이해관계, ⑥ 사회가 지닌 태도?가치관?행위 유형 등의 사회적 제 특성, ⑦ 단위공동체의 의사 결정 구조와 권력 구조와 같은 구조적 형태, ⑧ 공동체의 주권-종속지위, ⑨ 정부의 효율성, ⑩ 이전의 통합경험.
도이치(Deutsch, 1957)는 통합의 문제에 대해 “안전 공동체(security community)”라는 개념을 가지고 접근하는데, 이는 “공동체의 구성원들 사이에 물리적인 충돌이 존재하지 않고 서로간의 논쟁의 적절한 방식에 의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실한 보장이 존재”하는 공동체를 의미한다. 그는 다음의 14가지 항목을 안전공동체를 이루는데 기여하는 요소로 지적하였다: ① 주요가치의 일치(공통의 언어, 관습, 문화의 측면에서), ② 상호반응(상호간의 연락과 인적, 물적 교류), ③ 독특한 생활 양식, ④ 핵심지역의 통합능력, ⑤ 경제성장의 우위, ⑥ 공동경제보상의 기대, ⑦ 상호교류범위의 확대, ⑧ 엘리트의 확대, ⑨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개방, ⑩ 대중동원의 확대, ⑪ 민족상잔에 대한 염증, ⑫ 외부의 군사위협, ⑬ 강력한 경제적 유대, ⑭ 민족과 언어의 동화작용. 도이치는 이상의 14가지 요소 중에서 핵심적 가치의 일치와 집단들간의 상호교류를 가장 중요한 통합의 조건으로 제시하였다.
그런데 유럽공동체와 같이 유럽국가들간의 통합에 관한 연구가 남북한의 경우에 적용가능한가에 대해서 연구자들간에 이견이 있다. 왜냐하면 남북한을 개별적인 국가로 보기에는 민족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동질적이고 또한 분단 이전에 오랜 기간 동안 통일된 체제를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의 사회통합 문제는 통일 이전보다는 통일 이후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유럽국가들간의 정치통합에 관한 연구는 우리에게 충분한 선례가 되기 어렵다. 같은 이유로 통합이론에서 통합조건 또는 통합요인으로 제시한 것들도 남북한 사회통합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한국적인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서 선별 수용해야 할 것이다. 통합이론에서 제시하는 통합조건들은 경험적으로 검증된 사항들이라기보다는 이론적인 차원에서 제기된 연구가설들에 가깝다. 따라서 이러한 조건들에 근거해 한반도의 사회통합의 가능성을 예측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어느 학자는 제이콥과 터니, 도이치의 통합조건들 중에 한반도 상황에 부합되는 조건들이 몇 개나 되는가를 따져서 사회통합의 가능성을 예측하기도 하는데, 이는 조건들의 상대적 중요도를 고려하지 않은 단선적인 사고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더욱 큰 문제는 위의 통합조건들은 지역 단위의 정치적 통합에는 적합하더라도 통일 이후의 한국과 같은 단일국가내부의 사회문화적 통합을 설명하는데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제이콥?터니가 제안하는 지리적 인접성이나 이전의 통합경험과 같은 조건들은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것이며 통일 이후의 사회통합에 큰 영향을 줄 수 없는 것들이다. 일단 체제통합을 이룩한 후에 어떻게 하면 사회통합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위의 통합이론들이 충분하게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한반도의 상황에 적합한 사회통합모델을 새롭게 모색해야 할 것이다.
2. 사회통합에 대한 국내연구
통일과 통합에 관한 연구는 본질적으로 추상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성격을 강하게 띤다. 또한 우리의 경우에는 경험적인 자료의 수집이 제한되기 때문에 우리와 유사한 처지에 있는 국가들의 사례연구를 통해 우리에 적합한 통일방안을 개발한다든지, 여러 가지 가능한 시나리오를 설정하여 각각의 경우에 대비책을 개발한다든지, 아니면 이론적인 수준에서 논리적으로 타당한 가정과 가설을 도출한다든지 하는 식의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따라서 통일?통합과 관련한 연구를 경험적으로 검증하는 것은 실제로 어려운 일이다. 그로 인해 통일?통합연구는 여타의 사회과학의 기준과 방법론과는 달리 다소 정책적, 가치지향적인 성격을 강하게 띠어왔다. 더욱이 통일?통합?북한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거의 비슷한 자료를 공유하면서 활용할 수밖에 없고, 누군가가 새로운 연구틀을 개발하면 후속 연구에서 다른 연구자들이 그것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로 인해 통일?통합연구는 자료의 제약성뿐만 아니라 분석시각의 제약성도 문제인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국내에서 진행된 통일?통합연구는 대부분 비슷한 포맷과 패턴을 띠고 있다. 우선, 통일과 통합의 개념과 이론을 1960년대에 정치학 또는 국제관계학에서 개발된 개념들과 통합이론들을 통해 정리하고, 한국적 상황에서 맞게 해석을 하고 남북한의 통일방안을 비교 분석한다. 이 과정에서 통일과 통합의 구분을 놓고 학자마다 다소간의 차이를 보이는데 대부분 통일보다 통합이 보다 상위개념으로 인식하고, 우리의 과제는 통일에 앞서 통합을 준비하고 통일 후에는 사회문화적 통합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독일의 통일 이후의 사회혼란과 갈등이 우리의 사회문화적 통합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는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한반도에서 사회통합의 방식은 통일이 누구의 주도하에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그런데 대부분의 국내 연구는 남한 주도하에 평화적 통일을 전제한 상태에서 통일 이후의 사회문화적 통합을 이루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본 논문에서도 그러한 전제에서 사회통합의 모델을 모색하려고 한다.
어떻게 사회통합을 이룰 것인가에 대한 국내 연구자들의 접근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는 문화?정서적 동질성의 회복 또는 이질성 극복을 강조하는 접근방법과, 둘째는 생활기회의 형평성 또는 기본권의 보장을 강조하는 접근방법이다. 물론 대부분의 연구에서 이 두 가지의 접근방법의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지만 각각의 연구는 둘 중의 어느 하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보통이다. 여기서는 두 가지의 사회통합 방안에 대해서 설명하고, 이 둘을 하나의 시각에서 접합할 수 있는 방안으로서 다문화주의를 설명하려고 한다.
