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4. 대중적, 혹은 대중의 문화

[펌] 소수 차별의 메커니즘(윤인진)

김성윤 2006. 6. 18. 08:58

소수 차별의 메커니즘

윤인진(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요약문

소수차별은 한 개인이 다른 개인에 대해서 부정적인 태도와 사회적 거리감을 갖는 것에서부터 특정 소수집단의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 권리와 기회를 국가차원에서 제도적으로 제한하는 것까지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있다. 따라서 소수차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인 수준의 심리적 메커니즘으로부터 사회화, 관습, 전통과 같은 사회문화적 메커니즘, 그리고 카스트, 격리 등과 같은 법적, 제도적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적 배제와 차별행위의 주된 피해자는 여성, 이민자, 소수인종/민족, 장애인과 같은 소수자이며, 이들을 주류 사회의 자원과 기회구조로부터 배제함으로써 이들에게 실업, 빈곤, 질병, 일탈, 사회적 고립과 같은 사회문제가 집중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차별은 소수자의 생활기회와 삶의 질을 저하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정신적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쳐서 건강하고 긍정적인 자아의식을 갖기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문제가 축적되고 증폭되면 사회구성원들간의 불평등과 갈등이 심화되고 결국은 사회안정과 통합을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1. 서론

유한한 지각능력을 가진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복잡한 세계를 이해하는 방법은 다양한 개인과 현상을 단순하게 범주화하는 것이다. 서로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것들끼리는 묶고 서로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구별함으로써 인간은 무질서하게 보이는 세계에 질서를 부여한다. 범주화는 비록 불완전하지만 제한된 인간의 지각능력을 감안하면 불가피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르다고 하는 것이 그 자체로는 어느 것이 좋고 나쁘다는 가치평가와는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종종 구별을 하면서 자신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서 편견을 갖고 배제하고 차별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범주화의 대표적인 예가 고정관념이다. 우리는 어느 특정 집단의 특성에 대해서 과도하게 일반화된 생각을 해당 집단의 개개인의 성원에게 적용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남성은 이성적이고 독립적이고 수학과 운동에 뛰어난 반면 여성은 감정적이고 순종적이고 예술과 문학에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단순하고 획일적인 생각은 개인의 다양한 개성을 무시하고 개인이 갖고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부정하고 억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러한 형태의 고정관념은 성뿐만 아니라 연령, 신체특성, 계층, 인종, 민족, 종교, 지역 등의 차원에 걸쳐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소수차별의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는 성차별과 인종차별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겠다.

고정관념이 개인의 의식적인 차원에만 머문다면 그다지 문제가 될 것은 없다. 그러나 고정관념은 부정적인 태도와 감정이 수반되는 편견이 되기 쉽고, 개인과 사회 차원에서 자신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인구집단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행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고, 그러한 배제와 차별행위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배제와 차별행위의 주된 피해자는 여성, 이민자, 소수인종/민족, 장애인과 같은 소수자이며, 이들을 주류 사회의 자원과 기회구조로부터 배제함으로써 이들에게 실업, 빈곤, 질병, 일탈, 사회적 고립과 같은 사회문제가 집중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차별은 소수자의 생활기회와 삶의 질을 저하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정신적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쳐서 건강하고 긍정적인 자아의식을 갖기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문제가 축적되고 증폭되면 사회구성원들간의 불평등과 갈등이 심화되고 결국은 사회안정과 통합을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렇게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한편으로는 개인의 자기개발과 그로 인한 사회발전의 가능성을 저해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를 분열시키고 불안정하게 만드는 악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한 사회가 통합을 이루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어떠한 형태의 차별을 철폐하고 모든 사람에게 자기발전의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2. 소수차별의 메커니즘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배제와 차별의 원인, 메커니즘, 결과를 논의하기 전에 우선 중요한 개념들에 대한 이해를 하도록 하자.

