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 7일 강반장, 썬, 셍, 덕이, 윤삼 등 5명이 대표적인 소비문화공간 코엑스몰에 다녀왔습니다.

흥미롭게도 다른 지역의 지하철 연계공간과는 다르게, 지하철 출구와 몰 입구 사이에 하늘을 볼 수 있는 터가 있더군요. 이 순간 지하공간이 가져다 주는 답답함과 거부감이 순식간 해소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제법 괜찮은 걸'하는 호감이 자리잡았는데, 생각해보니 이 복합소비공간체제에 대해 일순간 무장해제된 느낌인 것 같기도 했습니다. 입구에서 우리 일행을 제일 먼저 기다린 건 외환은행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주요은행이 몇 군데 있었는데, 인식의 무장이 해제되자마자 화폐로 무장하게 되는 셈입니다.

우선 우리는 영화를 보기로 했습니다. 코엑스몰이 3만6천평 규모라는데 우리가 들어간 입구가 남동쪽이었고 극장의 위치는 북서쪽이었으니 축구장 30개 넓이의 공간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른 셈이었습니다. 하지만 같이 읽었던 논문에 나와 있던대로, 유선형 통로와 형형색색의 기둥은 지하공간에서 우리 일행이 느낄 법한 무료함을 달래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상점들에서 쏟아져나오는 상품 스펙터클 역시 하나의 장관이었습니다. 표를 예매해야 한다는 목적의식까지 있다보니 가는 길이 조금도 힘들거나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보너스로 천장에 달린 빔프로젝터가 바닥을 비추어 축구게임을 할 수 있게 해놨는데(신기하죠?), 이 신기술로 인해 호기심을 가져볼 만했고 놀이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표를 샀는데 시간이 30분 정도 남았습니다. 밥을 먹기는 애매하고... 때마침 바로 옆에 버거킹이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영화보는 사람들은 시간을 철저하게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패스트푸드점이 극장 근처에 있는 건 당연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최대한 합리적인 소비를 위해 메뉴를 신중하게 선택했고, 그 결과는 대략 만족이었습니다.

끼니를 때우면서 사람들의 소비패턴(합리성 추구, 쿠폰북 사용 등)에 대해서 얘기했는데, 어쨌든 시간이 가까워져서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가는 길에 보니 매표소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더군요. 도떼기 시장 같은 광경을 보면서 예매기계를 통해 카드로 표를 사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 우리는 '합리적인 소비자'였습니다. ㅡㅡ;;

슈퍼맨 리턴즈를 보는데, 관객들 참 산만하더군요. 들락날락하고 문을 제대로 닫지도 않아서 외부 잡음이 섞여 들어오고 옆에서 박선영은 계속 추임새 넣고 ㅉㅉ...

극장을 나와 다들 화장실을 찾았는데, 한적한 화장실을 찾다보니 어느새 길을 잃었던 것 같습니다. 극장까지는 예전에 왔던 경험에 군데군데 있는 이정표로 길을 잘 찾았는데, 급해서였는지 어딘지 모를 화장실에 와버렸습니다. 재미난 것은 그러다보니 아쿠아리움이 있더란 겁니다. 가이드 노릇했던 안선덕도 아쿠아리움을 본 건 처음이라며 내심 신기해 하더군요. 우리가 길을 잃었다는 증거겠지요. 하지만 일행 중 어느 누구도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대략적인 방향감이 있었을 뿐더러, 모든 길은 통하려니 하는 믿음이 있었던 겁니다. 방향감각을 상실하더라도 방향 자체는 잃지 않을 것이란 거죠.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런 것이야말로 이 공간이 부여하는 역설적인 방향감각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 자체가 감각 상실일 수도 있겠지요.