(1) 문화?정서적 동질성 회복 또는 이질성 극복
사회통합의 주요 조건으로서 문화?정서적 동질화를 강조하는 학자들은 분단 이후의 남북한의 이질화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에 언어, 생활양식, 가치체계 영역에서의 이질화를 극복하고 동질적인 문화를 형성해야만 남북한 사회통합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북한주민의 가치관과 생활양식의 특징은 전체주의적 규범, 사회구조의 단순성, 그리고 타율적?수동적 인성으로 요약될 수 있다. 반면 남한 주민의 가치관과 생활양식은 합리주의적 사고에 기반을 둔 자율성과 다양성이다(윤덕희?김도태, 1992). 물론 남북한 주민이 언어와 가족생활 등 전통적 가치관과 생활양식을 공유하는 부분도 적지 않다. 최협(1992)은 이런 입장에서 “사회통합의 궁극적 해결의 열쇠는 50년에 가까운 분단 때문에 야기된 남북한 주민들의 가치와 의식구조의 이질화의 극복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이와 유사하게 윤덕희?김도태(1992)는 “사회?문화공동체” 개념을 사용하면서 남북한간 교류?협력 및 동질화 작업을 통해 남북한간 사회?문화적 동질성을 증대시킴으로써 민족공동체 형성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남북한간 동질성을 증대시키는 방법으로서 민족문화에 기반한 전통적 동질성 회복에 주력하기보다는, 남북한 사회?문화 변화 전망에 비추어 양사회가 공통으로 지향해야 할 사회?문화적 요소를 증대시키는 미래지향적인 민족동질성 회복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동질화를 사회통합의 조건으로 보는데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동질성의 표준(standard)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대부분이 학자들이 분단 이전의 상황으로, 그리고 남북한이 공유하는 전통문화로 회귀하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대신 보다 미래지향적인 가치정향(value orientations)을 통일한국의 사회통합 원리로 제시하고는 있지만, 암묵적으로 북한에 비교해서 보다 다원주의적이고 자유 민주주의 사상에 기초한 남한이 기준이 되어야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전상인, 1995; 임상수, 1997). 그러나 우리가 동질화를 강조하게 되면 권력면에서 우월한 어느 한쪽이 약한 다른 한쪽에게 자신들의 기준을 강요하게 되고 그 결과로 사회통합을 저해할 수 있다. 사회통합을 이루기 위해 시작한 동질화가 오히려 사회통합을 저해한다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볼 수 있다. 앞서 지적하였듯이 독일 통일은 구동독을 전부 서독식으로 재편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서독출신들은 변한 것이 별로 없는데 동독출신들만이 서독의 체제와 제도, 가치와 행위 양식을 배워야 했다. 그 과정에서 “구동독의 것은 모두 나쁘다, 서독의 것은 좋다”라는 식의 분위기가 형성되어 동독출신들간에는 과거에 대한 향수, 서독에 대한 반발이 형성되었다고 한다(유팔무, 1999). ‘동독정체성’ 또는 ‘오스탈지’(Ostalie: Ost + Nostalgie) 등의 동독출신들의 감정은 통일 후 변혁과정에서 자신들이 배제되고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데서 발생한 저항적 지역정체성이다(전태국, 2000). 따라서 강한 어느 한쪽으로의 일방적인 동질화는 결코 사회통합에 이바지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두 번째 문제는 동질성이 강한 사회에서도 사회통합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고, 이질적인 사회에서도 사회통합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한은 세계에서 유례 없이 민족, 언어, 가치체계 등에서 동질적인 사회이지만 영남과 호남간의 지역갈등과 같이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영호남간의 지역갈등이 양쪽 지역 사람들이 문화?정서적인 측면에서 이질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영호남간의 지역갈등은 문화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양쪽 지역의 불평등한 지역발전과 정치인들의 지역정서를 정치적 목적에 악용한 결과이다. 또한 캐나다와 같은 다인종?다민족사회에서는 사회문화면에서 실로 다양한 마치 모자이크와 같은 사회인데도 불구하고 다문화주의가 사회통합의 가치와 이념으로 그리고 구체적인 정부정책으로 실천되면서 서로 다른 인종?민족집단간 조화와 공존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만약에 캐나다에서 사회통합을 주창하면서 어느 하나의 단일화된 문화를 옹호한다면 당장 캐나다의 다수집단이면서 경쟁관계에 있는 영국계와 프랑스계 민족집단간의 대립과 분열로 이어질 것이다.
