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완성 원고입니다. 글 후반부의 밑줄 친 부분은 단순 노트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기억으로서의 현대성 그리고 도시인상학

― 벤야민이라는 모호한 대상



김성윤/중앙대 사회학과 대학원 워크샵/ 2006년 6월 25일



주지하다시피,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매우 독특한 학자이다. 아도르노가 그 재능을 시기했을 정도로 천재다운 면모가 있었지만 생애 내내 아무도 알아주지 못하는 그 천재성으로 인해 빈곤에 허덕였고, 유태인으로서 메시아를 갈망했으나 세계대전 중에는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인물이다. 게다가 문예비평가로서 보여주는 난삽한 문장과 거기에 숨어 있는 초시대적인 상상력은 읽는 이로 하여금 그의 천재성에 감탄하게 하는 한편 질투심을 절로 품게 한다. 그런가 하면 그는 오늘날 수많은 현대지식인에게는 욕망의 모호한 대상이기도 하다. 그는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이다. 예술비평가, 문학비평가, 이미지 구성가, 문화비평가들은 그 안에서 신화를 발견하고 스스로 신화를 덧붙인다.

그러나 벤야민의 독특함은 특히, 그가 도시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두드러진다(그런 의미에서 그는 문예비평가가 아니라 사실상 문명비평가이다). 사실 그가 관찰한 결과물들은 그 자체로도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 이미 무수히 ‘반복된’ 현대를 살아낸 우리들에게 그다지 새로운 것만은 아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벤야민이 의미 있음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견된다. 이 ‘새롭지만 전혀 새롭지 않은 것들’의 발생과 폐허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는 현대의 잔해물을 통해 역사를 탐사한다. 즉 그의 도시 ‘산책’은 일견 덧없는 것으로 보이는 사물로부터 의미가 충만한 역사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산책자(flâneur)로서 그는 도시를 보면서 현대성의 면모를 이중적으로 해석하고 알레고리적 사유에 기반한 인상학(physiognomie, 혹은 관상학)적 태도로 탐정가가 되며 최종적으로는 새로움과 진보의 신화가 가지고 있는 허상을 공격하기에 이른다. 따라서 그의 최종판단에 의하자면, 현대성은 하나의 신화에 불과한 것이 된다. 현대성이란 오히려 역사적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역작 『아케이드 프로젝트』1)와 그 밖의 도시공간에 대한 성과물들 역시 현대성이 역사의 반복 혹은 단순한 변주와 다를 게 없다는 증언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알레고리적 징표로서 19세기 파리의 아케이드가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도시에 관한 그의 글쓰기는 자신의 다른 글들과 비교했을 때, 비교적 실증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틀린 해석이다. 그의 인식론적 문제의식은 실증주의적 경향으로부터 완전히 빗겨나간다. 벤야민이 보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아케이드가 아니며 더욱이 아케이드라는 하나의 사례를 통해 19세기 도시의 구성을 일반화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그의 관심사는 하나의 도시적 구성물(혹은 현대적 구성물)에서 인간이 어떤 체험을 살아내는지에 대한 것, 즉 경험에 관한 것이다. 이때의 경험이라는 것은 삶을 증험(證驗)해내는 것이 아니라, 피부로 체득한 사건을 의지적으로 무의지적으로 종합해내는 인간 고유의 정신활동이다. 한편으로 그는 이 정신적 활동을 이성적이라거나 합리적인 과정으로 여기지 않았다. 여기서는 차라리 무의식의 문제설정에 가까울 정도이다. 그는 도덕이나 이성 등 인간을 무력화시키는 것들을 온전히 거부하면서, 정념과 쾌락의 속성들을 긍정한다. 이렇게 봤을 때, 그가 발견한 현대적 구성물은 인간의 정념과 쾌락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편, 그 자체가 정념의 산물로서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역사적 단절의 계기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양식으로 전화하고 있을 뿐인 판타스마고리아(fantasmagories)의 체제가 바로 그것이다. 이로써 그는 체제화된 물신성을 비판하는 데로 나아가고, 가장 막다른 길목에선 진화주의적 관점에 입각한 사적유물론의 구상을 완전히 폐기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의 역사철학으로부터 현재 시점의 우리가 도출해낼 수 있는 함의는 무엇일까. 흥미로운 것 중의 하나는 벤야민이 “자신의 글이 도시의 모습과 닮기를 바랐다”(노명우, 2003)는 데에 있다. 실제로 그의 에세이들을 보면 이것들은 별개의 편린들인 것처럼 존재한다. 우리네 도시와 그 구성물들이 모든 것을 탈맥락화한 채 존재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렇다면 도시를 읽어내는 사람이 발견하고 복원해야 할 맥락이란 무엇일까. 벤야민은 두 가지 대답을 내놓는데, 하나는 알레고리이며 다른 하나는 몽타쥬이다. 알레고리는 아케이드와 같은 도시적 구성물이 내장하고 있는 구조가 도시 자체가 가지고 있는 구조와 상동관계에 있다는 데에서 착안된 것이다. 따라서 그의 알레고리적 인식론은 단순히 풍유적인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티끌 속에서 우주적인 이치를 발견해내는 독법이다. 한편으로 이러한 알레고리들은 도시 곳곳에 산재하여 번성했다가 폐허화되는 자기 역사를 가지는 것들이다. 이 알레고리 속에서 어떻게 우주적 이치를 발견한다는 것일까. 그는 도시적 이미지들을 변증법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일종의 몽타쥬적인 발상으로서 편린화되어 있는 이미지들과 사건들을 비평가의 수집활동과 경험적인(더 이상 증험적이지 않은) 성찰을 통해, 알레고리적 대상물 자체는 물론 그것이 함의하는 도시적 의미들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알레고리나 몽타쥬와 같은 독법들은 기존에 있어왔던 인식적 틀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이때의 비평가는 도시를 이성과 추론으로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체험을 기억해내고 다루고(經驗) 성찰한다. 도시가 정념과 쾌락의 원리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을 때, 그리고 자신의 글이 도시와 닮기를 바랐다고 했을 때, 이 두 가지 계기들이 하나로 묶일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에세이적 글쓰기이다. 또한 이러한 글쓰기 전략에는 그 자체로 정치적 실천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에세이 자체에 이미 현실이 가동되는 원리가 들어 있을뿐더러,

