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ovanni Arrighi, ch.4 "The Long Twentieth Century", in The Long Twentieth Century: Money, Power and the Origins of Our Time, Verso, 1994.
김성윤/ 2006년 12월 4일
The Dialectic of Market and Plan (시장과 계획의 변증법)
보호비용을 내부화함으로써 제노아를 넘어선 네덜란드 체제와 마찬가지로, 영국 체제는 생산비용을 내부화함으로써 네덜란드를 넘어섰고, 미국 체제 역시 거래비용을 내부화함으로써 영국과의 관계에서 같은 일을 수행했다. 네 번째(미국) 체계적 축적순환 수직적으로 통합된 경영조직의 경쟁 이익. 거래비용이란, 즉 초기 생산에서 최종 소비까지 연관되는 분리된 조직 영역의 길다란 연쇄를 통해 중간에 투입되는 비용.
따라서 이 경제는 ‘규모의 경제’보다는 ‘속도의 경제’. 단일 조직 내에서 그와 같은 대량 유통과정과 대량 생산과정의 통합은 새로운 자본주의적 기업을 촉발시켰다. 자금운용성(cash flow)과 상환성을 제고함. -> 국내시장에 국한되지 않는 성장. 1902년 ‘미국의 침공’이라는 유럽의 논설. 경영적 위계제와 관료적 구조의 성장. 경영적 위계제는 ‘조직 혁명’의 정점.
17세기 네덜란드식의 합자(joint-stock)의 출현. 17-18세기 특허회사(chartered company)의 합자 체계와 20세기 초국적 기업. 역사적 자본주의의 진화에서 진자와 같은 운동, 그리고 ‘경제적 자유’와 ‘경제적 규제’의 국면들(앙리 피렌느). -> 체계적 축적순환.
네덜란드 특허기업의 주요한 문제는 보통 대서양 무역(특히 아프리카 무역) 에 있는데, 독점을 어렵게 했다는 것. VOC와 WIC. 반면, 영국 자본가 계급의 폭넓은 기반의 민주적 구조는 영국식 합자 회사를 특권을 상실하는 지속적인 위험에 노출시킴. 동인도 회사의 불확실한 존재(precarious existence). 이 고도로 분화되고 탈중심화되고 능숙한 상업-산업 기구는 어쩌면 세계가 여태껏 보았던 가장 폭넓고 복합적인 ‘유연한 특화’의 실례일지도 모른다.
영국의 중국 무역 독점. 아편무역에서 영국적 전통은 특허회사를 같은 류의 경쟁과 도전에 노출시킴. 공급의 독점화와 가격 규제. 1833년 독점 폐지는 영국 동인도회사의 종식이 시작하면서 기록됨. 그 모든 상업적 특권을 상실하면서, 국가-형성과 전쟁-형성 기능을 수행하던 이 회사의 능력은 실제로 쇠퇴함.
요컨대, 합자 특허회사는 유럽 정부들에게 권력을 부여받은 비즈니스 조직이라는 것. 유럽 외부 세계에서 국가-형성과 전쟁-형성 기능을 실행함. 그 자신의 종식과 금융적 팽창의 수단. 그로써 영국 정부는 제국적인 인도정부가 됨. 법인 혜택에서 오는 무역의 자유화와 유럽 외부 세계에서의 제국-형성. 이른바 근대 산업이라는 증기와 기계제의 도래는 무역, 축적, 권력의 세계-규모 네트워크를 완연히 재조직화함.
산업적 팽창은 전체 세계의 시장을 단일한 세계 시장으로 통합하는 주요인(맑스/엥겔스). 단일 세계시장은 산업의 팽창은 물론, 모든 나라의 생산과 소비에 ‘코스모폴리턴 특성’을 부여함. -> 전례가 없는 기회와 전례가 없는 경쟁의 현현. -> 근대 산업의 출현을 선도했던 세계시장 형성과정의 협력 경향과 경쟁 경향의 긴장.
영국의 ‘금전적 합리성’과 독일의 ‘기술적 합리성’. 영국의 경우 자유시장경쟁이 주된 양상이었으며, 독일의 경우 생산이 지배적임. 세계시장의 형성이 의미하는 바가 각자 달랐음. 세계시장 지배하는 영국과 국가를 새로 형성하는 독일이라는 차이점.
