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지적흐름을 이끄는 사람들(11) - 장회익,서울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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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내용에 중심이 될 `온생명'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달라

`온생명'은 생명이란 것이 기본적으로 무엇인가라는 고찰에서 발견해 낸
것인데,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일단은 개체생명과의 구분이 필요하다. 개
체라는 것은 독자적으로 생존하는 것도 아니고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반드
시 그전에 또다른 개체, 쉽게 말해 부모가 있어야 한다. 즉 다른 개체생명과
연계되어 있다. 생명이라는 것은 그러한 연관관계에 대한 언급없이는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이것이 어디까지 연결되었느냐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옛날에 과
학이 발전하기 전에는 생명의 시작에 대해 쉽게 `신화'에 의지하곤 했지만,
현대에는 언제 어떻게 생명이 출발했는가를 차츰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 출
발 이후에라도 전체의 연결과 기능을 함께 보지 않고는 생명의 진정한 모습
을 보기 어렵다.

■ 온생명이 생명과 생명 간의 연결을 강조하는 네트워크적인 설명이라면,
`생태계'와 구분점을 찾기 어렵다

온생명이 생태계와 비슷한 네트워크로 오해될 수 있다지만, 생태계는 현시
점 즉 횡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반면 온생명은 전체역사적인 실체를 가진
다. 그것만이 아니라 온생명은 생명으로서 홀로 설 수 있는 단위를 말한다.
이를테면 아무런 보호자없이 우주에 갖다놓더라도 생존할 수 있는 생명의 성
격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태양과 지구라는 시스템은 굉장히 중요하다. 열역학 제2의
법칙에 의하면 이런 생명체, 생명시스템으로는 고도의 질서를 가진 존재는
존속할 수가 없다. 모든 것은 무질서하게 진행되니 말이다. 그런데 그게 유
지되고 심지어는 발전하는 것을 보자면 태양과 지구사이에서 오는 에너지의
흐름을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온생명이라는 개념에 태양과
지구의 시스템을 포함한다.

물론 생명이 나오기전의 태양과 지구만으로 생명이라고 보지는 않지만, 생
명을 잉태시킨 외적인 조건으로 주목을 놓치면 안된다. 태양과 지구는 온생
명을 지원하는 외적 조건인 동시에 온생명도 되는 것이다. 온생명은 이러한
우주전체 역사와 연관된 것이다.

■ 온생명이 `생명'이라는 카테고리안에 포함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는데

흔히 말하는 생명이란 개체생명인데, 온생명은 이러한 개체생명을 전체적
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온생명의 각각의 단위가 곧 개체생명인 것이다. 그런
데 우리는 개체생명을 직접 경험하고 그 속에서 개념정리를 해왔기 때문에
생명은 곧 개체생명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
온생명은 개체생명과 유사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있다. 개체생명은 번식을
통해 다음세대를 만들고 그럼으로써 유지되지만 온생명은 그 자체로 존재한
다.

■ 생태주의에 관심이 많은데, 아직 우리 토양은 생태운동이 문학을 중심으
로 이루어지고 있다. 과학의 역할에 대한 입장은

과학이 중요한 것은 어떤 사실 자체를 과학적으로 명백히 밝혀낸다는 데에
있다. 생태가 왜 중요하냐는 물음에 마음으로 전달시킬 부분이 있다고 답한
다면 그것은 문학의 역할이고, 보다 구체적으로 이것이 왜 중요하냐, 나아가
앞으로는 어떻게 행동하느냐의 문제에선 과학적 이해가 있지 않고서는 해결
이 불가능하게 된다.

온생명도 이것이 건강한가, 심지어는 발전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가라는 문
제가 지대한 관심사가 된다. 이를 풀기 위해선 분명한 과학적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온생명의 건강문제인 생태문제를 담당할 의사가 없다면 이는 바로
과학적인 시각을 가지고 풀어 나아가야 할 것이다.

물론 과학만으로는 부족하다. 과학의 역할은 사실을 규명하는 것으로 가장
하드웨어적인, 바탕이 되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다. 다행히도 과학은 그 분야
에서 상당히 발달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과학은 부분적이고 구체적인 사실을
밝혀내는데에 급급해 왔다. 이 부분적인 것들이 전체적으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느냐에선 매우 부족하다. 우리한테는 그것이 필요하다. 과학이 중요한 사
실들을 많이 얘기하고 있지만 아직도 그것을 엮어서 앞으로 문명의 방향이라
든가 또는 인류의 미래라든가를 판단할 자료를 정리해내지 못하고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되는 것은 많은 생태학자들이 과학기술에 대한 회
의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일텐데