이로써 벤야민을 읽어가는 데 필요한 하나의 지도를 고안해낸 셈이 되었다. 벤야민은 그 자체로 변증법적인 계기들을 잔뜩 품은 이미지들이다.



1. 도시의 발견 ― ‘우울’로 나아가는 ‘새로움’의 저주


(1) 도시의 판타스마고리아


ⓐ철골구조가 최초로 활용된 것은 아케이드에서였으며, ⓑ세계 박람회에서도 나타나는 이것이 오락 산업과 맺고 있는 관계는 아주 중요하다. ⓓ이와 동일한 종류의 현상에는 시장의 환영들에 자기를 내맡기는 산책자의 체험도 포함된다. (중략) ⓒ시장의 이러한 환영들에 대응하여 실내의 환영들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그가 살고 있는 방들에 개인의 사생활의 흔적을 남겨놓으려는 인간의 절박한 요구에 의해 구성된다. ⓔ문명 자체의 환영들의 경우 이것의 대표 선수는 오스망에게서 그리고 파리를 변모시킨 그의 작업 속에서 현재화된 표현을 찾아볼 수 있다. ― 「파리, 19세기의 수도 ― 1939년의 개요」중에서(Benjamin, 2002)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위하여 1939년에 쓴 이 ‘개요’에서 벤야민은 자신의 연구질문을 이렇게 던진다. “19세기로부터 유래한 새로운 형태의 행동들 그리고 이제 경제와 기술에 기반해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창조물들이 어떻게 환영들(fantasmagories)의 우주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는가.(Benjamin, 2002)” 그가 파리에 관한 자료 수집 중 생각에 어떤 변화가 있었던 간에 상관없이, 그의 출발점이자 귀착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대체 도시는 어떻게 판타스마고리아를 탑재하고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맑스가 언급했고, (벤야민 개인에게는) 루카치가 영감을 주었던 ‘상품의 물신성’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현대성을 도시에서 찾아내는 보들레르의 궤적2)을 벤야민은 따라간다. 그는 상품의 판타스마고리아에 매혹되어 있는 군중 안에서 군중들을 조롱하고 동시에 사랑하면서 아케이드에 새겨져 있는 현대성의 흔적을 발견하려 한다.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19세기 아케이드에서 출현한 판타스마고리아는 아케이드가 몰락하고 백화점이 등장한 20세기에도 지속된다는 점이다. 심지어 21세기인 지금에도 가상공간에서는 여전히 판타스마고리아가 직조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벤야민은 “시장의 환영에 자신을 맡기는 산책자의 경험”을 통해 19세기와 20세기 사이의 시간적 격차를 무화시킨다. 아케이드의 출현, 세계박람회, 도시공간에서의 체험, 실내공간의 배치, 심지어는 도시계획에서조차 판타스마고리아의 세계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벤야민에게 파리는 단순히 물질적 도시가 아니라, 환각이 공간화된 도시에 가까웠다. 파리는 소비의 수도를 넘어서 19세기에는 아케이드 그 자체였으며, 20세기에는 백화점으로서 존재했다. 일련의 쇼핑센터들은 한 마디로 파리가 가진 환각의 양태들이다. 그런 면에서 잔해로 남은 아케이드는 20세기가 되었어도 종말을 고한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19세기 세계의 중심이었던 파리 역시 (폐허로 남는다 하여도) 20세기에는 지속적으로 확장된다. 따라서 산책자는 파리에서 우울을 지배적인 정념으로 체험한다. 그 우울의 실체는 무엇인가. 새로운 문물들이 도시의 시각적 경험을 지배하는 찬란한 새로움.