자기규제적 시장의 팽창과 사회의 방어라는 이중 운동. 영국의 이중운동(폴라니). -> 영국의 해외 식민지 무역이 자유화되었던 이유는 보호주의가 지배계급의 이익에 있어 영국이 새로 얻어낸 산업적 능력의 효과적인 유동화에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이다.
영국 육해군 비호 아래 철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재 산업의 자유화. 자율적인 자본재 산업의 발전은 지배계급에게 많은 문제만큼이나 기회들을 제공. 이득은 경쟁과 권력 투쟁을 거친 것.
이런 환경 하에서 거대하고 전속적이며(captive) 무방비적인 경제적 공간들에 대한 정치적 제어는 영국 비즈니스에 있어 외적 경제의 주요한 자원이 되었다.
이후 독일의 비즈니스 공동체는 정치적 변화 과정 등을 겪으면서 ‘하나의 공장’ 체계를 지향하면서 영국보다 세 배나 빠르게 산업적 산출을 팽창함. 이 시스템의 목적은 사회적이며 정치적임. 그러나 영국의 시장 자본주의 지위를 찬탈하기는 커녕, 독일의 법인 자본주의는 약간의 경제적 실패였으며 어마어마한 정치적 사회적 실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발전은 영국 축적체제의 최종적 위기를 촉진하는 효과를 가졌으며, 그 때문에 미국 체제로의 이행을 초기화했다.
The Fourth (US) Systemic Cycle of Accumulation (네 번째(미국) 체계적 축적순환)
에드워드의 시기 영국 자유무역 제국주의의 절정기를 지나, 영국식 체제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지나친 자본 간 경쟁. 18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가격상승은 부르주아들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듯이 보였음. 그러나 1873~1896년의 대공황은 경쟁의 영역을 국가 간 관계라는 영역으로 옮겨 놓았다. -> 국가 간 경쟁과 세력투쟁. 높은 방어비용의 부담. 부르주아의 세력투쟁 외부화 능력을 크게 훼손. 이 투쟁이 1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을 때 영국식 축적체제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세계규모의 자본을 운영하기 위해서 영국에게는 해외제국이 필수적인 것이었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은 투자를 한 곳이 미국이었다. 1915년이 되자 전쟁 등으로 인해 미국 내 영국의 자산은 뉴욕 증권시장에서 헐값에 팔렸다. -> 미국의 막대한 전쟁채권 소유. 영국이 가지고 있던 채권의 75%는 러시아에 있었지만 혁명 러시아로 인해 회수불능의 채권이 됨.
전후 영국은 과거와 비슷한 수지 유지. 그러나 전후 미국은 무역수지(trade balance) 흑자에서 경상수지(current account)의 흑자로 전환(그림 17). 이로 인해 미국은 영국과 함께 세계화폐의 생산과 규제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나 세계통화체계를 다룰 수 있는 미국의 능력은 영국보다 뒤져있었음. 전쟁 동안 뉴욕의 세력과 영향력이 늘어났지만, 이것은 런던의 고도금융에 재분배되었고 여전히 가장 큰 수혜자는 영국.
전후 금본위제 복구 노력에도 불구하고, 서유럽 국가들은 자국 통화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극단적인 보호주의를 채택. 결국 1920년대와 30년대의 침체. 1928년 월 스트리트의 거품 붕괴. 미국경제의 침체. 투기적인 해외투자 중지. 각국은 국민국가 경제라는 이글루 속으로.
2차 대전 후, 브레튼 우즈, 일본원폭, UN. 군사, 금융, 생산과 소비 측면에서 미국이 장악. 대륙규모의 영토, 섬과 같은 입지, 두 개의 대양에 대한 직접적인 접근을 통해 세계경제를 장악. 정치적 고립주의는 진주만 폭격 이후 루즈벨트(하나의 세계라는 이데올로기)와 트루먼의 세계주의(두 개의 세계라는 독트린)로.
