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 「파리, 19세기의 수도 - <1939년>의 개요」, 『세계의 문학』 103호, 2002년 봄호

김성윤, 2002년 10월 4일


서론과 결론 : 환영(판타스마고리아, fantasmagorie), 그리고 우울로 나아가는 새로움의 저주


인류의 생활 형태와 창조물들 (중략) 그러한 재물과 보화는 사회의 지속적인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계승될 수 있었다 (중략) 그리고 이러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기묘하게 변질되기도 했다 (하략, 74)

19세기로부터 유래한 새로운 형태의 행동들 그리고 이제 경제와 기술에 기반해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창조물들이 어떻게 환영들fantasmagories의 우주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는가 (중략) 그것들은 환영들로 현재화되었다. ⓐ철골구조가 최초로 활용된 것은 아케이드에서였으며, ⓑ세계 박람회에서도 나타나는 이것이 오락 산업과 맺고 있는 관계는 아주 중요하다. ⓓ이와 동일한 종류의 현상에는 시장의 환영들에 자기를 내맡기는 산책자의 체험도 포함된다. (중략) ⓒ시장의 이러한 환영들에 대응하여 실내의 환영들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그가 살고 있는 방들에 개인의 사생활의 흔적을 남겨놓으려는 인간의 절박한 요구에 의해 구성된다. ⓔ문명 자체의 환영들의 경우 이것의 대표 선수는 오스망에게서 그리고 파리를 변모시킨 그의 작업 속에서 현재화된 표현을 찾아볼 수 있다. (74)

블랑키가 최후의 저서에서 이러한 환영들의 가장 무시무시한 모습을 이 사회에 명시해 주었다. (중략) 인류는 영겁의 처벌을 받고 있다. 인류가 아무리 새로운 것을 고대해도 그것은 항상 이미 존재하는 현실임이 드러나는 것이다. (중략) 환영들이 계속 존속하는 한 인류는 신화적인 불안의 희생물이 될 수밖에 없다 (하략, 75)

이러한 구상의 역설은 - 의문의 여지없이 저자 본인도 이러한 역설을 피해갈 수 없었다 - 그가 사회에 대해 내리는 무시무시한 고발이 이러한 사회의 결과에 전면적으로 복종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중략) 여기서 블랑키는 결국 역사 자체의 환영이라는 것(태곳적의 과거가 최근의 새로운 것으로서 행세하는 것을 과시하는)이 드러나고 말 진보의 이미지를 추적해 보려고 하고 있다. (94)

진보가 없는 것이다 …… 우리가 <진보>라고 부르는 것은 각각의 특수한 새계에 국한되어 있으며, 이것과 함께 사라진다. (95)

자신의 환영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세계 - 보들레르의 용어를 빌리자면 이것이 바로 <근대>이다. (중략) 블랑키는 새로움을 저주받아 마땅한 모든 것의 속성으로 바라보고 있다. (96)


A 푸리에 또는 아케이드


1. 직물산업과 철골건축

직물 산업이 절정기. 상품을 재고 상태로, 대량으로 가게에 항상 구비해 놓을 수 있는 최초의 상점인 유행상품점. 이것이 백화점의 선구자였다. 아케이드들은 사치품 판매의 중심지였다. 아케이드를 꾸미기 위해 예술은 상인에게 봉사하게 되었다. 그것들은 여행객들을 매혹시키게 된다. 「산업의 사치를 위해 최근에 발명된 이 아케이드들의 지붕은 유리로 씌워지고, 대리석 벽으로 통로들이 건물의 모든 구역까지 이어져 있는데, 이 아케이드의 소유주들이 이처럼 엄청난 대모험을 위해 힘을 합쳐 이 시설을 만든 것이다. 천장에서 빛을 받는 아케이드의 양측에는 극히 호화스러운 가게들이 들어서 있기 때문에, 이 파사주는 하나의 도시, 축소된 세계가 된다」 (75, 76)

