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연애시대>의 트라우마들 - 왜 사람들은 연애하는 걸까

서동요와 궁 이후로는 가급적 드라마를 끊고 연구에만 전념하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그놈의 <연애시대> 때문이다. 뭐 원채 드라마르 좋아하는 성격에, 사전제작시스템이 7할 이상 적용되었다는 희소식, 감우성이라는 배우의 매력 등등이 결국 의지박약, 이 몸을 브라운관 앞으로 끌어당겼다.

그런데 정작 <연애시대>를 보다보면, 그 매력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중심인물 이동진(감우성), 유은호(손예진)를 비롯해, 민현중(이진욱), 김미연(오윤아), 조은솔(전지희, 김미연의 딸), 공준표(공형진), 나유리(하재숙, 프로레슬러), 정윤수(서태화, 대학교수)등 대다수 인물들은 흥미롭게도 트라우마(trauma), 즉 정신적 외상을 간직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드라마 제목만봤을 때대다수 시청자들은 극을 이끌어 가는 주된 모티브가 연애심리에 있을 것이라는 짐작들을 헸을 것이다. 그것은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는데, 흥미롭게도 드라마의 거의 모든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나름의 심적 외상에 아파하고 있었을 줄이야!

물론 이러한 추리가 100% 맞아떨어지리라고는 장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연애시대>가 보이는 전개방식의 특성상, 아직 동진이 가진 트라우마의 실체가명확히 나타나진 않았고, 중심인물 중 하나인 유지호(이하나, 은호의 동생)에 대해선 아직 어떤 기억의 회상도 드러나진 않은 탓에 모든 인물을 일반화하기에는 껄끄러움이 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연애시대>가 가진 정신분석학적 모티브를 강조하는 데에는 조금도 주저함이 있을 수 없다. 단적으로 작가는 정윤수의 입을 빌어 직접 '트라우마'라고 이름 붙여주기까지 한 바 있었다.

은호의 트라우마 - 아버지에 대한애증

각 캐릭터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심적 외상은 은호에게서 발견된다. 은호가 동진과 이혼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사산' 으로 이해하기 쉽지만, 드라마 전반에 걸쳐 작가는 은호가 어떤 상처를 지닌 인물임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다. 사산 당시 남편 동진은엄청난 상실감에빠져 있는 은호를 혼자 내버려둔 채, 서점(그의 직장)으로 가버린다. 그렇다면 이혼의 계기는 일종의 배신감인가. 여기서 작가는 드라마를 단순한 신파 이상의 것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은호의 유년기적 경험을 곱씹어본다. 유치원을 다니던 어린 시절 자동차 전복사고로 엄마가 차에 깔린 채 죽어가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빠(김갑수, 목사)는 엄마의 손을 잡은 채 기도만 한다.

당시에는 '내일 유치원 가기는 다 틀렸네'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사건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이것은 일정의 자기-기만이었을 터,은호의 무의식은 종잡을 수 없이 상처 투성이가 된다. 성인이 다 된 지금에도 꿈 속에서는 유년기의 무의지적인 체험들을 떠돌고, 아빠에 대해서는 언제나 애증의교착 상태에 머무른다. 이 때의 히스테리는 사산 직후 자신을 위로하려는 아빠에게 "난 하나님 따위는 믿지 않아!"라며 절규하는 데에서 극으로 치닫는다.남편 동진에 대한 배신감, 왜 하필 아빠에게로 그 불똥이 튄 것일까. 그것은 동진의 무기력함이 가져다주는 정서적 충격이 엄마의 죽음 당시 아빠가 보였던 무기력함과 유사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빠와 관계된 '엄마 없음'의 상태가 남편과 관계된 '엄마일 수 없음'의 상태와 유사한 라인을 형성하면서, 은호는아물지 않은트라우마의 신경자극을 통해 아버지 권위에 대해 극한적인 적개심을 소유하게 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은호라는 인물이 이후부터 보이는 행태에 있다. 그녀는 다분히 현실적인 캐릭터이다. 가부장, 즉 '아버지'에 대한 실망과 증오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 은호는 끊임없이 '아버지'를 갈망한다. 아버지와 절연했음에도, 아버지가 출연하는 라디오 상담프로그램에 전화를 걸어 익명의 청중으로서 상담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는 이해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해 자조 섞인 독백을 읊조리기까지 한다. 게다가 '아버지'는 아버지에 그치지 않고, 유사(pseudo)-아버지인 남편으로도 옮아간다. 끊어내고 싶은 대상이면서도, 절대로 끊을 수 없는 동진. 그 역시 은호에게는 아버지와 같은 인물인 셈이다. 이를 통해 그녀가 애초에 가졌던적개심은 '아버지'에 대한 애착 혹은 집착으로 회귀하게 된다.

연애를 통한 트라우마의 치유(?)