“어머니의 쇼핑 나들이로부터는 전통적이고 공적인 베를린 상업계의 이미지가 부각되었다면, 아버지가 하는 암시나 지시를 통해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리고 약간은 미심쩍은 상업계의 이미지가 떠올랐다.(Benjamin, 1983)” 비교적 유복한 집에서 자라났던 벤야민은 「베를린의 유년시절」에서 어릴 적 온통 신비적 존재였던 아버지의 삶을 기억해낸다. 이 회고에서 그는 양탄자, 경매용 망치, 두루마리, 흑인상 조각, 전화 등의 소품을 떠올린다. 그리고 자신이 아버지와 구경 갔었던 아이스 쇼에서 우연히 보았던 창녀도 떠올린다. 이 둘 사이에서 벤야민은 무언가 유사성을 발견한 듯하다. “이날 저녁 나는 우연히도 무대에서 펼쳐지는 쇼보다는 관중석에 앉아 있는 환영에 더 관심이 끌렸다.” 이 환영이 바로 유년시절의 회고를 통해 그가 내놓은 경험물이었다. 즉 그가 체험했던 아버지의 미심쩍음과 신비스러움 그리고 자신의 묘한 성적 충동이란, 집에 진열된 소품들과 객석의 창녀를 통해서 나온 환영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벤야민은 베를린에서의 유년시절로 돌아가서 도시를 활보했던 체험들을 소환하기도 하고, 당대의 산책자들이 노니는 풍경들을 추적하면서 전혀 새롭지 않은 이 ‘새로움’에 열광하는 자기 자신, 산책자, 군중을 목도한다. 물론 이 ‘새로움’에서 그에 따른 매혹과 황홀감이 전혀 새롭지 않게 반복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2) 대도시와 산책자

“보들레르는 작가의 진정한 상황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었다. 그는 산책자가 되어 시장에 간다. 그는 관찰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상 그는 벌써 구매자를 찾고 있다.(Benjamin, 2002)” 아케이드에서 가장 명물은 진열장 속의 상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산책자 자신이었다. 상품에 매혹되는 산책자. 그는 자신이 구경꾼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그 자신이 상품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벤야민의 이러한 착안은 상품 그 자체가 아니라 산책자의 라이프스타일이 가져 오는 또 다른 효과에 대한 언질로서 해석될 수 있다. 산책자의 삶의 방식은 마음을 달래주는 판타스마고리아의 이면에 대도시에서 살게 될 미래 주민들의 비참함을 은폐한다. 그리고, 오히려, 이 환영은 후일 백화점 장식으로까지 발전한다. 구경꾼 자체가 상품이 되는 것. 산책(을 유도하는 것)이 이윤을 남기는 데 이용된다. 벤야민은 보헤미안적인 라이프스타일이 문명 전체적으로 하나의 구매대상이 되고 있음을 직시했던 것이다.