세 번째 문제점은 남북한이 공유하고 있는 동질적 가치체계, 예를 들어 가족주의, 유교문화, 연고주의, 집단주의, 민족주의 등은 기본적으로 방어적이고 배타적인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어 이질화의 길을 걸어온 남북한 주민들을 하나로 묶기보다는 오히려 서로를 배제하고 차별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특히 많은 학자들이 남북한 사회통합의 원리로서 민족주의를 제안하는데, 이는 혈통, 문화, 역사의 공통성에 기초한 민족주의가 남북한의 차별성을 극복할 수 있는 사상적 원천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최협, 1992; 이온죽, 1997; 노태구, 1997). 그러나 남북한의 민족주의는 관주도 민족주의를 강하게 띠어왔고, 개인의 자율성과 행복의 추구보다는 국가와 민족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전통문화의 숭상을 통해 극우이념과 가부장적인 요소를 확산시켰다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 또한 남북한의 민족주의는 ‘닫힌 민족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해 한 사회의 비주류와 사회약자층, 그리고 이방인들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역할을 해왔다. 사회 내부의 소수자들(예를 들어, 외국인근로자, 탈북자, 재중동포, 장애인 등)마저도 포용하지 못하는 남한의 민족주의가 어떻게 통일 후 수 천만 명의 북한출신 주민들을 포용하고 그들과 더불어 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런 문제의식에 기초해서 진보적인 학자들 중에는 동질성 회복보다는 남북한이 갖고 있는 이질성을 현실로 인정하고 차이를 우열의 개념이 아닌 차등의 개념으로 볼 수 있는 관용적이고 개방적인 사고를 갖추는 것이 사회통합의 조건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조혜정(1996)은 사회통합은 남북한 주민간 ‘상호작용에 관련된 의사소통의 영역’으로 규정하면서,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남북한 주민간 가치와 상징 등 문화적 차이를 용인하고 이해할 수 있는 가치의 창출을 제안하고 있다. 다시 말해 ‘“다름”을 조직화할 수 있는 문화적 역량’ 이를테면 문화적 상대주의적 관점을 발달시켜 이질성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하며, 통일에 대비해 남쪽에서 먼저 훈련을 쌓아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남북 통일 이후에도 남쪽의 제도만을 고집해서는 안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잠정적으로 남과 북에 다르게 적용하거나 단계적으로 통합해야 하고, 또는 북한의 우수한 제도와 사상을 부분 도입하는 등의 유연성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획일성의 복제’가 아니라 ‘다양성의 조직화’가 사회통합을 위한 기초가 되어야 하며, ‘획일주의’를 극복하면서 ‘연대와 공존’의 의미를 되살려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같은 맥락에서 일부 학자들은 북한의 사회주의적 이상과 제도가 남한의 자본주의적 폐단과 비인간화 현상을 보완해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했다고 해서 사회주의의 가치와 이상 자체가 몰락한 것은 아니고 아울러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문제점들이 면죄부를 받은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이은호, 1994; 장경섭, 1995). 전성우(1997)는 인간을 근본적으로 ‘경제적 존재’로 보는 자본주의적 삶의 양식이 가진 합리성과 가치가 인간을 근본적으로 ‘공동체적 존재’로 보는 사회주의적 삶의 양식이 가진 합리성과 가치를 무조건적으로 능가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그는 통독과정에서 서독의 자본주의적 가치와 행동원리를 동독주민들에게 강요하는 과정에서 동독주민들이 심각한 자기정체성과 자긍심의 훼손을 경험했고 이런 경험이 동독주민의 자율적인 변화를 저해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동서독간의 진정한 사회통합은 양 사회가 다함께 겪는 하나의 학습 및 개혁의 과정으로 인식할 때 가능하며, 통일은 동독에게 단순히 ‘뒤늦은(만회성) 근대화’를 뜻한 뿐 아니라 서독의 경직된 사회구조들의 개혁과 기회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양 사회가 가진 강점과 약점에 대한 냉철한 통찰과 상호의 강점이 최대한 활용될 때 성공적인 통합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남북한의 사회통합과 관련하여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그러나 문화적?정서적 이질성을 극복하는 노력 자체가 남북한 사회통합을 달성하는데 한계가 있다. 첫째, 남북한 사회의 가치관과 이데올로기는 상호보완적인 측면도 있지만 대립적이고 상호모순적인 부분도 많다. 예를 들어, 개인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가치와 집단의 형평성을 강조하는 가치는 쉽게 조화되기 어렵다. 아울러 의식주를 국가에 의존해온 북한 주민의 의존성이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의해 성과가 결정되는 남한의 개인주의적 인성으로 쉽게 전환되기 어려운 것은 남한에서 살고 있는 탈북자들의 경험에서 알 수 있다(윤인진, 1999). 진정한 사회통합은 다양성 속에서도 일치성(unity in diversity)을 찾아내고 사회구성원들간의 동류의식과 연대감이 생길 때만이 가능하다고 볼 때, 앞에서 설명한 문화적 상대주의는 문화적 관용성의 모습은 있지만 사회통합의 진정한 모습은 아니라고 본다. 그것은 무관심의 표현일수도 있고 자칫 허무주의와 무정부주의로 이어질 소지도 있다. 또한 사회통합은 그것을 주도하는 핵심집단이 있어야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문화적 상대주의는 이상적인 비전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남북한의 이질성을 인정하고 서로로부터 배우자는 주장은 원론적으로는 타당하지만 좀더 정교화되고 구체화될 필요가 있다.
둘째, 아무리 남북한 주민이 문화?정서적으로 동질성을 이루었다고 하더라도 남북간에 생활기회와 생활수준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이게 되면 사회통합은 어렵다고 볼 수 있다. 남북한의 현격한 경제력의 차이로 인해 통일 후 북한출신 주민들이 실업, 빈곤, 체제적응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게 되고, 이로 인해 남북한출신 주민들간의 편견, 알력, 사회적 거리감이 증대될 것이라는 것은 독일 통일의 경험으로부터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전태국(2001)은 통일 후 통합과정에서 남한의 체계가 북한주민, 특히 엘리트층을 배제하면서 북한지역에 이식될 것으로 예상하고, 북한주민들은 박탈감 속에서 자신을 ‘2등국민’ 내지 ‘식민지’로 느끼고, 이에 대응하여 특히 북한 인텔리들은 새로운 ‘대항 엘리트’로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하였다. 따라서 북한주민들을 통합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며, 남북간의 생활기회를 공평히 분배하고, 이념적으로 분배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철학과 가치관을 수립하고, 정책적인 차원에서 이러한 가치와 이념들을 실천할 수 있는 법적, 정치적 장치와 제도를 마련하는 보다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성호, 1999).