철골건축의 시작. 제국적 양식은 혁명적 테러리즘의 양식으로, 이 양식에서 국가는 바로 목적 그 자체가 된다. 국가는 부르주아의 지배를 위한 도구. 철의 도입과 함께 구조라는 원리가 건축을 지배하게 된다. 건축은 잠재 의식의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지니어라는 개념이 통용되기 시작. 건설가와 장식가, 에콜 폴리테크니크Ecole Polytechnique와 에콜 데 보자르Ecole des Beaux-Arts 간의 경쟁이 시작된다. [건축/장식의 분리, 기술/예술의 분리. 근대화 양식의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C-3에서 다시 언급하고 있다] … 철은 주택 건축에서는 기피되지만, 아케이드, 박람회장, 기차역 등 일시적인 건조물들에서는 사용된다. (76, 77)


2. 푸리에주의와 팔랑스테르1)

[푸리에주의에 관하여] 팔랑스테르(phalanstere)는 인간들을 도덕성은 아무 소용도 없는 관계들의 체계 속으로 되돌려놓기 위해 고안된 것. 푸리에는 이러한 사회를 설립하기 위해 미덕vertu에 의존하려고 하지 않았다. 정념passions이 그것을 위한 원동력이었다. 기계적 정념passions mecaniste과 음모적 정념passion cabaliste이 착종된 상태로 결합된 채 집단 심리가 시계의 태엽 장치처럼 정확하게 돌아가는 메커니즘을 꿈꾸었다. 푸리에주의적인 조화harmonie. (77)

[팔랑스테르의 제정시대적 성격: 만남] 그는 도시민들에게는 만남이 얼마나 중요하게 될지를 예견하고 있다. 팔랑스테르의 주민들에게는 하루가 그의 집을 중심으로 조직되는 것이 아니라 중매인에 의해 각종 모임이 주선되는 주식 중계소와 비슷한 커다란 홀 안에서 조직된다. 푸리에는 아케이드 속에서 팔랑스테르의 건축을 위한 교범을 발견. 그의 유토피아의 <제정 시대적> 성격. (78)

[팔랑스테르에서 비롯된 도시에 관한 환영] 상업적 용도로 계획된 아케이드는 푸리에게는 주거용 건물이 되었다. 팔랑스테르는 아케이드로 만들어진 도시. <아케이드로 만들어진 도시>에서 엔지니어의 건축은 환영의 성격을 띠게 된다. 파리인들의 환상을 사로잡는 꿈. <거리-회랑>. [회랑화된 거리. 즉 실내화된 거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상점과 아파트를 갖춘 도시. [푸리에는 시민들이 거리로 나오는 것을 기대했는지 모른다. 집이 아닌 만남의 장소를 지향하고, 아케이드는 환영을 품지만 동시에 사라들을 만나게 한다](78)

[착취구조, 그리고 기술에 대한 사회적 지배의 실패] 푸리에에게서 기술은 자연이라는 화약에 점화하는 불꽃처럼 보인다. 인간이 자연을 착취한다는 후일의 생각은 생산 수단의 소유자들에 의해 실제로 인간이 자연을 착취하게 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기술적 생활을 사회적 생활 속으로 통합하는 것이 실패한다면 그것이 실패한 원인은 이러한 착취에 있다. [자연을 착취하는 구조는 우주를 실내화하는 근대화 양식과 닮아 있다. 벤야민은 근대 도시의 삶의 양식의 근간을 착취 구조에서 찾는 듯하다] (79)


B 그랑비유 또는 세계박람회


1. 세계 박람회와 상품의 물신성 메커니즘

세계 박람회는 상품이란 물신을 향해 떠나는 순례의 중심지. <노동자 계급에게 즐거움을 제공하고, 이들에게 해방의 축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개최된 것. 지구 전체의 산업화를 꿈꾼 생시몽주의자들. (80)

세계 박람회는 소비로부터 강제로 배제당한 대중들이 상품의 교환 가치와 자신을 동일시할 정도로 교환 가치를 맹신하도록 만드는 일종의 학교. 「전시중인 상품에 손대지 마시오」 이리하여 세계 박람회는 환상의 공간에 이르는 길을 열어주는데, 이러한 공간 속으로 들어간 개인은 혼이 빠지게 된다. 산업이나 정치적 선전이 노리는 복종 상태로 이어지게 된다. (81)