벤야민은 보들레르의 독법을 따라서, 당시에 보헤미안들이 형성되던 것을 주목한다(보들레르에게는 ‘댄디’). 이들이야말로 한량으로서 산책자가 가지는 삶의 방식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계급이다. 새로운 계급의 출현은 언제나-이미 반역적인 성격을 가진다. 벤야민은 이 반역적인 인간들이 철저하게 비사회적일 수밖에 없음을 감지한다. 그의 반역에는 출구가 없다.3) 현대자본주의체제에서는 아무리 새로운 인간(19세기의 산책자를 포함해서)도 언제나 익숙한 유형 속의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가령 ① 익명의 행인들에게서 어떤 특징들이 발견된다고 치자. ② 그렇다면 그 특징을 유형화하는 새로운 구성 요소가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③ 그러나 이 유형들은 언제나 익숙한 정본으로 소급되곤 한다. 보들레르를 빌어서, 벤야민은 이 ①→②→③의 행렬이 ‘마법의 원’처럼 지옥 같다고 곱씹는다. 즉 우리가 마주하는 새로움이란 결코 ‘이전과 다름’이 아니라 ‘언제나 똑같은 것’의 환영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도시의 새로운 상품들이 언제나 똑같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유형의 인간 역시 판타스마고리아의 우주 속으로 침잠할 수밖에 없다는 우울함이다.

따라서 대도시의 산책자란 언제나 그 이중성을 담보로 삼고 있는 인물이요, 이미지이다. 인물로서 산책자는 도시를 배회하는 능동적인 개인들이다. 그는 산책 속에서 도시를 발견하고 도시에서 군중들을 발견한다. 그가 발견한 도시는 판타스마고리아를 탑재한 하나의 우주이다. 도시는 이해불가능한 그 무엇이 아니다. 우주에 그것이 존재하는 혹은 움직이는, 따라서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독법으로서 별자리(Konstellation)가 있듯이 도시 역시 마찬가지이다. 도시 속에서 산책자는 산책을 통해 그 별자리를 밟아나가면서 이해의 세계를 구축한다. 이러한 이해방식은 결코 합리적인 과정을 통해 관철되지 않는다. 산책자가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계기는 몸으로 도시를 체험하는 순간에 비롯된다. 그것이 언어화될 수 있는 조건 역시 언제나 가치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문명의 모든 비평적 발화자를 포함하여, 산책자는 도시의 이미지를 체험적으로 수집하며 변증법적으로 독해해낸다. 산책자는 문명에 대한 각성의 계기로 충만한 인물이다.

한편으로 산책자는 보들레르가 통찰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문명에 가장 부합하는 이미지 중 하나로서 존재한다. 구경하던 산책자는 일시에 구경되는 산책자로 전화한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우울의 정서가 표출된다. 애초에는 그는 도시 속에서 신화적인 꿈을 꾸는 자였기 때문에, 다시금 확장되는 신화 속에 배치되는 것이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다. 도시에서 별자리를 터득해가는 그의 라이프스타일은 그 터득의 묘미가 제거된 채로, 하나의 풍경으로 유포된다. 그럼으로써 그 역시 하나의 군중으로 뒤섞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산책자는 인물로서 거리를 활보하며 군중을 조롱하는 동시에, 이미지로서 배치되어 군중을 사랑하는 도시의 정념 그 자체로 자리 잡는다.


(3) 시공간구성의 욕망과 인물의 알레고리

앞선 별도의 인용문에서 발제자가 ⓐ~ⓔ의 주해를 달았는데, 그 이유는 이 부분들이 ‘개요’의 각 절 제목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A는 ‘푸리에 또는 아케이드’ ; B는 ‘그랑비유 또는 세계박람회’ ; C는 ‘루이 필립 또는 실내’ ; D는 ‘보들레르 또는 파리의 거리들’ ; E는 ‘오스망 또는 바리케이드’ 등이다. 아케이드, 세계박람회, 실내, 파리의 거리들, 바리케이드는 전술했듯이 벤야민의 프로젝트를 위한 자료수집의 목록이며 동시에 프로젝트 전체적인 알레고리들이다. 그런데 여기에 흥미롭게도, 벤야민은 푸리에, 그랑비유, 루이 필립, 보들레르, 오스망 등의 이름을 거론한다.

