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긍정과 상호보완으로 새 지도 그리기 필자: 김성윤 (서울문화이론연구소 연구원 cydemo@hotmail.com) 한국의 문화연구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각 연구자 혹은 연구집단의 계보를 그려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계보학적 입장을 취한다는 것은 단순한 흥미를 넘어 연구인들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문화연구라는 판에 뛰어들었느냐를 따지는 문제이기 때문에 자못 의미심장한 주제이기도 하다. 어쨌든 그 계보는 대충 이렇다. 크게 봤을 때 한 줄기는 선비문화/전통문화를 운운하거나 문화에 대해 정책적/시장적 통계를 위주로 하는 문화주의적 입장으로 뻗쳐나가고, 나머지 한 줄기는 이런 입장들에 대해 반대하며 문화연구를 지적/비판적 프로젝트로 보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문화주의적 입장들을 보면 문화를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것으로 여기고, 분과학문적인 입장에 입각해서 문화를 대한다. 이들의 입장을 보면 한국문화를 일제나 서구에 의해 결코 감염되지 않았거나 그와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면서, 자신들의 논의를 보편적인 것으로 추상화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문화주의적 입장의 다른 축으로 실증주의적인 입장도 있다. 보통은 정책 수립을 위해 실시되거나 혹은 시장조사나 시장분석을 목적으로 수행되는데, 주된 연구 방법으로는 통계 등에 의존한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의 실태, 에 대한 조사 등 같은 연구들이다. 그러다보니 문화를 삶의 양식 자체로 보기보다는 문화정책이나 문화산업을 기술하기 위한 수단으로 요청하는 경향이 짙다. 지금부터 얘기하는 입장들은 위와는 정반대되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 문화연구를 '문화 연구'라고 띄어쓰지 않고 '문화연구'라고 붙여 쓰는 사람들이 이에 해당한다. '문화 연구'라 함은 보통 '문화를 연구'한다는 저간의 함의를 가지고 있는 반면에, '문화연구'라고 붙여 씀은 문화를 목적어로 대상화시키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사회의 각 영역에 문화라는 심급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모든 사회현상을 대할 때 문화적인 견지를 가지고 보겠다는 입장인 것이다. 즉, '문화 연구'는 문화를 연구하지만, '문화연구'는 문화적 연구(물론 '문화를 연구'도 포함해서)를 한다. 문화연구 즉 문화를 지적/비판적 기획으로 여기는 입장을 살펴보면, 이 안에도 다양한 배치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세 진영으로 압축해서 볼 수 있는데, 비판커뮤니케이션 전통과 페미니즘 전통, 문화운동 전통 등이 그것이다. 비판컴은 80년대 들어 독일과 미국으로부터 수입한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비판컴을 통해 문화연구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러나 신방과라는 체제에서 수입한 학문이다 보니, 문화연구의 다른 전통과 달리 비판컴 전통은 그 자체가 학제적이고 제도화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탓에 문화연구의 시조라고는 하지만 문화연구가 애초에 내걸었던 '지적/비판적' 기획이라는 슬로건과는 배치되는 측면이 없지 않다. 그리고 90년대부터 지속되어온 페미니즘 전통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또 하나의 문화'와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에서 이 작업을 수행하는데, 여성이라는 입장에 있다보니 문화연구 내부에서조차 비주류적 입장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러나 문화연구나 페미니즘 모두가 공히 분과학문을 넘나드는 지적 기획이라는 것과, 소수자의 문화사회적 승인과 전복을 꾀하는 정치적 기획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중요한 접합점으로 용인받아야 하는 영역 중의 하나이다. 마지막으로 70년대 김지하의 '풍자냐 자살이냐'를 필두로 시작된 문화운동과 80년대 문예운동의 계급적/전복적 지향점을 계승한 문화운동 전통이 있다. 이들은 문화과학과 현실문화연구에서와 같이 출판활동을 통해 문화연구를 실천하기도 하고, 90년대 중반 들어 일간지 10매 비평등으로 상징권력화되기도 했던 문화비평 글쓰기를 통해 하나의 뚜렷한 전통을 형성한다. 그리고 99년에는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라는 시민단체를 설립하면서 연구 차원을 뛰어넘는 운동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줄기와 가지를 치면서 글을 쓰긴 했지만, 짧은 지면이라 우리나라의 문화연구의 지형과 흐름을 짚어낸다는 것이 불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현재의 시점에서 문화연구는 문화주의와 선을 그으며 비판컴/페미니즘/문화운동 등의 계보를 그리며 진행 중이라는 점만은 빼먹지 않고 얘기한 것 같다. 앞으로는 이 세 전통이 현재까지처럼 서로에 대한 절대부정이 아니라, 서로를 부분 긍정하면서 상보적으로 새로운 전통을 만들고 대중/다중들의 권능을 강화할 수 있는 지도를 그려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