(2) 기회의 평등
남북한 사회통합의 방안으로서 사회?정책적 차원에서 남북한간의 생활기회의 형평성과 기본적인 사회적 시민권을 보장하는 방안을 강조하는 일군의 학자들이 있다. 예를 들어, 장경섭(1995)은 통일의 과정에서 특히 북한출신 주민들에게 “최소한의 인간적 생활을 할 헌법적 권리”라는 뜻에서의 기본적 사회권을 보장하는 것이 가장 경제적인 사회통합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사회성원들이 생존자원의 공평하고 안정된 배분이 다양한 생활양식에 대한 사회적 존중과 함께 사회통합의 중요한 조건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국가와 사회는 통일과정에서 발생하게 될 이질화, 분리, 차별, 불평등 상태를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같은 맥락에서 박영호(1994)는 통일후 사회통합의 성공여부는 생활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느냐에 달려있다고 보고, 정치?사회적 통합의 경제적인 토대를 갖추는 방향으로 통합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해결과 같은 최저생활의 보장 이외에도 각종 사회보장제도를 확충하여 특히 북한지역 주민들의 욕구나 기대의 좌절에 따른 갈등을 분출을 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적 차원에서는 남북한간 권력을 형평하게 배분하기 위한 협의주의(consociationalism) 원칙에 입각한 제도적 장치들(예를 들어 대통령과 부통령을 다른 지역에서 선출하는 방안, 통일후 국회를 지역대표성을 갖는 상원과 인구대표성을 갖는 하원으로 구성하는 양원제(兩院制) 방안, 분권적 국가운영방식과 북한지역에 대한 특수행정구역방안) 등을 제시하였다. 경제적 차원에서는 북한지역에 대한 경제개발계획에 입각한 대규모 투자와 실업구제책을 시행하여 북한지역의 경제적 기반을 확충하는 일이 필요하고, 사회문화적 차원에서는 통일후 남북한출신 주민들간의 사회심리적 격차와 갈등을 줄이기 위해 체계적인 가치통합교육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고성호(1999)는 일상생활에서의 편견과 차별도 상당 부분 경제적 토대의 차이에서 발생한다고 전제하고, 남북한간 사회통합의 문제는 남북한간 ‘생활기회’를 공평히 분배하고, 이념적으로 분배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가치관의 수립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희소한 사회자원을 공평히 분배한다는 것은 이상에 불과하고 현실적으로 계층, 지역, 성별로 불평등은 존재하게 마련이다. 문제는 이런 불평등을 완전히 제거하기보다는 사회적으로, 윤리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 수준에서 조절하고 관리하는 것이 현실적인 자세이다. 따라서 국가가 사회정의의 실현을 위해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제약할 수도 있고, 통일후 발생할 수 있는 사회혼란과 일탈행동을 통제하고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사회통제의 필요성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국가의 물리력을 이용한 강제적 통합은 남북한 민족공동체 형성의 명제에 배치되고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을 억압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국가공권력 사용에 대해 다소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남북한 사회통합의 조건으로 형평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람들간의 대립, 알력, 갈등은 근본적으로 권력, 경제력, 사회적 지위 등과 같은 사회의 희소자원에의 경쟁으로부터 발생한다. 인종, 민족, 종교, 지역집단들간의 갈등은 표면적으로는 문화적 차이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인종, 민족, 종교 등과 같은 사회적 구분에 따라 권력, 경제력, 사회적 지위 등이 불평등하게 분배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남북한간에 존재하는 현격한 경제력의 차이, 체제 적응문제, 북한 주민의 인성, 인적자원의 자본주의사회에서의 호환성 문제 등으로 인해 통일후 (남한 주도의 통일을 전제로 했을 경우에) 북한지역이 남한의 내부식민지로 전락하고 북한주민이 2등국민으로 차별을 받게될 경우 남북한 사회통합은 요원한 과제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분배적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평등지향적 가치관, 개인의 이익말고도 사회 전체의 공동선을 인정하고 추구할 수 있는 ‘공동체 의식’이 확대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사회불평등, 편견, 차별 등의 문제가 개인의 의식변화에 의해서 해결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것은 단지 심리적 만족감을 얻기 위하기보다는 그렇게 하는 것이 정치, 경제적으로 보상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또한 일단 사회불평등 구조가 형성되면 세대를 거쳐서 전승되고 강화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불리한 사회계층 자녀들은 자신들의 노력을 통해 신분상승을 하기가 구조적으로 어렵게 되어있다. 사회적 배제와 차별로 인해 소수자들이 주류 사회의 자원과 기회구조로부터 배제되면 이들에게 실업, 빈곤, 질병, 일탈, 사회적 고립과 같은 사회적 문제들이 집중된다. 사회적 배제와 차별은 소수자들의 생활기회와 삶의 질을 저하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정신적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쳐서 건강하고 긍정적인 자아의식을 갖기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문제가 축적되고 증폭되면 사회구성원들간의 불평등과 갈등이 심화되고 결국은 사회안정과 통합을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렇게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한편으로는 개인의 자기개발과 그로 인한 사회발전의 가능성을 저해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를 분열시키고 불안정하게 만드는 악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한 사회가 통합을 이루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어떠한 형태의 차별을 철폐하고 모든 사람에게 자기발전의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윤인진, 2000). 역사적 차별과 불평등 구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평등과 분배정의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사회적 공감대와 합의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한 의식에 기초하여 정부는 소수차별금지정책(affirmative action policy)과 같은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 소수자들이 주류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남북한 사회통합에 대한 국내의 연구들은 문화?정서적 관용성과 생활기회의 형평성의 필요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보이지만 이러한 가치와 이념을 실천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앞서 지적하였듯이 사회불평등 구조와 차별의 메커니즘은 개인의 성찰적 사고와 개선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것들이다. 국가가 공동선의 원리에 기초해서 강제력을 행사하지 않는 한 그러한 구조적 장벽들을 극복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고성호(1999)는 사회통합의 문제를 분배적, 이념적, 사회통제적 차원으로 접근하면서 분배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국가의 물리력의 사용을 인정하였지만 그 역시 사회통제는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두고 시민의 능동적 참여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제안은 현실적으로 불평등 구조를 극복하여 사회형평성을 이루기에는 너무 약한 제안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남북한 사회통합은 첫째, 문화?정서적인 측면에서 남북한 주민들간이 동류의식과 연대감을 형성하는 과제와 둘째, 생활기회의 형평성을 증대하고 기본적 사회적 시민권을 보장하는 과제와, 셋째, 이러한 사회가치와 이념을 실천하기 위한 강제력을 가진 법적, 제도적 장치와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복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 연구가 기존연구와 차별성을 갖는 부분은 사회통합을 달성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이념적, 법적, 제도적 이니셔티브를 강조하는데 있다. 그래서 본 연구자는 통일 이후에 사회통합법(social integration law), 평등기회부(Ministry of Equal Opportunity), 사회통합교육원(Education Center for Social Integration 등과 같은 새로운 법과 조직이 제정 또는 개편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러한 사회통합의 정신적, 사회경제적, 정책적 차원을 잘 담고 있고 실천하는 예가 캐나다의 다문화주의이다. 캐나다는 초기 건국과정부터 영국계와 프랑스계 주민들로 연합된 연방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사회통합을 이루기 위한 이중문화적인 정책이 국가차원에서 실천된 사회이다. 특히 1970년대 이후로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인종?민족집단들의 이민이 가속화되면서 캐나다 사회는 모자이크와 같이 복합적인 사회로 변해갔다. 이러한 시대적, 인구학적 변화를 반영하면서 사회통합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다문화주의가 출현하였고, 지금은 캐나다 모든 국민과 정부의 지지속에 사회통합의 가치와 이념으로 발전해가고 있다.