이것은 하나의 징후이다. 마치 탐정놀이하듯 벤야민의 의도를 추리해보자. 그는 왜 인명을 절의 제목으로 붙였을까.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게다가 각 절마다 ‘또는’이라는 접속사가 반복되고 있다. ‘또는’의 의미는 도시공간 분석의 대상이 되는 몽타쥬의 각 요소들을 이 인물들이 대체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즉 벤야민이 도시를 읽는 독법, 즉 그의 ‘별자리’에는 아케이드가 푸리에와 같으며 그랑비유는 세계박람회와 같다는 식의 등치관계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각각의 장소화된 이미지들은 도시공간의 알레고리로서 존재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각각의 인물들은 장소화된 이미지들에 또 하나의 알레고리로서 존재한다. 여기서 벤야민은 도시공간 배치에 있어서 일종의 인격성을 제안하는 듯하다. 이는 나아가 도시의 판타스마고리아 우주가 단순히 탈인격적인 과정으로 볼 수는 없다는 함의를 지니고 있다. 실제로 벤야민은 “황제와 장관들은 파리를 프랑스의 수도로 뿐만 아니라 세계의 수도로 만들기를 원했다.(Benjamin, 1999)”고 서술하고 있다.

일례로, 상점 소유주들의 집단화를 지탱한 아케이드는 푸리에가 이상적인 집단거주지로서 기획했던 ‘팔랑스테르’의 이념과 합치된다. 푸리에의 경우 오웬식의 미덕(vertu) 개념을 부정하고 정념(passions)을 택한 바 있었는데, 이는 노동의 양식이 인간 본연의 정념을 따른다면 산업문명이 가지는 폐해를 극복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의 소산이기도 하다(이는 라이히의 노동민주주의 이상과 상당부분 흡사하다). 흥미롭게도 팔랑스테르의 중앙에는 아케이드의 회랑-거리와 비슷한 공동장소로서 ‘정념거래소’가 위치하기도 한다. 이곳에서 거주민들은 자신들의 정념을 시시각각 교환하여 자유로운 노동활동을 추구한다. 푸리에가 상찬했던 아케이드는 비록 장소적으로 팔랑스테르에 있지는 않지만, 도시 속에 또 하나의 정념거래소로서 자리 잡는다. 전술했던 것처럼, 이곳에서 산책자들은 정념을 거래하고 환영을 축조한다. 여기서 중요한 논점이 제기된다. 19세기 아케이드나 팔랑스테르 모두 당시 건축 기술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바로 철골 건축이다. 기둥이 없어지고 광장이 가능해짐으로써 공간이 장식되며(건축/장식, 기술/예술의 분리) 이 회랑-거리에 도시민들이 왕래한다. 이로 인해 도시공간이 전사에 유래가 없을 정도로 시각적으로 스펙터클해진다. 그런 이유로 푸리에 개인은 한 가지 착오에 빠졌던 셈이 분명하다. 기술적 생활을 통해 인간의 정념을 해방시키려고 했지만, 오히려 정념이 기술에 종속되고 만 것이다. 물론 그의 의도대로 사람들은 거리에서, 실내화된 공간에서 만남을 가졌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거스를 수 없는 역관계에 봉착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별자리의 위치로서 푸리에가 거론된 의미를 밝힐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벤야민의 프로젝트에 푸리에가 눈에 띄지 않았다면(물론 다른 대체 인물을 찾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아케이드는 단지 19세기 건축양식의 산물로서 상점 소유주들의 판매이익을 위해 고안된 곳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벤야민은 단순한 기술결정론이나 역사유물론으로 환원되는 설명 방식을 철저하게 거부했다. 그에게 그런 이해방식은 부수적인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과연 어떻게 시공간을 체험하고 경험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즉 인간이 공간을 살아내는(live out) 방식, 거기에 초점이 있다. 푸리에는 그 경험의 실체를 알려줄 중요한 실마리이자, 인격화된 알레고리이다. 따라서 그가 벤야민 비평에 존재하는 방식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인간이 도시 공간을 경험하는 경로를 시사한다. 푸리에가 정념이 거래되길 원했던 것처럼, 상점 소매상들도 환영이 교환되길 소망했다. 둘째, 거기서 나오는 도시적 이미지들은 특정한 인물(이나 사회적 집단)의 투사물이라는 사실을 알레고리적으로 방증한다. 팔랑스테르는 푸리에(주의자)의 욕망이면서, 동시에 아케이드는 소매상들의 욕망, 나아가 도시는 도시민들의 욕망이었다.