세계 박람회는 특선품들의 세계를 구성해 낸다. 그랑비유의 환상적 작품들도 동일한 것을 성취해 낸다. 즉 우주를 근대화하는 것이다. 그의 솜씨로 만들어진 토성의 띠는 토성의 주민들이 저녁에 산책을 할 수 있는 주철 발코니가 된다.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세계 박람회장에서 주철 발코니는 토성의 띠를 대변하게 되며, 감히 이 띠 위로 발걸음을 옮겨본 사람은 토성의 주민들로 변신하여 마술적 환상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에 처하게 된다. (81)


2. 패션, 페티시즘

패션은 상품 물신이 숭배받길 원하는 의식의 틀을 정해 준다. 우주뿐만 아니라 일용품의 세계에까지. 지배의 본성.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시체의 권리를. 페티시즘은 이것의 생명력이 된다. 「자연의 영역에 속하는 어떠한 소재라도 이제 여성의 의복의 구성 요소로 집어넣을 수 있게 되었다. 나도 코르크로 만들어진 매혹적인 드레스를 본 적이 있다. ……강철, 양모, 사암(砂巖), 각종 끈이 갑자기 의복 예술의 한가운데에 출현했다. …… 베네치아 산 유리로 구두를 만들고 바카라 산 크리스털로 모자를 만들고 있다」 [앞서 자연의 착취(→토성의 근대화)→박람회화→교환가치 맹신의 과정이 패션에서도 이어진다] (82)


C 루이 필립 또는 실내


1. 사적 개인의 등장과 실내의 환영적 성격

루이 필립 치하에서 사적인 개인이 역사에 등장한다. 그는 주위를 둘러싼 사적인 환경을 정비하면서 이러한 두가지 관심사[사업상의 관심사와 사회적 기능에 대한 인식] 모두를 억제한다. 이로부터 실내의 마술적 환상의 세계가 등장한다. (83)

실내는 예술이 도피하는 피난처이다. 수집가. 그에게는 사물을 소유함으로써 사물로부터 상품적 성격을 제거해야 하는 시지푸스적 과제가 떨어진다. 하지만 그는 사물에 사용 가치가 아니라 애호가의 가치만을 부여할 수 있을 뿐이다. [여기서 사용가치-교환가치의 구도가 사용가치-애호가의 가치라는 구도로 옮아감을 발견할 수 있다] (83)


2. 사적 시민의 공간 사유화, 실내

실내는 단순히 사적인 개인의 우주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동시에 그의 방물상자이기도 하다. 루이 필립 이래 부르주아는 대도시의 공간에서 사생활의 흔적이 부재하게 된 것을 보충하려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중략) 최초의 탐정소설에서 범인들은 신사나 깡패들이 아니라 그거 중간 계급의 단순한 사적인 시민들이었다. [근대성의, 근대적 삶의 단면. 선과 악이 자아-타자 구도였던 중세. 그러나 근대에 와서는 선/악이 내재화된 사적인 시민주체로 형상화된다] (84)


3. 실내의 청산과 거리진출의 기획

실내가 청산. 실내의 예술은 장르 예술이었다. <모던 스타일>. 항상 무엇이라도 받아들이고 싶다는 갈망. [자본(주의)와 무척 닮지 않았는가!] 철골 건축의 새로운 요소들-특히 버팀목-이 이러한 <근대적 양식>의 주의를 끌었다. 장식의 영역에서는 이러한 형태들을 예술로 통합시키려고 했다. 장식적 요소들이 하는 역할은 회화에서 화가의 서명이 하는 역할과 동일했다. [실내의 청산이 하나의 과도기가 되면서, 기술/예술의 분리, 건축/장식의 분리의 단계로 진입해 들어간다.] (85)

사적인 시민들의 삶을 위한 진정한 얼개는 점점 더 사무소나 상업의 중심지에서 모색되는 경향. 개인의 삶을 위한 허구적 틀은 개인의 집 안에 구축된다. 내면으로 도피함으로써 기술과 맞서보려는 개인의 시도는 그를 파멸로 이끌 뿐이다. [이를 도시진출론 혹은 거리진출의 기획으로도 독해할 수 있을 듯하다. 실제로 강내희, 「서울, 일상공간의 동학」에서는 벤야민에 대해 이러한 이해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85)