어쩌면 작가가 설파하고자 하는 연애심리의 근원이자 궁극이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게 아닐까. 아버지를 부정하면서도 갈망하는 과정은필수적인 것은 아니지만, 연애에 대한 엄청난 욕망을 산출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계열은 다른 인물들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미연 역시 아버지의 이른 죽음으로, 끊임없이 남근중심적 기표들을 배회하고 다닌다. 마침내 동진과 결별하면서 독립의 의지를 보이고 '연애판'인 극으로부터 퇴장하기는 하지만, 그녀의 인생이란 기댈 수 있는 남자 없이는 버티기 힘든 '결핍'의 인생이다(심지어 그녀의 짧은 고백에 의하자면, 어린 시절 그녀는 은호의 아빠를 짝사랑했다고까지 한다). 동진의 라이벌 현중도 마찬가지여서 유년기적 아버지의 부재가 가져다 준 상처가 성년기에도 이어져 거의 목적 없는 반항심리로 이어진다. 유달리 어머니에 집착하여 엄마와 유사한 은호(아버지와 어머니의 연애관계가 자신들과 유사했다는 얘기이다)를 5년 동안이나 짝사랑하고, 심지어는 목적 없는 반항을 위해 은호를 이용하려들기까지 한다. 아버지를 증오하다 못해, 아버지를 닮아버리려는 무지막지한 충동에 휩싸인 것이다.

결국 이 두 인물은 연애를 포기한다. 주연이 아닌 탓에 이들의 이후 행보에 대해서 알 기회는 없을 테지만, 이들은 명백히 포기 선언을 해버리고 일찌감치 그 바닥으로부터 독립한다. 언어화할 수는 없을지라도,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의 실체를 간파해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미연은 자신이 덧없는 기표들을 떠돌고 있을 뿐임을 자각했고, 현중은 아버지에 대한 이해를 통해 마침내 자기 역시 '아버지'가 되기를 작심한다.연애라는 행위는 이들에게 그야말로 부질 없는 짓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연애시대'라는 시대적 조류를 과감히 거부하고, 즉 욕망에 얽매인 주체가 아닌 자기 스스로 독립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 가장 현명한 길을 택하는 것이다.

... 이러한 맥락에서, <연애시대>의 극중 인물들은 '아버지'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 차 있는 존재들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이는 '아버지'가 되기를 욕망하고(공준표), 어떤 이는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기를 욕망하고(나유리), 어떤 이는 '아버지'로부터 사랑받기를 욕망한다(조은솔).

왜 사람들은 끊임없이 연애하는 것일까. 이제 대충 작가의 기본적인 견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작가가 애초에 던졌던 질문, '사람들은 왜 연애하는 것일까?'답은 이제 거의 나와버렸다. 이에 대해서는 우리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스스로 언어화해보기로 하자. 드라마 속 정윤수 교수의 얘기대로 개인의 트라우마는 언어화될 때 비로소, 그 주관적인 상태가 객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객관화는 내가 그 감정으로부터 거리를 둔다는 이야기이고, 그 때 나는 어떠한 도착상태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

사족(蛇足) - 정신분석의 과잉

한편으로, 우리는 여기서 일종의 과도하고 과잉된 정신분석을 목도하게 된다. <연애시대>의 작가는 차라리 정신분석학자에 가깝다. 어쩌면 개인 스스로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연애편력을 극복하기 위해 이 픽션을 집필했을지도 모른다.<연애시대>에 대해 정신분석의 과잉이라고 총칭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위에서 보았듯이 각 인물의 정신분석학적 계기들이 다소 노골적이다. 대중예술의 매력이란 감각에 대한 은연한 코드화에 있을 터인데, 이 극은과하다 싶을 정도로 이론이 전면화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일종의 계몽주의적 향내마저 느껴지곤 한다. 물론 이러한 견해는 나 개인의 주관적인 판단에 근거한 것이므로, 다른 청중들께서는 이를 무시해도 무방하다.

둘째, 이 문제가 일본 대중예술의 조류와 거의 흡사하기 때문이다.<연애시대> 역시 원작이 일본 소설이라고 한다. 주지하다시피, 최근 일본 대중문화의 거대한 코드 중에 하나가 바로 '트라우마의 극복'에 있다. (별도의 분석을 요할 테지만) 일본 내에서 하나의 유행형식으로 자리잡고 있는 이런 흐름은 다양한 채널들을 통해 이미 수 차례 분석되고 보고된 바 있다. <연애시대>가 단순히 '연애편력'에 관한 서술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정신분석편력'에 가깝다고 하는 지적 역시 바로 이런 일본 내의 맥락과 무관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다.

물론 정신분석이 가져오는 미덕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네 대중들이 각자 겪어온 자아의 심리구조에 대해 더욱 친숙해지고, 새로운 문화적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 행위의 기원 자체를 개인의 내면적인 곳으로환원해버리는 것은 어째서인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사람들은 정말 권위에 대한 욕망으로 연애하는 것일까? 그리고 트라우마 때문에망설이는 것일까? 어쩐지 자조 섞인 견해인 것만 같아서,마냥 고개만 끄덕이기가 쉽지 않는 듯하다.

Posted by 김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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