이렇게 소우주를 통해 거대한 세계를 설명하는 구도가 그의 「1939년의 개요」 B~E를 걸쳐 지속된다. 같은 방식으로 세계박람회가 상품물신화의 환상적 공간일 수 있는 이유는 그랑비유(와 당시의 예술가)가 예술적인 세계를 창조하고자 하는 욕망을 통해서 설명된다. 또한 실내 공간이 장식으로 도배되고 나아가 실외마저도 교환가치로 점철된 데에는 금융자본가의 우두머리인 루이 필립(와 그의 치하에서 사적 시민들)이 추구했던 ‘애호가’의 가치가 중요시된다. 그리고 파리의 거리가 탈출구 없는 산책자와 창녀들로 넘실거리는 근거에는 ‘이상’으로 여겨지던 현대성의 의미를 새롭지만 전혀 새롭지 못한 것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는 보들레르(와 그를 위시로 한 보헤미안들)의 ‘우울’이 자리 잡는다. 마지막으로 이전과 달리 넓직한 대로(병영적 통제)와 기념비적 건물(부르주아 신격화) 그리고 가스등의 설치(야간 전망의 확보)와 같은 새로운 풍경들은 혁명의 바리케이드를 차단하려는, 즉 싸움과 혼란 없이 효과적으로 시민들을 통제하려는 오스망(지배권력)의 도시계획이 투사된 것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A~E의 이러한 구성이 앞서 언급했던 「베를린의 유년시절」에도 투사된다는 점이다. 기술주의의 측면에서 아케이드는 어릴 적 그의 집에서 고요한 적막을 일깨워 불안과 초조의 정념을 구성하고 통제했던 ‘전화’와 비견되며, 세계를 욕망하던 박람회장은 자본가적 욕망으로 지배 받고 있던 아버지의 ‘흑인 조각상’과 연결된다. 또한 근대의 사적 시민들이 계급구조 변동과 재편의 틈바구니 속에서 문화적 상징으로서 소장하고자 했던 장식의 미학과 애호가로서의 정서는 ‘눈 감고 발가락만 닿아도 어느 ‘양탄자’라도 구별해낼 수 있다’던 아버지의 애착과 자부심에서 비롯된다. 같은 이치로 보들레르가 창녀를 통해 간직하고 해소하고자 했던 도시적 우울함은 벤야민 자신이 아이스 쇼의 창녀를 보면서 ‘성적 충동과 쾌락의 감정’ 속에서 이미 존재했던 것이며, 도시계획자 오스망의 권위적 욕망은 가부장적 권위와 사회적 지위를 보전하려던 아버지의 욕망으로서 ‘경매용 망치’를 통해 이미 목격했었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 중의 하나는 그의 이러한 글쓰기 전략 자체가 우리가 사는 세계의 존재 형식과 너무나도 닮아 있다는 점이다. 너저분하게 존재하는 듯한 벤야민의 에세이적 편린들은 추상과 구체를 획정 짓지 않은 채로 넘나들고, 결과적으로 우리의 ‘별자리’ 속에서는 상상 이상의 강도로 탄탄한 가상적 구조로 주어진다.4) 시공간이 도시민들로 하여금 환영 속에서 살아내도록 이끄는 것처럼, 그의 글쓰기 역시 우리로 하여금 신화 속에서 특정한 삶의 양식을 체험하도록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벤야민의 도시 비평이 가지고 있는 강조점이다. 도시에 관한 일반적인 통념들은 도시의 구획과 정치경제적인 맥락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는 데 반해, 벤야민은 정치경제 비판을 횡단하면서도 군중들의 행위적인 결들을 추적하는 데에 주안점을 둔다. 즉 이 순간 도시는 구획 혹은 배치로서의 공간이 아니라, 군중들이 체험하고 경험하는 문명으로 전화한다. 그렇기에 벤야민은 도시에서 역사의 흔적을 관찰하고 그 흔적 속에서 현재적 일상을 추적하는 것으로서 ‘프로젝트’를 꿈꾸었던 것이다.