어쨌든 우리가 다다른 곳은 -부지불식간에- 인터컨티넨탈 호텔 지하 아케이드였습니다. 미용실이 있었는데 남성 커트가 2만원이더군요. 역시 호텔은 비싸요. 여기서 지도를 다시 보고 나가려는데 갈림길이 있었습니다. 한 쪽은 호텔로비로 가는 곳이었고, 한 쪽은 지상출구였습니다. 우리는 출구를 택했습니다. 호텔로비라는 곳이 원채 위압감이 있잖아요? 게다가 앞서 2만원의 압박이 있다보니 내심 그쪽 방향은 내키지 않더군요.

그래서 밖으로 나왔더니 봉은사길이었습니다. 코엑스 단지의 지상공간은 정말 권위의식이 느껴졌습니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거리감. 우리가 어떻게 아무 생각 없이 그 지하를 돌아다녔는지 조금 의아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건물들과 도로 사이에 연결되어 있는 작은 공원 덕에 그런 류의 위압감과 권위의식으로부터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쭉 걷다보니 단지 북동쪽에도 지하공간이 뻥 뚤려 있더군요. 처음에 들어왔던 단지 입구에서처럼 지하의 천장이 없어서 탁 트인 공간이었습니다. 거기엔 농구장까지 있었습니다. '잘 해놨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지하 코엑스몰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그곳에 당도했다면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요. 코엑스몰 자체가 사막처럼 지루한 곳은 아니니깐 '오아시스' 같진 않더라도, 어쨌든 이 공간에 대해 행여라도 가질 법한 반감을 차단하기엔 충분해보였습니다.

어쨌든 우리 일행은 잠시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면서 각자 가졌던 느낌들을 소회하고 다음 일정 등을 토론하는 것으로 답사를 마쳤습니다. 코엑스몰에 대한 글은 김성윤이 쓰기로 했고, 다음주에는 금요일에 서울역으로 가고 글은 황세영이 쓰기로 했답니다.

팀이름을 아직 결정 못했는데, 문화연대 웹진 개통이 얼마 안 남아서 조금 서둘러야 할 거 같기도 합니다. 그럼 담에 시간 있을 때 서울역에 대한 자세한 정보와 답사 일정을 공지하도록 하겠습니다. 시간 있으신 분들은 참여의사를 밝혀주심 좋을 거 같습니다. 그리고 서울역은 역사적 의미까지 겹쳐 있는 곳이니깐, 경성역에 대한 정보도 좀 찾아보고 또 우리가 답사하면서 놓치면 안되는 사항들에 대해 체크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족1 - 아참, 공간분석에 참고할 만한 주요문헌들을 읽어보시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뭐, 전문적으로 깊고 많은 것까지는 됐고요, 짐멜의 [대도시와 정신생활]이랑, 벤야민의 [파리, 19세기의 수도 - 1939년의 개요]랑, 제임슨의 [포스트모더니즘 - 후기자본주의 문화논리] 정도... 필요하면 나중에 토론 같은 거 해도 좋구요. ^^

사족2 - 관심 있는 학부생들도 적극 참여하도록 권장해봅시다. 후배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필요도 있고, 학과 차원에서도 대학원과 학부 사이에 연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다들 화이삼~

사족3 - 아, 그리고, 모임에 정례적으로 참여하지 않더라도 놀러가는 기분으로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도 대환영입니다. 앞으로 다녀볼 복합공간으로는 서울역(역사+쇼핑센터+경성역의 기억+박물관+노숙터), 상암월드컵경기장(스포츠단지+예식장+극장+까르푸), 일산 라페스타(소비지역+극장+공연장), 천안선 지하철(지하철+수도권 경험+비수도권 경험), 신천(쇠퇴하는 소비지역+주거지역+잠실운동장), 일산 킨텍스(???), 창동 이마트(???), 부천종합운동장(운동장+박물관) 등이 있습니다. 그외에 좋은 장소 있으면 도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족4 - 링크해놓은 페이지 보면 도시공간 분석한 짧은 글들이 꽤 있습니다. 우리가 할 작업과 형식상 유사한 측면이 있으니깐 참고하심 좋을 듯합니다. 사족이 완전 길군요. ㅡㅡ;;;

Posted by 김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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