1) 소수집단

소수집단이란 한 국가의 여타 인구집단에 비교해서 수적으로 열세이고 지배적이지 못한 위치에 있는 집단을 가리킨다. 소수자는 이런 소수집단의 구성원이다. 소수집단의 구성원들은 여타의 인구집단과 구별되는 민족적, 종교적, 문화적, 언어적 특성을 소유하고 있으며, 서로간에 연대의식을 공유하고, 자신들의 문화, 전통, 언어를 보존하려고 한다. 그런데 위의 특성들이 소수집단을 정의하는데 동일한 중요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인구규모는 그 자체로 중요하다기보다는 이것과 관련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권력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인종은 그 자체로는 생물학적 개념이지만 그것의 사회적 의미는 사회적으로 구성되며, 인종과 관련된 일련의 태도, 규범, 행동양식들은 대부분 지배집단에 의해서 형성되고 정당화되고 유지된다. 예를 들어 백인과 흑인사이에서 출생한 혼혈아는 미국에서는 흑인으로 취급되는데 그러한 판단은 생물학적 특성에 기인하기보다는 사회기득권층인 백인이 인종간의 경계를 확실히 유지하여 흑인에게 백인의 특권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소수집단을 정의하는 핵심요소는 인구규모나 생물학적, 문화적 특성이 아니라 권력의 크기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여성은 비록 인구규모에서 결코 열세가 아니지만 권력과 사회적 대위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소수집단으로 간주할 수 있다.

2) 차별

차별이란 성, 인종, 민족, 종교, 지역 등에 근거해서 개인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영역에서 누릴 권리와 자유를 부정하거나 제한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적 차별은 표현이나 집회결사의 자유, 투표나 대의기관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거부하거나 제한하는 것을 말한다. 사회경제적 차별은 노동시장, 교육, 의료, 기타 사회 서비스에의 접근을 차단하고 제한하는 것을 말한다. 문화적 차별은 언어사용, 문화적 관습과 전통을 지키는 것을 제한하는 것을 말한다. 차별은 그것이 존재하느냐 않느냐 하는 식의 가부의 문제가 아니라 정도의 문제이다. 그리고 차별의 정도와 형태는 상황과 해당 소수집단에 따라서 달라진다. 차별은 명백하고 의도적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은밀하게 행해질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 차별하려는 의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차별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러한 것들이 차별여부를 판정하고 차별자를 처벌하고 차별행위를 금지하기 어렵게 만든다.

3) 소수차별의 메커니즘

소수차별은 한 개인이 다른 개인에 대해서 부정적인 태도와 사회적 거리감을 갖는 것에서부터 특정 소수집단의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 권리와 기회를 국가차원에서 제도적으로 제한하는 것까지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있다. 따라서 소수차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인 수준의 심리적 메커니즘으로부터 사회화, 관습, 전통과 같은 사회문화적 메커니즘, 그리고 카스트, 격리 등과 같은 법적, 제도적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① 편견

개인 차원에서의 소수차별은 인종주의(racism), 성주의(sexism), 지역주의(regionalism)등과 같은 편견과 사회적 거리감에서 행해진다. 인종주의는 인종집단들간에는 선천적으로 지능이나 성향이 다르고 이런 차이가 학업성취도나 사회경제적 지위의 차이를 가져온다고 믿는 것이다. 백인의 흑인에 대한 인종주의는 흑인이 생물학적으로 열등한 지적 능력과 선천적으로 게으르고 폭력적이고 즉각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성격특성을 갖고 있다고 믿는 신념이다. 마찬가지로 성주의는 여성이 남성에 비교해서 지능이 떨어지고 성격특성이 의존적이고 쉽게 동조하는 반면 독립적이고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과도하게 일반화된 고정관념은 인종이나 성에 기초한 불평등한 지위와 역할관계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하게 하고, 소수집단이 안고 있는 많은 종류의 문제(예를 들어 실업, 빈곤, 질병, 범죄)를 개인 특성에 의한 것으로 돌림으로써 다수집단이 느낄 수 있는 도덕적 딜레마를 회피할 수 있게 하여준다. 그리고 소수집단으로 하여금 이러한 신념을 수용하고 내면화함으로써 기존의 불평등체계를 정당하게 생각하고 도전하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편견은 소수집단과 다수집단간의 사회적 거리감을 늘리고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에서의 이들간의 교류와 상호작용을 제한한다. 그로 인해 소수집단은 다수집단이 접근할 수 있는 주류 사회의 자원으로부터 배제되게 되고 자기개발과 신분상승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제한되게 된다. 사회적 배제와 고립으로 인해 소수집단은 열등한 직업과 교육기회에 머물게 되고 열악한 수준의 거주지, 의료시설, 여가시설을 접하게 된다. 이렇듯 편견과 사회적 거리감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소수집단의 생활기회를 제한하고,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② 사회화