통일후의 한국은 기본적으로 다원화 사회가 될 것이라는 기본적인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질적인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체계와 가치관, 생활양식들이 혼재된 상태가 상당 기간 존속할 것이다. 이러한 다원성 속에서 공통의 국민정체성과 연대감을 이끌어내고 국민과 국가자원을 동원할 수 있느냐가 통일한국의 가장 큰 과제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에 앞서 다양성 속에서 단일성을 추구해온 캐나다의 다문화주의는 사회통합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유용한 시사점을 주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캐나다의 다문화주의적 사회통합이 우리의 경우에 직접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캐나다의 경우는 이미 존재하는 하나의 사회에서 서로 다른 성격의 구성집단들간의 사회통합을 이루는 것이고 우리의 경우에는 분단된 두 개의 구성집단들이 하나의 통일된 체제안에서 사회통합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캐나다의 경우에는 다인종, 다민족들간의 사회통합을 이루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단일민족간의 사회통합이기 때문에 인종, 민족에 기초한 사회통합이 우리에게 적용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경우의 지역성은 의사인종(quasi race)의 성격을 띠며, 지역, 인종, 민족 그 자체보다는 그것들에 기초한 사회불평등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의 공통문제를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캐나다의 다문화주의가 우리에게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다원화된 통일한국의 사회통합 원리로서 우리는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문화주의의 문제점과 한계를 타산지석의 원리로 미리 우리가 연구하고 대비한다면 시행착오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내에서는 주로 독일의 통일 경험을 통해 우리의 사회통합을 준비해온 경향이 강하다. 상대적으로 캐나다와 같은 다인종?다민족사회의 사회통합의 경험은 소개된 적이 적은데 이런 상황에서 이번 논문에서 다문화주의를 소개하고, 우리의 경우에 재구성해보는 것은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Ⅲ. 캐나다의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
1. 민족적 모자이크(Ethnic Mosaic)
캐나다의 다문화주의는 1971년에 연방정부가 문화적 다원주의(cultural pluralism)에 기초한 다문화주의를 공식적인 사회통합의 이념으로 제창하면서 출현하였다. 다문화주의는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서로 관련된 세 가지의 현상을 지칭한다(Troper, 1999).
첫째, 캐나다 사회가 인종, 민족, 문화적으로 다원화된 사회라는 인구학적 현상을 지칭한다. 현재 캐나다 국민의 40% 이상은 비영국계, 비프랑스계 출신이다. 밴쿠버와 토론토와 같은 대도시에서의 인종?민족적 다양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밴쿠버 주민의 30% 가량이 그리고 토론토 주민의 38%는 외국 출신 이민자들이다. 토론토에서는 90개 이상의 언어가 일상생활에서 사용되고 있고, 매년 수만 명의 초등학교 신입생들은 영어 이외의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로부터 이민자들의 유입이 계속 증가하고 있어서 캐나다 사회의 인구학적 다양성은 갈수록 증대될 것이다. 이러한 인구학적 변화는 캐나다의 정치경제 체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서 다문화주의는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캐나다 사회의 현실이 되었다.
둘째, 다문화주의는 사회문화적 다양성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가치있게 여기고 존중하려는 사회적 이념을 지칭한다. 미국의 인종?민족관계가 ‘용광로(melting pot)’로 비유되어 백인 중심의 동화주의적 접근을 취하고 있다면, 캐나다의 인종?민족관계는 ‘민족적 모자이크(ethnic mosaic)’로 비유되어 여러 인종?민족집단들간의 조화와 상호협력을 중시한다. 이러한 문화적 다원주의 시각은 캐나다의 사회문화적 다양성이 사회를 분열시키기보다는 오히려 풍부하고 창의적으로 만든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다양한 인종?민족집단의 문화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필요한 경우에는 보호하려는 자세를 취한다.
셋째, 다문화주의는 사회문화적 다양성을 보호하고 인종, 민족, 국적에 따른 차별과 배제 없이 모든 개인이 형평한 기회에 접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정부의 정책과 프로그램을 지칭한다. 이 정책은 인종적, 민족적 다원주의가 캐나다의 독특함을 보여주는 정당하고 지속적인 표현이며 민주주의적 가치와 사회에서의 개인의 권리와 잘 부합된다는 사고에 기초하고 있다.
캐나다의 공식적 정책으로 1971년 10월 8일 다문화주의가 처음 제창된 이래, 다문화주의는 문화적 다원주의에 근간한 캐나다 국민들의 정체성에 핵심적 가치가 되고 있다. “특정 인종 집단이나 문화의 우선권이 보장되는 게 아니라 캐나다의 모든 국민, 집단들이 동등하게 인정된다”는 기치아래, 다문화주의에서는 어떤 특정의 문화에 독점적 위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이러한 인종적 다양성과 문화적 다원주의에 대한 존중은 캐나다의 국민 정체성에 기초를 이루고 있다.
