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너희가 빼빼한 사람의 비애를 아느냐
[뉴스메이커 2005-07-08 12:03]
많은 사람들이 살을 빼는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을 때, 그런 소동과는 무관하게 한편에서는 살이 찌지 않는다고 호소하는 이들이 있다. 살을 찌우기 위해 몸에 좋다는 음식은 다 먹어 보는 것은 물론, 온라인에 카페를 열어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 서로 위로하고 정보를 교환한다. 살찌고 싶은 욕망이 얼마나 처절하길래…. 뜻있는 곳에 길은 있는 것일까. 마른 사람들의 아우성과 저체중 탈출법을 알아보자.
안양대학교 국문과 3학년에 재학 중으로 학보사 기자이자 한 인터넷신문 시민기자로도 활동하고 있는 송지산씨(22). 1주일에 한 번 집에 들어갈까 말까 할 만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의 가장 큰 콤플렉스는 ‘몸’이다. 193㎝의 큰 키임에도 불구하고 체중이 70㎏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유난히 말랐던 그에겐 항상 ‘젓가락’ ‘빼빼로’ ‘뼈다귀’ 등의 별명이 따라다녔다.
살을 찌우기 위해 어머니가 보약 등 몸에 좋다는 건 다 먹여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중학생 시절엔 툭하면 또래 아이들에게 얻어맞고 들어오곤 했다. 송씨는 “말랐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라면, 자장면, 삼겹살 등 칼로리가 높다는 음식을 즐겨 찾아 먹었으나 효과가 없었다.
지금도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다치면 뼈 부러지겠다”거나 “바람 불면 날아가겠다”는 소리를 종종 한다. ‘어디 아프냐’는 말과 함께 마른 사람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얘기다.
송씨의 고민은 여름철로 접어들면서 더 깊어지고 있다. 얇고 짧은 여름 옷의 특성상 여름에는 앙상한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출의 계절 여름은 뚱뚱한 사람들 못지않게 마른 사람들에게도 곤혹스러운 계절이다. 송씨는 “이제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상처받지 않을 정도로 단련됐지만, 마지막으로 군대에 희망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마른 사람도 군대에 가면 규칙적인 생활 덕분에 살이 찐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송씨는 재작년 군입대를 위한 신체검사에서 체중미달로 2급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젓가락·빼빼로 등 별명 따라 다녀
마른 이들의 이같은 고충은 온라인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인 다음과 네이버 등에는 살찌고 싶은 사람들이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카페가 여러 개 개설되어 있다. 다음카페의 ‘살찌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에는 6만7000여 명의 회원이 가입해 있고, 네이버카페의 ‘스미골들의 동굴’과 ‘살찌기 학교’에는 각각 7700여 명과 4600여 명의 회원이 가입해 있다. 스미골은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이중인격 괴물로, 야윈 몰골에 등은 굽었으며 머리카락은 거의 없는 흉측한 모습을 띠고 있다. 마른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이름이다.
마른 사람들을 위한 인터넷카페가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것은 한동안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몸짱 신드롬’과도 관계가 있다. 얼굴 못지않게 몸매가 중요시되면서 마른 사람들의 살찌고 싶은 열망도 한층 증폭된 것이다.
이들 카페의 게시판에 올라온 글에는 마른 이들이 살을 찌우고 싶은 욕망이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다. 어느 회원은 “살을 찌우려고 별짓 다해 봤는데 안 찌더라”며 “친구들과 다니면 동생 같다고 하고, 제일 짜증날 때는 여자애들보다 팔뚝과 허벅지가 얇은 게 티날 때”라고 하소연했다. 또 178㎝의 키에 체중이 54㎏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회원은 “정말 더워도 긴팔 긴바지 차림을 할 수밖에 없다”며 “여자친구는 저와 팔꿈치라도 닿으면 몸에 못이 박히는 것 같다면서 ‘삐돌이’라 부른다”고 토로했다.