GATT 체제. 관세와 무역 제한 감소에 관한 쌍방 또는 다자간의 협상. 무역자유화의 추세는 각 나라 정부에 달려있었음. 브레튼 우즈 체제는 단순한 금본위제로의 복귀가 아님. 세계통화의 생산양식과 동인에 중요한 혁신. 과거와 달리, 브레튼 우즈 체제에서는 세계통화체제가 개인이 아니라 정부조직에 의해서 관리되었으며, 이윤-형성 활동의 결과물이 아니라 국가-형성 활동의 산물이 되었던 것. -> 브레튼 우즈는 또 다른 의미에서 루즈벨트의 고도금융(haute finance)과의 결별. 뉴딜정책의 핵심은 국민경제의 회복과 런던과 뉴욕의 지배로부터 탈피. 뉴욕의 재정가들과 워싱턴의 경제민족주의자들. -> 세계 유동성의 미국 집중. 루즈벨트 국제주의와 워싱턴의 승리? ‘외향적’ 영국과 ‘자기중심적’ 미국(아민). 미국식 체제에서 지배적이고 주도적인 국민경제의 자기중심적 성격은 거대 비즈니스 법인의 조직적 영역 내에서 세계시장을 ‘내부화하는’ 토대가 됨.
독일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법인자본주의는 세계차원의 경쟁압력에 반응하여 일어난 것. 처음에 미국도 수평적 통합을 지향. 그러나 1880대와 1890년대를 통해 미국에서는 수직통합이 독일에서는 수평통합이 지배적인 것으로 됨. 이로 인해 미국에서는 거래비용, 위험, 불확실성들이 내부화되었다. -> 시장의 ‘통제’ - 주체들의 자율성 상실(영국), 시장의 ‘중단’ - 계획의 장기적인 개입(독일), 시장의 ‘지위찬탈’(superseding) - 수직적 통합(미국).
하나의 조직영역 안에 순차적인 생산의 부수과정들을 내부화한 것은 괄목할만한 ‘속도의 경제’를 만들어냈음(챈들러). 풍부하고도 안정적인 자금운용성을 보유. 수직적으로 통합되고 복수단위로 구성된 기업. 그리고 이 자금운용성은 최고 관리자와 중간 관리자를 갖는 전문화된 위계를 만드는 데 재투자됨[조직 관리?]. 결과적으로 수직통합을 통해 시장의 지위를 찬탈한 기업들은 투입물 획득과 생산물 처분에 있어서 경쟁을 통제하고 중단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됨. -> 미국의 법인들은 ‘기술적’ 분업의 이득(내부 경제)과 ‘사회적’ 분업의 이득(외부 경제)을 영국이나 독일보다 우수하게 결합. 계획과 시장조절의 이익을 매우 효과적으로 종합했던 것.
그러나 미국 기업들은 더 이상 카오스의 세계에서 자기 팽창의 조건을 만들어내지 못함.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무역과 생산의 확장을 통한 유동성 증가가 불가능. 마셜플랜으로 전환점 모색하지만, 한국전쟁으로 시작해 파리평화조약으로 끝을 맺는 23년의 기간은 세계 자본주의 역사에서 가장 지속적이고 이윤이 높은 경제성장의 시기였던 것. -> 1950년대와 1960년대는 또 다른 물질적 팽창국면.
전환점은 1968~1973년에 작동함. 유럽달러시장 혹은 유럽통화시장의 갑작스러운 상승의 시기. 달러와 금, 달러와 자국 통화 사이의 고정비율이 변동환율제로 인해서 지켜지지 않은 시기. 1970년대 중반에 이르면 해외 화폐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순수한 화폐거래량이 세계무역의 가치를 수배나 초과. 금융팽창은 멈출 수 없게 되었다. ‘전지구적 금융 혁명’.
The Dynamics of Global Crisis (전지구적 위기의 동학)
1968~1973년 미국체제 위기의 신호. 군사적으로, 베트남전쟁으로 인한 문제, 금융적으로, 브레튼 우즈로 확립된 미연방금융제도의 실행불가능성 발견, 이데올로기적으로, 국내와 해외에서 정통성의 결여로 시작된 미국정부의 반공산주의적 개혁운동.