인종과 성에 대한 편견이 많은 경험적인 연구들에 의해서 부당한 것으로 판명됐음에도 불구하고 유지되는 것은 이것이 개인의 사회화 과정에서 학습되고 강화되며, 사회 관습과 전통에 의해서 정당화되고, 법과 제도에 의해서 지켜지기 때문이다. 개인의 태도와 가치관, 사회 관습과 제도는 관성을 갖고 있어서 급격한 사회변동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바뀌지 않는 속성을 갖고 있다.

한 개인이 실제로 접촉할 수 있는 사람은 제한되기 때문에 소수집단에 대한 편견은 대부분 사회화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학습한다. 개인의 사회화에서 가장 초기의 그리고 가장 중요한 행위자는 가족이다. 가족은 한 개인이 출생해서 생존할 수 있는 물질적 자원과 보살핌을 제공하는 동시에 그가 사회 성원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규범, 가치관, 행동양식을 가르친다. 이때 자녀는 부모가 특정 소수집단에 대해서 갖고 있는 고정관념과 편견을 수용하고 내면화한다. 많은 사회에서 부모는 자녀의 성에 따라서 차등적인 성역할과 기대수준을 갖고 있다. 아들은 경제적 자립을 대비해서 독립적이고 경쟁적으로 기르는 반면 딸은 순종적이고 얌전하게 기르려고 한다. 그리고 아들에게는 보다 높은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려는 반면 딸에게는 결혼이나 가사에 도움이 되는 수준의 교육기회만을 제공하려 한다. 이런 과정에서 자녀는 남성과 여성에 대한 고정화된 성의식을 수용하게 되고 개인의 잠재력에 대해서 남녀별로 상이한 기대수준을 갖게 된다. 소수인종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부모로부터 자녀에게 전승된다. 부모는 자녀와의 대화에서 소수인종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와 감정을 표현하고, 자기 자녀가 소수인종의 자녀와 교류하는 것을 차단함으로써 자신들이 갖고 있는 태도와 사회적 거리감을 효과적으로 자녀에게 전수한다.