D. 보들레르 또는 파리의 거리들


1. 산책자와 환영, 그리고 반역

산책자. 그의 삶의 방식은 마음을 달래주는 환영의 이면에 우리 시대의 대도시에 미래에 살게 될 주민들의 비참함을 은폐하고 있다. 산책자는 친숙한 도시를 마술적 환영으로 바꾸어버린다. 이 환영은 후일 백화점 장식에 영감을 불어넣은 것. 산책을 이윤을 남기는 데 이용. 백화점은 산책을 위한 마지막 장소가 된다. (86)

보헤미안들이 형성. 블랑키야말로 이러한 계급을 대표하는 가장 걸출한 인물. 블랑키의 이미지는 보들레르의 「악마의 연도」 속에서. 보들레르의 반역은 항상 비사회적인 인간의 반역이었다. [댄디를 상기하라] 그의 반역은 출구가 없는 막다른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평생 유일한 성적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매춘부들밖에 없었다. (87)


2. 근대자본주의에서는 아무리 새로운 인간도 언제나 유형 속의 인간일 뿐

행인에게서 발견되는 유형적 특징들. 새로운 유형의 구성 요소. 어떤 한 유형의 정본. 특정한 유형의 마법의 원. 보들레르는 이러한 행렬의 모습이 <지옥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평생 그가 주의 깊게 살펴본 새로움은 다름이 아니라 <언제나 똑같은 것>의 환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88)


3. 새로움의 역설, 보들레르의 근대성

상품으로서 가격이 매겨지기 때문에 모든 사물이 감수해야 하는 이러한 비천화는 보들레르에게서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새로움의 가치에 의해 균형이 맞추어지고 있다. 새로움은 상품의 사용 가치와는 독립적인 성질이다. 이것은 동시에 유행이 끊임없이 공급하려는 착각의 원천. 예술의 최후의 방어선은 상품의 공격의 최전선과 일치 (89)

「우울과 이상spleen et ideal」. 가장 오래된 외래어인 ideal이 가장 최근에 도입된 외래어 spleen과 결합되어 있다. 최고로 새로운 것이 독자들에게는 <최고 오래된 것>으로 제시되는 이러한 제목을 통해 보들레르는 그의 근대 개념에 극히 생생한 형태를 부여할 수 있었다. 근대성의 기준. 언젠가 태곳적에 있었던 것이라는 숙명을 낙인처럼 갖고 있으며, 이러한 근대성의 탄생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그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89)


E. 오스망 또는 바리케이드


1. 오스망의 ‘파괴적’ 도시 건설

오스망이 주도한 공사의 진정한 목적은 내전에 맞서 도시의 안전을 확보하는 데 있었다. 그는 파리의 거리들에서 바리케이드가 세워지는 것을 영원히 불가능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오스망은 두 가지 방식으로 그러한 전투를 방지하려고 했다. 거리를 확대해 바리케이드를 세우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새로운 거리를 만들어 병영이 노동자 구역과 직선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것이다. (91)


2. 오스망 기획의 도시-거리 구성

부르주아의 정신적?세속적 권력의 전당들은 이처럼 길게 이어진 거리들에서 화려하게 신격화되었다. 개통식 이전의 전망들은 장막에 의해 은폐되며, 마치 기념물처럼 막이 제거된다. 그러면 교회, 역, 기마상 또는 그 밖의 다른 문명의 상징이 시야에 들어오게 된다. 파리가 오스망식으로 개조되는 것과 함께 환영은 돌로 구현된다. 거의 영원히 남아 있을 수 있도록 만들었지만 이것은 동시에 부질없는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기도 한다. 오페라 가-당시에 떠돌던 악담에 의하면 루브르 박물관의 수위실에 대한 전망을 제공해 준다는 말이 있었다-는 이 지사의 과대망상이 얼마나 억제하기 어려운 것이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92)


3. 코뮌의 거리와 바리케이드 설치

바리케이드는 코뮌 동안에 재건되었다. 이것은 이전의 어느 때보다도 튼튼하게 만들어지고, 훨씬 더 정교하게 설치되었다. 이것은 거대한 대로들boulevard을 가로질러 길게 뻗쳐 있었으며 종종 2층에 달하는 높이로 쌓여 뒤에 있는 참호들을 은폐해 주었다. 코뮌은 프롤레타리아의 초기의 열망을 지배하고 있던 환영들에 종지부를 찍었다. (92, 93)

Posted by 김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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