금융팽창의 출발점은 1971년 런던중심의 유럽달러시장의 갑작스럽고 폭발적인 성장(->변동환율제). 유럽시장은 자본세계화 모든 과정이 그렇듯 정치적으로 발전. 미국은 자본통제 프로그램으로 자유를 상실한 뉴욕 은행과 초국적 기업에 대한 보상으로 유럽시장에 대한 접근을 요구. 또한 달러 거래로 국제수지 적자 처리 모색. …… 유럽달러시장에 축적된 유동자금은 1968년을 기점으로 폭발. 이와 같은 성장은 미국 법인자본의 초국적 팽창의 길을 열게 됨. -> 미국의 법인자본의 결정적인 경쟁력은 생산을 위한 시장공략, 직접투자를 통한 자원투입, 수직통합으로 대별됨. 미국시장 내에서 미국법인자본에 대한 유럽의 도전은 여전히 직접투자보다는 1차 산업 수출에 기반한 것. 그러나 1967~74년간의 해외직접투자에서 미국의 점유율은 뚜렷하게 하락(그림 19 참조).
즉 1960년대~70년대 초까지의 미국체제의 신호적 위기는 국가정부의 실패보다는 상품투자에 대한 자본의 과잉에 기인. 이러한 위기가 깨지면, 자본주의적 세계경제의 물질적 팽창을 지속시키는 데 필요한 모든 효과적인 수요들을 창출하면서, 미국 정부의 군사적/비군사적 케인즈주의는 둘 다 국내외에서 대활약을 한다(in full swing). 그러나, 앞서 주지했듯이, 전후 미국법인자본은 자본주의적 세계경제에서 물질적 팽창국면을 일으키지 않았으며 국제적 군사 케인즈주의 역시 그러했다.
유럽국가 각각을 하나의 단일한 시장 통합의 수단을 삼는 마셜플랜과 재무장 -> 서유럽은 미국법인기업의 초국적 팽창을 위한 가장 비옥한 장이 됨(유럽의 노동력과 구매력). 서유럽의 통합 강화. … 게다가 순수달러본위로 경쟁상대인 유럽과 일본의 재건 촉진(?). -> 그 결과, 1973~1979년 기간에 서유럽/일본과 관계된 미국경제는 상대적으로 회복되었지만 이것은 미국 네트워크의 세계적 축적의 도달과는 관계가 없다.
1974년 달러의 과잉공급. 고정환율체제의 붕괴. -> 리스크의 증가. 법인자본의 상업적-산업적 활동의 불확실성 증대. -> 새로운 금융적 팽창의 추진력으로 작용. 법인자본은 통화거래와 투기매매에 관여. 자체적으로 환율 변동을 취급(현금유출입, 판매, 이윤 결정하는 주요 원인). 1970년대의 미국 통화정책은 미국 중심의 물질적 팽창 국면을 유지하기 위해 시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법인자본에 대한 비용, 위험성, 불확실성 증가의 원인이 되었다.
레이건 시기의 ‘벨 에포크’. 금융적 팽창의 국면으로 이행하고 세계금융시장에 축적되어 있는 과잉 유동성에 대한 특권적 접근 덕분에 몰락하는 헤게모니국은 일시적으로나마 헤게모니 경쟁세력을 견제. … 자본의 집중은 축적주기의 조직적 구조 내에서(레이건 시기의 경우), 그리고 하나의 새로운 체제와 축적주기의 출현이 예상될 때 발생된다(현재의 경우). … 1970년대의 통화위기. 성장한 미국달러는 중대한 위기를 야기. 미국 전체의 신용구조와 자본축적의 세계네트워크를 파괴시킴. 같은 시기의 금융, 비금융권의 미국기업의 지배존속은 유럽통화시장의 ‘자기조정’의 회복 기회를 제공.
전후 미국의 세계통화의 위기는 군사적, 이데올로기적 영역 내에서 미국의 세계 헤게모니의 위기와 함께 단계적으로 발전. 고정환율체제의 붕괴는 베트남에서 미군대의 문제와 부합.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달러 과잉과 냉전 이데올로기의 타당성에 대한 위기로 미국 국가적 안정성.
미국 세계권력의 군사적 위기와 정당성 위기에 대한 두 가지 측면. 하나의 새로운 세계질서로서 1930~40년대의 체계적 카오스 전환으로 미국의 재무장과 냉전 이데올로기의 성공은 세계권력의 미국-소련의 공동통치에 기초. 그러나 군사적 위기와 정당성 위기의 결합은 전세계 비식민지가 내포한 문제에 맞서는 미국의 군산(military-industrial) 기구의 실패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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