자녀가 성장하여 학교에 갈 나이가 되면 이번에는 학교가 사회화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학교는 정규과목 이외에도 소위 '제2의 커리큘럼'이라고 불리는 인종과 성에 대한 태도와 규범을 가르친다. 교과과목이나 교과서의 내용은 전통적인 성역할을 가르치며 남자와 여자가 추구하는 직업이나 경력에 대해서 차등적으로 진로지도를 한다. 특히 교사와 학생간의 상호작용은 소수집단 학생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초·중·고등학교 교사의 대부분은 중산층 백인이고 학교교육이 추구하는 가치와 목표 역시 중산층 지향적이기 때문에 소수인종 학생들이 종종 무시당하고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백인 학생이 질문을 하면 칭찬을 하고 성실하게 답변을 하는 반면 흑인 학생이 질문을 하면 무시하거나 혹은 수업분위기를 흐리려는 의도로 해석하고 꾸중을 하는 경향이 많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교사들이 소수인종 학생들의 학업 능력이나 잠재력에 대해서 처음부터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태도가 학생의 자신감과 자긍심을 낮추게 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자기실현적 예언과 같이 소수인종 학생의 학업에 대한 관심과 노력을 줄이게 되고 결과적으로 낮은 학업성취도로 연결되어 애초에 교사가 갖고 있던 부정적 인식이 옳았던 것으로 증명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친구 또는 급우와 같은 또래집단 역시 아동의 사회화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또래집단은 가족과 학교와는 달리 아동이 처음으로 참여하는 자발적 결사체로서 성인의 통제에 대항해서 독립심을 추구하는 방식을 가르친다. 또래는 서로에게 공적영역에서 어떻게 자신을 표현하고, 적절한 행동과 부적절한 행동을 구분하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이 과정에서 부모, 학교, 학업, 직업, 성, 인종 등에 대해서 특정한 태도와 행동양식을 학습한다. 모든 연령에 걸쳐서 아동은 이성보다는 동성끼리 더욱 많은 시간을 보내며 또래집단은 전통적인 성역할과 일치되는 행위를 모델로 삼는다. 최근의 한 연구에 따르면 여자아이는 혼자 있을 때는 남자아이와 같은 정도로 동적인 놀이를 하지만 또래 여자아이들과 같이 있으면 그렇지 않다고 한다. 이성이 하는 놀이를 하는 아이는 동성 또래에게 따돌림을 당하게 되어 결국에는 문화적으로 기대되는 성역할 행위에 동조하게 된다고 한다.

또래집단이 소수인종에 대한 태도형성에 미치는 영향 역시 마찬가지이다. 인종간 거주지격리와 사회계층적 지위의 차이로 인해서 서로 다른 인종집단간에 또래집단이 형성되는 경우는 드물며 이런 경향은 심지어 가장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기관이라고 볼 수 있는 대학에서도 나타난다. 백인학생은 백인학생끼리, 흑인학생은 흑인학생끼리만 어울리고 두 학생 집단간의 교류는 수업과 같은 공식적인 영역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동등한 선상에서 서로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된 상황에서 타집단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생기기 쉽고 집단규범에의 동조압력으로 인해 혼자 있을 때보다 또래집단에 있을 때 편견이 강화되기 쉽다.

매스미디어, 특히 텔레비전은 아동과 성인의 사회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디어는 유행하는 대중예술로부터 정치적 사고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주제에 걸쳐 최근 경향을 가르친다. 정보화시대에 미디어는 가족과 학교가 수행해왔던 사회화의 많은 부분을 대행하면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표준화된 사고와 가치관을 주입하고 있다. 비록 과거 수 십 년 동안 상당한 진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디어는 여전히 여성과 소수인종에 대해서 정형화된 시각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여성이 출연하는 빈도는 남성이 출연하는 것에 비교해서 현저히 적고, 비록 출연한다 하더라도 주로 아내, 비서, 여자 친구와 같이 보조적이거나 남성에 의존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상업광고에서도 남자 모델은 고급자동차, 컴퓨터, 금융 서비스를 선전하지만 여자 모델은 세탁세제, 청소기, 화장품을 선전한다. 이러한 미디어 표현은 남자는 공적이고 생산적인 영역을 담당하고 여자는 사적이고 비생산적인 영역을 담당한다는 인식을 시청자들에게 심어준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남성과 여성, 백인과 소수인종에 대한 고정관념적인 역할은 많은 사회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무자비한 흑인 갱에 맞서 싸우는 백인 형사의 영웅적인 모습을 담은 영화는 부지기수이며, 이런 영화가 인종차별이라는 비판을 받게 되자 최근에는 중동 테러리스트에 맞서 싸우는 백인 첩보원의 활동이 단골 메뉴가 되었다. 한때 우리나라의 드라마에서는 가정부는 충청도 사투리를 쓰고 주인은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전라도 사람은 믿지 못할 사람으로, 충청도 사람은 그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으로, 경상도 사람은 화끈한 사람으로 묘사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미디어의 왜곡된 표현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사람들은 그것이 마치 사실인 것으로 인식하여 소수집단에 대한 편견을 형성하고 실제 생활에서 소수집단이 겪는 부당한 대우를 인과응보로 생각하기 쉽다는데 문제가 있다.

