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 14일 다녀오고, 한정훈씨가 씀.

버스를 타고 서울역 정거장에서 내릴 때부터 내 몸에 체화된 서울역은 없었습니다. 일제시대때 지어진 건물을 서울역의 중심점으로 생각한 저는 남대문 쪽이나 서소문쪽 정거장에서 내려야 서울역이 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1호선 역사를 통해 서울역 광장으로 올라섰던 경험과 달리 우리는 1호선을 거치지 않고 4호선 역사 안에서 서울역으로 향하는 출구를 찾아 나왔습니다. ‘예수천당지옥’ 모 이런 깃발을 들고 있는 분도 계시지 않았고, 항상 살까 말까 유혹하던 떡집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흔했던 노숙인과 걸인들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대한민국은 불과 몇 년 사이에 기가 막히게 발전했군요. 주위를 살필 겨를 없이 서울역이라는 거대한 글귀를 향해 계단을 올랐습니다. 파란 옷을 입은 성윤이 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계단을 올라 맞이한 광장에는 서울역으로 통하는 길과 콘코스 백화점 길과 롯데마트 길 그리고 저 귀퉁이에 피자집이 보였습니다. 배가 너무 고팠던 친구들이 몇몇 있어 먼저 길을 파악해 둔 성윤 형이 서울역 3층에 자리 잡은 식당가로 안내 하였습니다. 옛날 경성역의 ‘그릴’을 기억하시나요. 이상이 ‘날개’ 시에서 읊었다던 그 ‘그릴’이 새로운 서울역에 되 살아 나 있었습니다. (성윤이 형 이야기를 듣고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대해서는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 있습니다. 강정구 선생님 직위해제를 막아보고자 재단의 이사회에 속하신 스님들을 찾아다녔는데 저는 울산 쪽의 영배스님(지금의 동국대학교 이사장)을 만나 뵙고자 후배들과 이곳에서 만났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후배들에게 따뜻한 밥을 한 끼 사주고 싶었습니다. 번잡한 푸드코트가 싫어 3층으로 올라왔지만 이곳의 가격은 어마어마했습니다. 체면도 살리지 못하고 그나마 제일 싼 한식집에 들어갔었는데 오늘도 이곳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주말이라 사람이 꽉 들이차고 기분 탓이 었는지는 모르지만 맛도 없었드랬습니다. ^^; 오늘은 배도 고프고 쏴야한다는 부담감도 없어서 인지 성윤 선배 따라 밖을 구경하는 여유를 보이며 맛나게 밥을 먹었습니다.

(아 당시 울산의 암자에서 지내시던 영배스님을 만난 일은 잘 되었습니다. 영배스님은 직위해제 건에 대해 찬성하지 않겠다고 저희 학생들에게 당차게 약조를 하셨지요. 하지만 이후 영배스님이 이사장이 된 동국대학교는 참 어처구니없는 행동만 일삼고 있습니다. 물론 강정구 선생님에 대한 약속도 어긴지 오래이지요. - 역시 학생은 무시하라고 있나봅니다. )


씁쓸한 기억을 떠올리며 밥을 다 먹고 옆에 있는 콘코스에 들어섰습니다. 백화점에서 쉬이 그러하듯 남자 3명이 한참 앞서고 여자 2명이 뒤처졌습니다. 여성분들의 감수성을 따라 보고자 저는 조용히 멈추어 선덕 누나와 선영이 뒤에 가만히 따라 섰습니다. 아기 옷이 진열되어 있었고 이에 대해 이쁘다며 멈춰서서 의견을 교환하는 둘의 모습이 새롭습니다. 사지 않을 지라도 상품에 대해 꼼꼼한 감수성을 드러내는 여러분이 살짝 부러웠습니다. 우리 남자들은 빠르게 많은 것을 지나치곤 하지요. 어느 옷이 더 이쁘냐는 두 분의 질문에 제 의견도 살짝 곁들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저어만치 앞서가는 우리 오빠들이 조금은 아쉽고 야속했습니다. z


롯데마트 쪽으로 가니 1층에 아름다운 가게가 있었습니다. 손님이 무척 많더군요. 딱히 마음에 드는 물건이 없어 일본어 책, 중국어 책만 살짝 들춰보고 나왔습니다. 어디 앉을 데가 있으면 좋을 텐데 없더군요. 롯데마트로 돌아가서 주차장을 거쳐 서울역 입구를 다시 돌아나왔습니다. 구역사를 방문해 보기로 하였거든요.


신 역사에서 바로 옆으로 내려다보이는 구역사는 참 볼품없었습니다. 거대한 괴물 옆에 엉거주춤 서 있는 흉물 같았습니다. 거대한 역사가 구역사를 바짝 감싸는 모양은 꽤 답답해 보였습니다. 조화가 없는 공간이더군요. 이곳은.

Posted by 김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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