이런 고민은 여자도 마찬가지다. 160㎝의 키에 체중이 41㎏인 한 여성은 “남들은 날씬해 보이기 위해 몸에 달라붙는 옷을 입는데 나는 옷맵시가 안 나서 예쁜 옷을 입어도 소용이 없다”며 “이렇게 헐렁한 옷을 입고 청춘을 보내야 하는 내 자신이 너무 불쌍하다”고 털어놓았다.
웰빙과 다이어트 열풍으로 소식(小食)이 장려되고 있는 상황에서 마른 사람들의 이같은 고민은 상대적으로 외면받아왔던 게 사실. 실제로 비만과 다이어트에 대한 정보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홍수를 이루고 있는 데 반해 살을 찌우기 위한 전문적 지식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2000년 다음카페에 ‘살찌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을 만든 운영자 남호택씨(31)는 “당시 나도 186㎝의 키에 체중 60㎏으로 매우 마른 체형이었다”며 “어떻게 하면 살을 찌울 수 있는지 온·오프라인을 수소문했으나 찾지 못해 스스로 카페를 만들어 정보를 교류하기 시작했다”고 카페 설립 동기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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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찌모’ 6만7000여 명 회원가입
문제는 카페에 회원들이 올린 정보 대부분이 전문지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렇게 하니 살이 찌더라’는 내용이 상당수다. 잠자리에 들기 직전 라면이나 아이스크림, 초콜릿을 먹으라거나 심지어 개·돼지 사료를 먹으면 살이 찐다는 잘못된 정보를 흘리는 경우도 많다.
급한 마음에 탄수화물이나 단백질 보충제를 과용하다가 설사 등 부작용을 겪는 사례도 적잖다. 건강하게 살을 찌우는 정확한 의학적 정보가 없는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얄팍한 상술을 발휘하는 장사꾼들도 있다. 마른 몸으로 인해 대인기피증까지 겪고 있다는 어느 회원은 “살을 찌워서 좀더 멋진 대학생활을 보내고 싶었는데 이제는 몸도 마음도 지쳤다”며 “8개월간이나 이런 얘기, 저런 얘기에 솔깃해 노력했으나 효과가 없었고 오히려 예민해지기만 해 이제는 포기하려고 한다”고 우울한 심정을 드러냈다.
마른 체형으로 인한 콤플렉스는 여성보다는 남성이 심각한 편이다. 남성다움의 상징인 ‘건장한 이미지’가 상실된 탓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여성들이 ‘왜소한 남성’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현상과 일맥상통한다. 박용우 성균관의대 가정의학과 교수는 “남성보다 여성이 비만에 민감한 것과 반대로 여성보다 남성이 마른 체형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크다”고 말했다.
지금은 184㎝에 82㎏의 건장한 몸매를 자랑하지만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몸을 집중적으로 불리기 전에는 무척 마른 체형이었다는 전형민씨(31)는 “비쩍 마른 남자들은 자신감을 상실한 경우가 많다”며 “여자들에게 자신이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도 본능적으로 깨닫는다”고 말했다. 그가 근육질의 몸매를 갖게 되면서 자신감까지 덤으로 얻게 된 것은 물론이다.
마른 사람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공통적으로 수영장 등 몸의 노출이 심한 장소에 가는 것을 꺼린다. 1년 전까지만 해도 171㎝의 키에 47㎏의 체중이었다는 김준환씨(26)는 “마르지 않은 사람은 마른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명해도 무조건 많이 먹으면 살찐다거나 자기와 며칠만 같이 있으면 10㎏쯤은 거뜬히 늘게 해주겠다는 식의 말을 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 모든 것이 마른 사람들에게는 고통”이라고 말했다.
뚱뚱한 사람들이 마른 사람들의 살찌고 싶은 욕망을 “배부른 소리”라고 말하는 것도 달갑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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