더구나 캐나다의 다문화주의는 단지 문화적 다양성의 가치를 수동적으로 인정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부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나타난다. 캐나다인들의 문화적 자유를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으로써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정책을 공식적으로 구체화한다. 첫째, 정부는 캐나다 사회의 발전에 지속적인 노력과 열망을 보이는 모든 집단에 대한 자원 지원을 위해 노력한다. 이와 같은 지원은 집단의 크기나 세력과는 무관하게 이뤄진다. 둘째, 정부는 사회에 대한 참여를 가로막는 문화적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상이한 문화 집단에 대한 지원에 차이를 두지 않는다. 셋째, 정부는 캐나다 국가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상이한 문화집단간의 상호교류를 적극적으로 장려한다. 넷째, 정부는 새로운 이민자들에 대해 그들이 완전한 캐나다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최소한 하나 이상의 공식적인 언어를 습득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것이 구체적인 정책 내용들이다. 또한 이같은 다문화주의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연방정부는 문화행사를 위한 지원금을 증액하고, 캐나다 대학내에 민족학연구(ethnic studies) 과정을 개설하고, 영어 또는 불어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다문화주의 프로그램 전담 기구를 설치하였다(Li, 1999: 153).
그러나 다문화주의 프로그램은 새로운 유권자 집단으로 가시화된 소수 집단들에 대한 부응 필요성을 더욱 요구받게 되었다. 1960년대 말에 이루어진 이민에 대한 인종적 장벽의 폐지와 1978년 이후의 적극적인 이민 정책에 의해 캐나다의 소수집단 공동체는 급속하게 성장하였다. 이들 새로운 이민자들은 심각한 경제적 사회적 불안과 인종적 거부의 충격에서 오는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관심은 문화적 지위, 합법화, 집단의 존속, 상징적 인정과 같은 영국이나 프랑스계 캐나다 국민들의 관심과는 다른 양상을 띠게 되었다.
새로운 이민자들이 증가하면서 문화적 정체성의 유지는 캐나다 정부의 표명과는 달리 덜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즉 사람들이 직장이나 가정, 학교에서의 편견과 차별에 직면하게 되면서, 그들이 느끼는 일상생활에서의 차이가 국가가 제창하는 다문화주의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게 한 것이다. 소수집단의 구성원들은 다문화주의의 선결과제가 구직이나 거주, 교육 등에서의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는 편견과 차별의 해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다문화주의 프로그램 초창기의 기조에서 벗어나 새로운 집단의 평등 요구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우선 순위를 변경시켰다. 1981년에 연방정부는 캐나다의 인종관계를 전담하는 기구를 설치하였고, 이후에는 인종관계를 다문화주의 프로그램의 주요 의제로 삼았다. 1982년에는 “권리와 자유헌장(the Charter of Right and Freedom)”이 제정되어 캐나다 헌법 사상 처음으로 인종차별이 위헌으로 규정되었다. 이와 같은 규정은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명백한 인종차별을 근절시킬 수 있을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헌장의 15절 1항은 1985년에 그 효력을 발휘하게 되었는데, 이는 평등을 보장하는 가장 의미있는 조목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모든 개인은 법앞에 평등하며, 법에 의해 보호받을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 또한 인종, 민족, 피부색, 종교, 성별, 나이 또는 정신적 육체적 능력에 따라 차별 받지 않을 동등한 혜택을 누린다.” 또한 15절 2항에서는 모든 캐나다 국민들의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소수차별금지(affirmative action)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확실히 하고 있다(Henry and Tator, 1999: 100).
또한 1988년 캐나다 의회는 “다문화주의 법령(Multiculturalism Act)”을 제정함으로써 다문화주의에 대한 새로운 진전을 마련하였다. 최초로 이루어진 이러한 법제화는 캐나다 사회를 정의하는 특징으로서의 다문화주의를 명백히 하였다. 더욱이 모든 캐나다 국민들에게 자신들의 인종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해 줌으로써 캐나다 사회에 보다 넓은 의미로서의 동등한 참여기회를 보장할 수 있게 하였다. 결과적으로, 이같은 시도는 인종, 민족에 따른 편견과 차별의 장벽을 제거함으로써, 문화적 표현을 보장하려는 노력으로 나타났다. 다문화주의 법령의 첫 번째 효과는 모든 정부 부처 및 기관들의 행정이나 기획, 고용에 있어서 캐나다의 다인종, 다민족적 실체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표출되었다. 1990년에는 다문화주의의 프로그램을 전담하기 위해 “다문화주의와 시민권부(Department of Multiculturalism and Citizenship)”라는 기구가 설립되었으며 이는 다시 캐나다 문화유산부(Department of Canadian Heritage)와 시민권과 이민부(Department of Citizenship and Immigration)로 나뉘어 졌다.
