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찾사 <언행일치>의 전복적 상상력(20060422)

웃찾사에서<언행일치>라는 코너가 선보이자, 적지않은 사람들이'신선 그 자체', '대박조짐' 등의 찬사를 보내고 있다. 물론 나는 <언행일치>가 어느 정도 흥행을 거둘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다만, 흥미가 도드라져 키보드를 두들길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이 코너가 가진 매력과 유의미함이 우리네 일상생활과 문화에 있어서 다분히 전복적이기 때문이다.

<언행일치>가 가진 웃음의 코드는 언행이 '불일치'함에서 발견된다. 책을 집어던지던 아들이 "앞으로 공부에만 전념할게요!"라고 외치는가 하면, 아들의 노래에 진저리를 치던 부모가 박수를 치며 "앵콜~ 앵콜~"을 연호한다. 게다가 그 아들이 사실은 "딸"이라니 이 '불일치'는 정녕코 극단으로 질주하고야 만다.

난생 처음보는 개그코드에 관객과 시청자는 일순간 정지하고 말았다. 애초의 낯설음은 불가해함이었다. 코너 서두에 언행이 일치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는 했지만, 이 세 명의 배우가 설마 자기들의 다짐을 파괴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 관객들은 아버지역의 배우가 '유사-통아저씨춤'을 추면서 "수아~솨~ 수아~"를 연발할 때만 웃을 수 있었다. 단지 그의 몸짓과 표정이 우스꽝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 코너의 개그코드가 반복되자 그제서야일련의 줄기를 잡아챈 관객들은웃음의 라인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통아저씨춤을 추는 아버지역의 개그맨(좌)>

단순한 개그코너이기는 하지만, <언행일치>는 차라리 문화고발프로그램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본래 사람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왜곡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매순간 의사소통의 끈을 놓지 않는다(가령 남성의 언어와 여성의 언어가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서도 다들 경험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의사소통이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언행일치>가 보여준 첫 번째 미덕이 바로 여기에 있다. <언행일치>에서 배우들은 일상의 언어적/행위적 의사소통이 구조적으로 불일치함을'고발'한다.애초에 언어와 행동은 별개의 채널이다. 그러나 <언행일치>는 언어와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이해를 넘어선다. 언어는 그 자체로 모순적이며, 행동 역시 그 자체로 모순적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맹신하고 있는 언어와 행동이라는 것이 여태껏 존재했던 고답적인 연구성과에도 불구하고, 전혀 과학적이지도 않으며 체계적이지도 않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언행일치>의 두 번째 미덕은 자신이 해체한 언어관/행위관을 스스로 재구성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왜냐하면 이 순간 하나의 텍스트로서 <언행일치>는 배우와 기획자들이 의도했던 바를 넘어서, 인간 고유의 신념체계 자체를 조롱하듯 넘어서고야 말기 때문이다.우리가 지니고 있는 언어체계와 행동체계란 기실 문화적이며 사회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화용론적 해석인 셈이다.

아버지는 춤을 춘다. 그러나 이것은 가부장의 권위와 일치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경박스럽다. 그러나 이것은 모성의 자상함과 일치하지 않는다. 딸은 반항한다. 그러나 이것은 효와 학인의 태도와 일치하지 않는다. 다만 이들이 자신의 행위를 '뒷수습'하는 언어들만이 가부장/모성/효성의 관습을 포장할 뿐이다. 일련의 라인들은 사회문화적으로 학습되고 은폐된 독사(doxa)에 대해 적개심을 감추지 않는다. 언어는 단지 관습에 대한 배반의 욕망을 '느슨하게' 봉합할 뿐이다. 그래서 <언행일치>의 웃음은 인간사의 언어적 이데올로기를 비웃는 것으로 연결된다.

물론 현실에서 아들이 책을 집어던지면서 공부에 전념하겠다는 말을 할 리는 만무하다. 그와 같은 이치로 우리 자신을 비웃는 관객의 웃음 역시 단순한 냉소주의에 그칠 공산은 다분하다. 그러나 이 냉소가 우리 일상에 가지는 전복성의 잠재력은 또 얼마나 거대한가. '생활의 발견'이 가져다 주는 그 가능성.

원래 개그의 목적이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연하는 데에 있지 않다. 현실 속에 존재하는 무수한 사실들에서 특색 있는 하나의 원리를 추출하여, 이를 해석하고 극 속에 코드화하는 것이 바로 개그이다. 리얼리티란 바로 이런 추상화의 과정에서 더욱 잘 유추되는 법이다. 달리 말해 <언행일치>의 개그코드는 현실에 엄연히 존재하는 근본적인 소통불가능(dis-communication) 상태를 포착했다는 데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도 이 코너의 명운을 기대해볼 만한 일이다.

Posted by 김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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