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군중이다
2002년과 2004년, 광장의 시간들
김성윤
서울문화이론연구소 연구원
거의 집착 수준에 이른 군중에 대한 우리의 애증은 단 한번도 우리를 순수하게 군중 속의 개별자로 석방해주지 않았다. 늘상 군중 속에 섞여 있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자의반타의반으로 우리는 관찰자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관찰자의 시선을 던지면, 그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 순간 멈칫한다. 군중은 자신들을 호명하고 있는 광장의 핵심주체들을 향해 자신의 시각과 촉각을 아우르는 모든 공감각을 열어둔다. 핵심주체란 사이버 커뮤니티 회원, 노사모 회원, 붉은악마 회원, 여중생범대위, 탄핵무효 부패정치청산 범국민행동 등 ‘광장’에서 격문을 포스팅했던 집단들이다. 나머지 군중은 이들을 지지하며 동원되어주며 호명에 응답한다. 물론 그러한 행동은 군중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신념과 이데올로기가 일치할 때만 이뤄진다. 간혹 호명자의 지적/도덕적 지도력에 의심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럴 때 군중들은 주저없이 다른 광장을 찾아 나선다. 광장 다른 한 쪽에서 조용히 군집하기도 하며, 도시공간 여러 곳을 탈구획화하며 풍경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그동안 광장에 대비하여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생각해오던 밀실은 사실 또다른 의미에서의 광장이었다. 군중은 다만 개별적인 도시민이 될 뿐이다. 군중은 저마다 이야기꾼이 되어 도시 각처를 유랑한다.
다른 모습의 군중들
그러나 군중이 순수한 하나의 집단은 아니기에, 우리로서는 이들이 어떤 존재라고 선언적으로 정의내리기가 부담스럽다. 다만 매 사건들(오노사건, 노사모, 월드컵 응원, 중학생 추모 촛불시위, 탄핵반대 촛불시위)에 관하여 분석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련의 분석을 통해 귀납적으로 저들의 실재를 가늠할 문제도 아니다. 실증주의자가 아닌 이상 그것이 100% 정답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단지 국면적으로는 관찰이 가능하다는 공통전제 아래, 그들이 의도치 않은 순간에 빚어내고 있는 형상과 살결을 우리의 언어로 추상화해낼 수 있을 뿐이다.
2004년 4월 17일, 나는 광화문에 있었다. 총선 결과에 나름대로 흡족해하면서, ‘그래서 너흰 아니야’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올 상반기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촛불집회에 군중으로 뒤섞여 있었다. 나와 같이 있었던 사람들이 어떤 존재라고 선뜻 결론 내린다는 것은 매우 곤란한 일이다. 일일이 설문지를 돌려가며 인구조사를 하지 않는 이상, 신뢰도 95%대의 과학적 결론은 불가능하다. 연령, 얼마나 다양한가. 성별, 미루어 짐작조차 어렵다. 계급, 겉모습으로는 알 턱이 없다. 학력, 취업상태, 봉급수준, 출신지역…… 한 개개인의 삶의 결을 포착할 수 있는 살아낸(lived out) 역사를 감지하기란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하물며, 2002년 2월의 군중과 4월의 군중, 또 6월의 군중과 12월의 군중을 어떻게 다 풀어헤친단 말인가. 실천적으로 적합한 글이 되기 위해서는 종횡으로 펼쳐져 있는 군중의 분화를 파악해야만 한다. 따라서 나의 지식은 특정한 조건들로부터 추상을 얻어야만 한다. 내가 얻을 수 있는 조건들은 대략 이러하다. 누가 이들에게 호소하고 있는지, 이 호소는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 호소에 주로 누가 응하고 있는지(이들이 군중의 대다수일 것이다.) 이러한 조건들은 군중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를 규명하는 길을 안내해줄 것이다.
역시 실천적으로 적합하기 위해서 호소자-응답자의 관계를 통해 군중이 빚어낸 사건의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우리는 군중의 실체에 대해 확언할 수 없지만, 군중이 다른 존재와 어떤 맥락을 형성하고 있는지는 관찰할 수 있다. 이러한 틀에서 고안할 수 있는 질문들에는 어떤 메시지가 오가고 있는가, 그 메시지는 누구를 향한 것인가, 그 메시지를 정당화하는 신념체계는 무엇인가, 어떤 형태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가, 메시지는 무엇을 매개로 확장 또는 축소되는가 등등이다(군중의 자발성도 얘기해야 하겠지만, 우리는 도시민의 행위가 폐쇄되어 있다고 여기지는 않고 있다).
누가 호소하고 누가 응답하는가
앞서 나는 사이버 커뮤니티 회원, 노사모 회원, 붉은악마 회원, 여중생범대위, 탄핵무효범국민행동 등이 각 사건들의 호소자라고 보았다. 이들을 군중에 대한 대응쌍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이들도 군중의 일부이다. 이들을 무슨 전위쯤으로 이해한다면, 군중이 광장에 모인 이유는 설명되지 않는다. 이들은 정치적 의사나 문화적 취향을 공유하는 군중의 일부로서, 자기의 노동력을 상품화하지 않고 자유 노동을 행사하고 있을 따름이다. 분명 군중은 자발적으로 모였을 뿐이고, 이들은 거기서 키보드를 눌렀고 마이크를 잡았으며 목소리를 크게 내었을 뿐이다.