작업장에서의 차별이 소수 집단에 대한 가장 심각한 차별로 여겨졌기 때문에 연방 정부는 그러한 작업장에서의 차별을 근절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들을 취하였다. 연방정부는 1986년에 “고용평등법령(Employment Equity Act)”을 제정하여 이를 국영 기업체에 적용하였다. 이러한 법령은 작업장에서의 평등을 보장하고, 여성, 소수민족?인종들, 장애인들과 같은 소수집단들의 불리함을 바로잡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고 하겠다(Henry and Tator, 1999: 103).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다문화주의가 캐나다 사회에서 완전한 사회적 합의를 얻는 것은 아니다. 정치인, 매스미디어, 학자들은 각기 서로 다른 이유로 다문화주의를 비판한다. 어떤 비판가들은 다문화주의가 다양한 민족집단의 민족 정체성을 강화하여 캐나다인으로서의 국민정체성을 약화시켰다고 비난한다. 즉 인종적, 민족적 차이에 대한 용인과 지원이 유럽계 캐나다인들의 가치를 훼손하였다는 것이다 (Bissoondath, 1994). 또한 정책이나 이데올로기로서의 다문화주의가 사회분열을 조장하였으며 캐나다를 마치 게토와 같은 상황으로 만들었다고 비난한다(Shohat and Stam, 1994). 한편, 퀘벡주를 중심으로 분리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은 다문화주의가 건국 주역인 자신들의 문화를 여러 민족 문화중의 하나로 평가 절하했다고 비판한다. 진보주의적 학자들은 다문화주의가 표방하는 문화적 관용성과 상대주의는 수용하지만 이것이 문화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진정으로 소수인종?민족집단 성원의 생활기회를 제약하는 구조적 차별과 불평등을 철폐하는데 소홀하다고 비판한다. 평등을 저해하는 실질적인 요소는 법률적인 조치로 해결되는 게 아니라, 사회체계 내에서 움직이는 각 개인들의 사적 영역을 통해 해결되는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다문화주의가 사회적 경계의 장벽을 낮추거나 경제적 이동의 기회를 증가시켰다기보다는 오히려 사람들간의 구분을 강화하고 분열적인 민족 정책으로 나타났다는 주장도 있다. 사회학자인 죤 포터(John Porter, 1965)는, 다문화주의가 캐나다 사회의 모자이크적 배열을 수직적인 형태의 모자이크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다문화주의는 과거의 명백하게 인종차별적이고 동화주의적 정책에 비교해서 현저히 개선된 정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물론 사적영역에서의 차별과 불평등을 해소하는데 충분한 기여를 하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다문화주의적 이념과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법률과 프로그램들은 인종, 민족간 기회의 형평성을 이룩하는데 실질적으로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몇 차례의 여론조사에서 밝혀졌듯이 캐나다 국민들은 비록 다문화주의에 대해 일치된 견해를 보이지만 않지만, 대다수가 연방정부의 다문화주의에 입각한 정책들을 지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Li, 1999: 159). 특히, 인종 차별을 근절하고 기회에 대한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강력한 지지를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약하자면 캐나다의 다문화주의는 한편으로는 인구학적, 사회문화적으로 다양화되어 가는 캐나다 사회의 현실을 직시하고 기존질서를 방어하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개방된 사회로 나아가려는 노력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영국계와 프랑스계로 양분된 캐나다 사회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통합된 체계로 존속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방안이라고 볼 수 있다. 서로 다른 인종?민족집단들의 가치관, 사고방식, 생활양식 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자세, 모든 개인들이 성, 인종, 민족, 국적, 종교 등의 차이로 인해 차별 받고 배제되지 않고 기회의 형평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신념, 그리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이러한 사회 이념을 보호하고 실현하려는 노력이 캐나다 사회가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unity in diversity)을 이루어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고 볼 수 있다.
다문화주의가 앞으로도 사회통합의 원리와 메커니즘으로 작용할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의 실천을 두고 제기되고 있는 비판과 다양한 의견을 어떻게 조율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느냐 하는 것은 캐나다 사회가 여전히 고민해야 할 과제이다. 또한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통일된 국민적 정체성을 이끌어내는 것도 결코 쉬운 과제는 아니다. 인접한 미국 국민들이 ‘American’이라는 강력한 국민정체성과 애착을 갖는 반면 캐나다인들은 그에 필적할만한 국민정체성과 국가적 상징체계를 갖지 못한 것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3) 다문화주의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캐나다가 어떠한 방식으로 사회통합의 길을 모색하는지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
2. 남북한 사회통합에의 시사점
캐나다의 다문화주의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캐나다 인구구성의 현실적인 다양성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변화된 상황에 적합한 사회통합의 이념과 가치를 실현하였다는 점이다. 다문화주의의 문화적 다원주의와 관용주의적 이념과 가치는 어느 단일의 공식문화를 배격하면서 다양성을 존중하고 문화적 민감성(cultural sensitivity)을 지키면서 서로 다른 인종?민족 집단간의 조화로운 생활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영국계나 프랑스계는 건국의 주역으로서 기득권을 주장하고 다른 소수집단들을 차별하고 배제하거나 또는 자신들의 문화로 동화시키려고 노력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캐나다는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지로부터의 이민자들을 천대하고 이민을 받아들이지 않는 배제정책을 취해왔다.) 문화적 관용성을 베풀어 모든 구성원들이 존중받으며 평등하게 공존할 수 있는 길을 택했다는 것은 우리가 귀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만약 남한 주도의 통일을 이룩하였을 경우, 우리는 기득권을 주장하고 주인행사를 하기보다는 겸손과 관용의 자세로 북한출신들로 하여금 심리적 좌절감과 열등감을 느끼지 않고 새로운 통일 사회에 주인으로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정신적이고 이념적인 자세가 있어야만 통일 한국은 정신적으로 통합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처음에 다문화주의는 주로 문화적인 접근과 지원을 하였으나 후에 신규 이민자들과 소수인종?민족집단들의 불평등과 사회적 차별이 커다란 문제가 되자 문화중심적 접근에서 형평성제고의 방식으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다문화주의 정책의 성과가 형평성 제고와 차별극복의 측면에서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정부는 모든 사회구성원들간의 형평성과 어떤 형태의 차별과 배제를 배제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취해 왔다. 그런 정부의 의지를 반영하는 것이 고용평등법령(Equal Employment Act)의 제정이고 그 법을 집행하기 위한 전담 기관의 설립이다. 즉 사회통합은 단지 문화적 관용성과 상대주의로는 이룰 수가 없고 사회구성원들간의 형평성, 또는 그러한 형평성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세워져야 가능하다는 것을 캐나다의 경우에서 재확인할 수 있다.