과학주의는 문제다. 과학에서 본 것만이 지식이고 그외의 모든 고려는 없
는 것으로 판단하는 편향, 편견을 가지는 것이 문제다. 그러나 과학을 안다
고 해서 고의로 다른 측면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이건 알지만 이것 외에
달리 알 수 있는 측면, 내용도 있다는 태도는 가지고 있는 것이다. 과학이란
것에 대해서 보다 많이 알면 도움이 될 것이지, 과학 자체만으로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단지 편견을 가지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얘기다.
기술문제에 있어 무분별하게 기술을 활용하는 문제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무분별하다는 지적에 대해 과학기술이 `인류를 위한 기술'
이라는 강조를 하곤 하는데, 물론 이것을 부인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문제
는 내가 이야기했던 온생명이라는 것이 무시된다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고
려만 있지 온생명에 대한 고려는 없는 것이다. 이런 시각을 갖지 못하고 기
술을 활용하는 것은 문제다.
어떤 측면에서는 기술을 버리고 원시적으로 살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인
류가 지금 생태계를 위해서 기술을 등진 채 열매를 따먹고 사냥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 지금의 생태계가 이 많은 인구를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따라서
기술은 불가피하다. 기술에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할 때,
인류는 기술의 이 긍정적인 측면을 보고 긍정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 기술을 긍정적으로 활용할 것을 주장하더라도, 생태계에 부정적인 여파
를 초래하는 인간의 편의추구 문제는 여전히 남을 것 같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과학과 감성이 연결되느냐에 있다. 물론 인간은 기본
적으로 본능에 의해 지배당한다지만, 온생명을 제대로 파악한다면 그 과정이
생명지향적 감성을 회복하는 길이라 믿는다.
물질적 수단으로서의 기술은 이미 인간을 충족시킬 만큼 충족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사회체제는 새로운 기술개발을 무한반복하도록 조정하고 있
다. 기술을 개발하면 그 사람은 명예와 보상을 얻는다. 또한 인간은 자신을
충족시킨 기술 보다 새로운 기술을 기대한다. 이렇게 상승작용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이다.
이러한 욕구와 충족수단의 무한성장의 고리를 잘라내야 한다. 이것은 과학
만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할 것이다. 과학은 그 자체로 차가운 것이므로 감성
과 연결돼야 한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이다. 욕구를 줄이는 행동을 유발하
려면 생명지향적 감성을 가지는 것이 최선이고, 이를 위해선 온생명에 대해
눈을 떠야 한다.

■ 종종 인류가 문명사적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신문명의 급격한 발전단계와 더불어 35억년전부터 있어 온 온생명을 최
근들어 자각하고 있다. 이는 새로운 출발점으로서 도약의 단계이기도 하지만,
온생명을 파괴하는 세태를 보자면 파멸의 단계로도 해석할 수 있다. 내가
전환기라고 말하는 것은 이를 테면 둘 사이의 갈림길을 지적하는 것이기도
하다.

온생명 안에 인간이 있는 온생명을 인식했다는 것은 자기라는 존재를 보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온생명에 있어 인간은 어느 정도 중심적인 위치에 있
다고 보는데 이것은 크나큰 사건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 중요한 시점에 온생
명을 제대로 의식하지 못한다면 인류문명사는 35억년 만에 파멸의 길로 접어
드는 것이다. 온생명 안에서 인간이 암세포 같은 기형적인 성장을 한다는 것
은 치명상 그 자체다. 지금은 이러한 파멸이냐 새로운 출발이냐 하는 선택의
시점이다.

■ 최근 생태학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는 여러 지식패러다임의 문제점이 있
다면, 또 가능성을 말한다면

여러분야에서 여러 사람들이 생태학에 대한 관심을 모으는 것은 참 다행스
럽다. 예를 들어 김종철 선생의 경우 문학적 감수성을 가지고 여러 사람들에
게 감동을 주고 있으며, 김지하 선생은 전통문화나 어떤 동양적 정신을 끌어
안고 실제 생명운동을 하면서 현실사회에 관심을 잃지 않고 있다. 다른 분들
도 과학철학분야 등에서 여러 조명을 하는 것은 환영스러운 일이다. 나 역시
과학이라는 분야에서 생태학적 접근 내지 기여를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각도에서 볼때는 물론 다른 이해가 생길 수 있다. 내가 볼 때 김지하
선생의 경우 거시적으로 우주전체 생명을 주목하는데, 물론 그것도 또다른
의식을 준다는 데에 긍정적 기여를 하지만, 과학적 측면에서 볼 때 그가 우
주적 생명전체를 거론한다면 이것을 과연 어떻게 보살필 것인가 하는 구체적
인 문제를 가져온다. 우주라는 것은 무한히 크니까 섬김의 대상이 된다고 하
면서 이를 정말 어떻게 보살펴야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막연해지는 것이다.
종교적인 측면에서는 그런 시각이 가능하겠지만 우리의 문제에 있어서 우리
자신이 어떤 위험에 처해있는가를 명백히 이해하는 데에는 과학적인 시각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 서로 다른 보완이 요구되는 것이다.

■ 끝으로 정책적인 측면에서 생태학적 문제를 조명시킬 수 있는 자연과학
교양교육이라든지, 과학기술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말해 달라

여전히 과학교육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본다. 사물을 과학적으로 이해한다
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것은 과학자만이 아
니고 전체 지식인에 해당하는 것이다. 전공에 관계없이 기본적인 과학의 이
해는 필요하다.

기술정책에서는 정말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봐야 할 것이다. 자원만 낭
비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식은 안된다. 지나친 표현일지 모르지만 35억년을
유지해온 온생명의 입장에선 백만년은 촌각에 지나지 않은 시간이므로, 백만
년의 고민을 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내다보고 생태적으로 건전한가 하는 판
단에서 정책을 만들고 그것에 맞는 연구를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김성윤 기자>

Posted by 김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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