③ 사회적 관습

사회화가 인식적 차원에서 소수집단에 대한 태도와 규범을 가르친다면 사회적 관습은 다양한 사회문화적 장치와 메커니즘을 통해서 차별을 제도화한다. 이러한 형태의 차별은 전통과 관습의 형태를 띠기 때문에 차별로 인식하기 어렵고, 변화를 거부하는 보수세력의 저항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강권적으로 철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많은 전통사회에서 여자의 역할은 출산과 가사에 있기 때문에 교육보다는 결혼이 더욱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때 학교교육은 여자를 독립적으로 만들고 부모와 남편에 불순종하게 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가능한 한 여자는 학교에 보내지 않으려고 한다. 예를 들어 나이지리아에서는 딸을 아주 어린 나이에 결혼시킴으로써 학교교육을 못 받게 하고 자녀에 대한 부모의 통제력을 지키려 한다고 한다. 또한 아프리카, 인도, 아랍 국가에서는 여자에게는 부모의 재산을 상속하지 않는 전통적 규례가 있어서 여자들이 스스로 생산수단을 갖지 못해 결국 가족과 남편에의 경제적 의존성을 강화한다고 한다.

④ 제도적 차별

소수차별의 가장 명백하고 강력한 메커니즘은 소수집단을 정치적, 경제적, 사회문화적 영역에서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배제하고 차별하는 것이다. 불과 40년전만 하더라도 소수인종에 대한 법적, 제도적 차별이 노골적이고 공식적으로 일어났다. 미국에서 1964년에 민권법이 제정되기 전까지는 흑인은 백인이 가는 식당, 화장실, 공원, 학교에 들어갈 수 없었다. 백인전용 식당에는 "개와 깜둥이는 들어올 수 없다"는 경고문이 붙기까지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화교에 대한 제도적 차별이 심해서 불과 몇 년전만 해도 화교는 자신 이름으로 부동산과 사업체를 소유할 수 없었다. 전세계에서 화교가 성공하지 못한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화교는 심한 차별을 받았고 그 결과 대다수의 화교가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이주해 가고 말았다. 국제사회에서 인권의식이 증대되면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소수집단에 대한 법적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미국에서 소수인종을 모욕하는 발언을 하거나 채용이나 승진에서 차별하는 행위는 어느 종류의 범죄행위보다 엄중하게 처벌된다. 그렇다고 해서 소수집단에 대한 차별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과거에 비교해 더욱 은밀하고 정교해져서 감식하기가 어려워졌을 뿐이지 소수집단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여전히 존재한다.