셋째, 본 연구자의 시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이러한 사회적 가치와 이념을 단지 구호나 수사의 차원에서만 그치지 않고 구속력을 가지는 법과 제도로 구체화했다는 것이다. 1971년의 다문화주의 정책 발표 이후 1982년의 ‘권리와 자유 헌장(the Charter of Rights and Freedom)’, 1986년의 ‘고용평등법령(Employment Equity Act)’, 1988년의 ‘다문화주의법령(Multiculturalism Act)’ 등을 제정하여 문화적 다원주의와 기회의 형평성을 지원하고 보호하고자 했다. 지방정부들은 다양한 문화행사(예를 들어 토론토의 ‘Taste of Danforth’(그리스계 음식축제)와 ‘Carnivals’(민족문화축제)를 지원하여 여러 민족집단들간의 교류를 증진하고 서로의 문화유산을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다문화주의적 환경에 적합한 가치관과 행동양식을 학습하도록 교육된다. 만약 학생들이 타민족 학생들에게 모욕적인 인종적, 민족적 욕설을 하거나 차별행동을 하게되면 교사들로부터 심하게 처벌받는다. 이렇듯 문화적 민감성과 에티켓이 사회통합의 덕목으로서 정규교육에서 중요하게 가르쳐 지고 있다.
끝으로, 사회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것을 주도하는 중추세력이 있어야 한다. 도이치가 지역간 사회통합과 관련하여 지적하였듯이 강한 핵심지역이 있을 때 그리고 핵심지역이 강한 능력을 갖고 있을 때 통합이 발전할 수 있다. 캐나다의 경우 비록 수많은 인종?민족집단들이 있지만 영국계와 프랑스계가 중추세력으로서 사회통합을 주도하고 있고, 공용어 및 교육을 통해 소수민족들로 하여금 주류문화로의 통합을 제도화하고 있다. 캐나다가 다양성 속에서 단일성을 찾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이 작업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단지 문화적 상대주의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영국계와 프랑스계의 두 핵심세력이 다른 소수민족집단들을 통합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두 집단이 경쟁하면서도 권력과 영향력의 균형을 유지하여왔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그 이유는 퀘벡주의 프랑스계 주민들의 독립운동이 결코 일시적이거나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프랑스계 주민들이 소외감을 갖지 않고 통일된 사회체제의 일원으로 남는 것이 더욱 유리하다고 확신을 갖게 하는 일이 캐나다 사회통합의 최대 관건이다.
그렇다면 남한과 북한간에 통일 후 누가 사회통합의 중추세력이 될 것인가?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남북한 모두 사회통합의 조건들을 실현하기에는 경제적, 사상적, 제도적, 정책적 역량과 준비가 부족한 상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이 사회통합의 중추세력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 그 이유는 단지 남한이 북한에 비교해서 경제력에서 우세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김경동(1996)이 지적하듯 잘 통합된 사회는 ‘분권적이고 다원적인 집합주의’를 택해야 하며, ‘유연성의 원리’를 가져야 한다. 북한의 경우는 비록 내부통합의 수준은 높을지라도 물리적 강제력에 의거해서 통합을 유지하기 때문에 갈등과 분열을 효과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진다. 사회구조가 획일적으로 조직화되어 있고 그 운용마저도 경직화되어 있기 때문에 조그만 사회적 균열이 전체사회의 갈등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전상인, 1995: 344). 반면 남한은 사회갈등이 일상화되어 있어 사회갈등에 대한 높은 면역성과 저항력을 갖고 있고, 남한사회의 복합적 다원주의는 다양한 사회적 갈등을 (비록 시간과 비용면에서는 효율적이지는 않아도) 민주적이고 합리적 방식을 통해 조정할 수 있는 기제와 능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남한이 사회통합의 이니셔티브를 취할 때 남한체제의 두 기둥인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근간이 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통일은 단순히 분단 이전의 상태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국가를 형성하는 일이기 때문에 남한식의 정치, 경제, 사회적 체제를 북한에 그대로 이식하려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자본주의의 물신화와 비인간주의의 병폐를 자성하고 그 병폐를 사회주의적 공동체 사상으로 치유하려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따라서 통일 후 사회통합의 정신적 구심점은 민주주의, 공동체 사상, 사회복지가 되어야 할 것이다(전성우, 1997; 이온죽, 1997). 남북한 모두에게 보편적인 원리로서의 자유 민주주의 가치, 공동 운명체로의 연대감과 정체성, 약자를 배려하고 분배정의를 실현하려는 사회복지의 가치가 새로운 통일한국의 정신적 기초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통일정부는 이러한 가치들을 국민들이 수용하고 생활화하도록 가치교육을 내실화해야 하고, 지역에 따른 차별과 배제를 적극적으로 금지하고 기회의 형평성을 증진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할 것이다.
IV. 결론
통일후의 한국은 기본적으로 다원화 사회가 될 것이다. 이질적인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체계와 가치관, 생활양식들이 혼재된 상태가 상당 기간 존속할 것이다. 이러한 다원성 속에서 공통의 국민정체성과 연대감을 이끌어내고 국민과 국가자원을 동원할 수 있느냐가 통일한국의 가장 큰 과제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구에서는 우리에 앞서 다양성 속에서 단일성을 추구해온 캐나다의 다문화주의를 통해 사회통합의 원리와 메커니즘을 살펴보았다.
물론 캐나다의 다문화주의를 우리의 경우에 직접 적용할 수 없는 부분들도 많지만 이것이 남북한 사회통합에 주는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남북한간의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통일 후 남한식의 체계를 북한에 일방적으로 이식하려하거나 남한의 가치기준을 가지고 북한주민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사회주의적 가치의 장점과 북한주민들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북한주민들이 통합과정에서 소외되고 배제되지 않고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잠재력을 개발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통일 후 하류계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은 북한주민들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대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최소한 출신 지역에 따른 차별과 배제를 금지하여 형평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교육 및 고용 분야에서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을 취하여 이들이 낙후된 근대화를 앞당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통일 정부는 사회통합 관련 법과 제도를 정비하여 다문화적 가치와 분배정의가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고 구속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남한이 통일 후 사회통합을 주도하려고 한다면 정치, 경제, 이데올로기, 사회복지 등의 측면에서 북한출신 주민들을 포용할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한 역량은 하루아침에 길러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부터 통합역량을 증진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우리 사회의 사회약자층과 소수자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고, 지역, 성, 인종/민족, 계층에 따른 불평등체계를 개선해서 누구나 사회의 기회구조에 형평하게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통일을 준비해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자체가 보다 성숙한 선진사회로 발전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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