여기에 각각 금메달 박탈로 미국에 공분하는 10/20대 청년, 구태정치에 오열하는 청장년, 스포츠를 통해 엑스터시를 느끼고자 하는 국민, 우리 친구, 딸, 아들이 미군에 의해 고통 받지 않길 바라는 국민, 대의제를 빌미삼은 기만적인 의회 쿠데타에 불복하는 국민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물론 이들이 전혀 다른 사람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부 다른 사람도 아니다. 근 2년간 5차례에 걸친 거대한 이슈에 모두 한 번 이상씩은 참여했던 사람, 혹은 그 중에 몇 번 정도만 참여한 사람 등 제각각일 것이다.
이 부분은 언뜻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함의를 담고 있다. 각각의 이슈마다 수차례의 결집들이 있어왔지만, 이 다섯 번의 상위군집들은 각각 다음 차례의 군집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따로 군중심리나 전염효과를 논하지 않더라도 한번의 결속이 마치 구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간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좀 더 자세한 분석이 뒤따라야겠지만, 어쨌든 이러한 논점은 분절되어 있는 메시지들이 군중 내부에서 어떻게 공진하며 증폭되는지를 가늠하게 해줄 것이다.
무엇을 발화하는가
각각의 사건들에서 군중이 외쳤던 구호들은 명백하다. 미국상품불매운동, 바보 노무현의 당선, 한국축구국가대표팀 응원, 중학생 살인에 대한 사과와 소파개정, 탄핵무효와 부패정치 청산 등이다. 짧은 지면에 도식적인 설명인 이유로 논란의 소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간단히 정리해서 말하자면 여기서 몇가지 지배적이고 물질적인 무의식들을 찾아낼 수 있다. 반미주의, (실현한다는 차원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호승주의와 신명, 가부장적 반미-민족주의, (수호한다는 차원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등이 그것이다.
군중의 신념체계로 작동하는 이러한 이데올로기들은 호소자와 응답자 사이의 소통을 가능케 해주는 기반이 된다. 군중이 내뿜는 메시지는 내부에서 소통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광장의 외부를 향해서도 발산된다. 미국을 향해서, 지역주의/조중동/수구세력을 향해서, 그리고 세계를 향해서 군중들은 한바탕 제의를 연출했던 것이다. 군중은 상대를 향해 갈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하고, 함께 어울려 신명 누리기를 제안하기도 한다.
군중이 발화하는 메시지는 특정한 매개를 통해 확장되기도 하고 축소되기도 했다. 단적으로 매스미디어는 자신의 지배적 성격에 맞춰 대단위 군집에 대해 참여의 공포를 조장하기도 했고, 쾌락의 전유를 권장하기도 했다. 매스미디어가 이중적 성격을 가진 반면에, 군중이면서도 군중에의 호소자이기도 한 핵심집단들은 군중의 메시지를 확장하고자 했다. 이들에 대해 군중은 광장에서의 헤게모니를 승인해주었고, 군중 자신들의 욕망과 위반하는 과잉된 혹은 축소된 메시지를 생산할 경우에는 지도력을 거부했다(여중생범대위에 대한 네티즌 ‘앙마’의 독자적 집회 발언이 대표적인 예).
군중의 메시지를 위축시키려는 흐름도 없지 않았다. 미국상품불매, 노사모, 월드컵 응원 등으로 사회 전체적 헤게모니를 상실해버린 수구시민세력의 반발이었다. 실제로 이들은 기독교집단 등과 연동하면서 월드컵 때는 붉은악마에 대항해 ‘백의천사’ 응원단을 조직했고, 2002년 촛불시위 당시에는 반핵, 반김, 반북을 외치며 같은 공간을 ‘낮 시간’ 동안 점거했다. 이 테르미도르의 반동적 군중은 흰색과 낮의 이미지를 강조하면서, 저녁에 모이는 붉고 노란 색의 군중을 끊임없이 견제했다.
군중의 주권 선언
“로마는 군중”이라 했던가. 콜로세움에 운집한 군중들이 검투사 막시무스를 연호한다. 군중을 자기 자식으로 여기는 황제 코모두스에게 공포의 순간이 닥쳐온다. 2002년, 그리고 1년을 거르고 현재 2004년, 고대에서 탈현대로 시계추가 반복운동을 했음에도, 대한민국은 변함없이 군중이다.
문화월평이라는 코너를 연재하고 있는 우리는 이 군중이 누구인지를 짚어 보고자 했다. 수많은 논자들이 이미 비평했을, 혹은 비평하고 있을 이 주제를 우리 역시 언급하고자 한 것이다. 오노사건에 이은 미국상품불매운동, 민주당 경선과 대선 내내 활약하던 노사모, 15년만에 6월 광화문과 시청을 뒤흔든 길거리 응원, 두 중학생에 대한 애도와 미군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던 촛불시위, 그리고 탄핵정국을 빌어 의회의 대의체계를 완전히 뒤엎은 또 한번의 촛불시위. 마지막으로는 좌파정당의 원내진출을 잉태한 4·15 총선이 그 대미를 장식했다. 분명 2002년과 2004년의 시간들은 한국문화 전반에 있어서 기록적인 순간들이다. 그 기록이 증명하듯, 대한민국은 이제 군중이다. 광장으로 나왔던 우리들의 ‘대~한민국’이라던 외침은 사실 대한민국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주권 선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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