제도적 차별이 쉽게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차별이 다수의 지배집단에게 포기하기 어려운 기득권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지배집단은 조직적인 사회적 행동과 사회조직의 원리를 사용해서 소수의 피지배집단을 재산, 권력, 지위 등으로부터 배제하는 체계를 만들어낸다. 불평등체계의 가장 원시적이고 비인간적인 형태는 노예제도와 카스트제도이다. 그러나 그러한 체계를 더 이상 유지하기가 어려워지자 지배집단은 보다 정교한 형태의 불평등체계를 고안해 내는데 그런 형태의 대표적인 예가 분절노동시장 또는 내부노동시장이다. 이런 이중구조의 시장에서는 임금이 높고 고용이 안정된 분야는 백인 남성들이 독점하고 임금이 낮고 고용이 불안정한 분야는 소수인종, 이민자, 여성들이 집중하게 된다. 이 두 분야로의 진입은 처음 단계부터 철저히 구분되어 성, 인종, 학력, 경력 등에 의해서 검열되며, 일단 한 분야로 진입한 후에 다른 분야로의 이동은 제도적으로 차단된다. 어느 한 산업, 직업분야에 소수집단이 집중하게 되면 그때부터 그 분야는 저임금, 저숙련, 임시고용을 특징으로 하는 것으로 사회경제적 지위가 하락하게 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봉제업은 이차세계대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고숙련 백인 남성들이 높은 임금을 받으며 종사하였던 산업이었는데, 기성복의 발달로 인해 저숙련 노동자로도 생산이 가능하게 되면서 이민자, 여성노동자의 진출이 두드러졌다. 이제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의 봉제업은 남미에서 온 불법체류자의 노동력이 아니면 수지타산이 안 맞는 상황에 왔다. 이 분야에 종사하는 이민자, 여성 노동자의 임금이 낮고 고용이 불안정한 것은 표면상으로는 차별에 의한 것이 아니고 사양산업의 특성이지만 그러한 경제적 현상의 근저에는 인종, 성, 시민권에 기초한 제도적 차별이 존재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다수의 지배집단이 소수의 피지배집단을 차별하기 위해서 표면상으로는 전혀 차별적이지 않지만 결과적으로는 차별적인 정책을 실행하는 경우도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언어정책이다. 우즈베키스탄은 1991년에 독립을 선언한 후 민족국가를 형성하는 방법으로서 자민족주의를 표방하고 우즈벡어를 공용어로 선포하였다. 구소련체제에서 러시아어만을 사용해왔던 러시아인, 독일인, 유태인, 한인들은 하루아침에 공직이나 전문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게 되었고 수 백만 명의 러시아인, 독일인, 유태인들이 모국으로 돌아갔다. 이들이 차지하였던 공직과 전문직은 우즈벡어를 사용할 줄 아는 우즈벡인들로 채워졌다.

카스트제도와 언어정책과 같은 의도적 차별과는 달리 전혀 차별하려는 의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으로는 소수집단의 기회를 제한하는 형태의 차별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남녀와 흑백간에 평등한 직업기회를 표방하는 고용주는 채용조건으로서 해당 분야에서의 경력이나 직업훈련을 요구할 수 있다. 이때 고용주는 본인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여성·흑인 후보자를 차별할 수 있다. 여성과 흑인은 과거 오랜 기간의 차별로 인해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현재 상태에서 백인 남성 후보와 동일한 선상에서 경쟁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경찰이나 산업노동자로 선발될 수 있는 신체조건으로 일정한 수준 이상의 신장이나 체중을 요구하는 것은 표면상으로는 전혀 차별적이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여성과 아시아인을 차별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소득에 의한 흑백간의 거주지격리도 겉으로는 차별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흑인을 거주지와 관련된 사회의 기회구조로부터 배제하는 메커니즘이다. 부유한 백인들은 자신들의 거주지역의 가격을 과대하게 높임으로써 흑인과 같은 소수인종들이 이주하지 못하게 장벽을 쌓아 쾌적한 주거환경과 높은 수준의 사회서비스를 자신들만이 독점하려고 한다. 이러한 형태의 은밀하고 교묘한 차별을 방관하게 되면 소수집단은 다수집단이 누리는 기회구조에 접근하지 못하게 되고 빈익빈 부익부의 불평등구조가 심화하게 된다. 따라서 보다 형평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단지 현 상태에서의 차별을 금지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되고 과거의 차별로 인한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여야 한다. 미국의 경우 고급주택 건설업자는 새로운 주택단지를 조성할 때 일정 비율의 주택을 저소득층이 구입할 수 있는 가격대로 배정해야 건설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다.

3. 소수차별 방지 정책을 위한 제안

지금 세계 각국에서는 소수집단에 대해 행해진 역사적 차별에 대한 보상차원에서 취업, 진학, 승진 등에서 소수집단 성원을 우대하는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많은 국가들은 여성과 소수인종에게 직업훈련을 우선적으로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인도, 이스라엘, 파키스탄, 스위스는 공직과 공기업에 취직하려는 소수집단에게 특혜를 제공한다. 피지, 말레이시아, 미국은 여성과 소수인종이 운영하는 사업체를 육성하기 위해 정부 도급의 일정부분을 소수자 사업자에게 할당하는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여성에 대한 제도적 차별을 개선하기 위해 여성인재 할당제를 실시하고 있고, 지방대학생들의 취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방대학 인재할당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나고 있다. 앞으로 이러한 정책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필요성이 증대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에 우리에 앞서 그러한 정책을 실행하고 있는 나라들의 선례를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역사적 차별의 굴레에서 스스로 벗어나기 어려운 소수집단 성원에게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과 같은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은 이들로 하여금 주류 사회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백인 남성과 같은 다수집단 성원들의 기회를 부당하게 역차별하였다는 비판이 만만치 않으며, 실제로 미국대법원은 최근에 성과 인종에 기초한 어퍼머티브 액션이 위헌이라고 판정하였다. 이러한 논란은 집단차원에서의 평등권과 개인차원에서의 평등권을 동시에 충족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잘 보여준다. 또한 평등을 기회의 개념인지 아니면 결과의 개념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서 정부의 정책방향이 달라지고 관련 집단의 이해가 첨예하게 달려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는 어려운 과제이다.

이런 이유들로 각국 정부에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전에 정부가 일방적으로 실시했던 어퍼머티브 액션은 많은 비판과 도전을 받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어떠한 형태의 차별방지 정책을 실행하기 전에 우선적으로 사회적 공감대와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선결과제이다.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정책의 좋은 예가 '합의 할당(consensus quota)'제도이다. 스위스에서는 공공분야의 직업기회를 중요한 언어집단별로 할당하고 있고, 유네스코와 같은 국제기구들은 직원을 각 국가별로 합의된 비율에 맞추어 채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소한 공직분야에서는 지역별 인구비례에 맞춰 인재할당제를 실시한다면 지연에 의한 특혜시비를 줄일 수 있고 사회통합을 촉진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둘째로 제안하는 것은 차별을 방지하기 위해서 인종, 성과 같은 특정 집단을 겨냥한 정책을 실시하기보다는 계층과 같은 보다 보편적인 기준에 기초해서 정책을 실시하여 모든 집단이 혜택을 보지만 소수집단이 결과적으로 보다 큰 혜택을 보게 하는 것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용이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택융자, 창업자금, 대학진학 및 장학금 지원혜택을 빈곤층에게 우선적으로 제공하는 정책은 흑인뿐만 아니라 백인까지도 혜택을 보지만 빈곤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흑인이 더욱 큰 혜택을 보게 되는 것이다.

셋째로 제안하는 것은 평등은 기회와 결과의 개념으로 동시에 해석할 수 있지만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는 것은 논란과 비판의 소지가 크고 심한 사회적 저항을 유발할 것이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기회의 평등을 증대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직업기회를 성별로, 인종별로 할당하는 정책보다는 그러한 직업에 도달하는데 필요한 교육기회와 직업훈련을 소수집단에게 제공하는 정책이 바람직하다. 소수집단에 대한 차별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의 철폐 역시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다는 인식하에 불평등으로 이르는 초기 단계의 차별을 우선적으로 철폐하는 것이 비록 우회적인 접근일지 모르지만 사회적 공감대와 합의를 이끌어내기 쉽고 그로 인해 지속적인 정책 실행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필자 약력

윤인진은 고려대학교에서 사회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미국 시카고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박사학위를 수여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산타바바라)의 아시안 아메리칸학과에서 조교수를 역임하였다. 현재는 고려대학교 사회학과의 부교수로 재직중이다. 주요 저서는 The Social Origins of Korean Immigration to the United States from 1965 to the Present(1993), On My Own: Korean Businesses and Race Relations in America(1997), 『대전·충청지역의 도시화와 지역발전』(1998), 『독립국가연합의 정치경제적 상황과 고려인의 당면과제』(2000)이다. 최근 연구논문으로는 "다인종 사회에서의 소수민족관계", "탈북자의 남한사회 적응실태와 정착지원의 새로운 접근", "Forced Relocation, Language Use, and Ethnic Identity of Koreans in Central Asia"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