2. 역사의 발견 ― 부단히 현재적인 역사


(1) ‘체험’과 ‘경험’의 이중주

군중이 도시를 체험하고 경험한다고 했을 때, 우리가 눈여겨 볼 것은 ‘체험’과 ‘경험’ 사이에 존재하는 특정한 계기들이다. 우리말(화된 언어체계)에서 체험은 體驗 즉 몸으로 증험한다는 의미를, 경험은 經驗 즉 그 증험한 바를 새로운 방식으로 직조하고 다룬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5) 그런 면에서 경험은 ‘지혜, 완숙함, 경륜’ 등의 함의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구분은 영어보다는 독일어에서 더 잘 확인된다. 영어의 ‘experience’는 ‘시험, 시도, 실험’의 뜻이 대부분을 이루는 것으로서 그 근간에는 실험과 측정을 통해 검증한 경험적, 과학적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반면 독일어는 ‘Erlebnis’, ‘Erfahrung’으로 그 의미가 구분된다.6) Erlebnis는 특이한 방식으로 흔적을 남긴 우연한, 갑작스런 사건을 겪는, 순간적이며 충격적인 체험으로 정의된다. 반대로 Erfahrung은 실천적, 반복적, 일상적 노동에 의해 어떤 것을 체득하게 되는 것, 일상적인 삶의 지속을 통해 얻는 깨달음 및 ‘지혜’의 뜻을 강조한다. 이러한 구분은 다음의 <표>와 같이 재정리될 수 있다.

체험 Erlebnis

경험 Erfahrung

몸으로 증험(證驗)

새로운 방식으로 직조하고 다룸

(지혜, 완숙함, 경륜)

우연적, 순간적, 충격적, 짜릿함

실천적, 반복적, 체득적, 깨달음

보다, 접하다, 봐서 알다

듣다, 전해 듣다, 들어서 알다


그렇다면 소설과 ‘경험-체험’의 대조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벤야민은 「얘기꾼과 소설가」에서 전통적인 설화나 민담을 전해주는 ‘이야기꾼’의 세계와 근대 대도시의 책 시장을 겨냥해 글을 쓰는 ‘소설가’를 대조하며, 이야기꾼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경험’을 다루는 데 주목한다. 반면에 도시를 중심으로 한 근대 인쇄문화의 산물인 소설은 이러한 구전적 전통이 단절되는 것을 기본 요건으로 삼는다. 이 둘 사이를 가르는 기준은 바로 경험을 전달해주느냐의 여부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벤야민에게 근대 소설의 등장은 생활에 배어있는 전통이 사라지는 것이며, Erfahrung의 세계가 쇠퇴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가령, 이야기는 듣고 말하는 이가 사건-텍스트의 저자로 참여해 하이퍼텍스트를 확대재생산하는 반면, 소설은 ‘고독한 개인’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그러한 경험의 계기들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이유로 그의 글쓰기는 근본적으로 ‘이야기’를 지향한다. 그에게는 사건이 체험화되고 이 체험이 경험화되는 특정한 양식이 중요시된다. 궁극적으로 사건에 체험과 경험이 덧붙여지지 않는 것에는 역사적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건에 체험과 경험이 맞물리는 것만으로는 긍정적인 의미가 획득될 리는 없다. 만약 사건-체험-경험의 계기들을 우연적으로만 내몬다면, 벤야민이 작업한 도시적․시적 이미지들은 단순 나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보들레르의 몇 가지 모티브에 관해서」라는 논문에서 이러한 곤경으로부터 탁월하게 탈출한다. 그는 인간의 기억을 두 가지 층위로 나누어서 생각한다. 첫 번째는 베르그송과 프루스트를 빌린 것으로서 순수기억과 종합기억에 관한 것(베르그송), 그리고 무의지적 기억과 의지적 기억에 관한 것(프루스트)이다.(Benjamin, 1983: 122) 다분히 프로이트적인 것으로 이해할 만한 이 기억의 문제설정을 통해, 그는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영역에 의해 인간의 의식활동이 지배받고 있음을 간파하고 있다. 따라서 벤야민에게 ‘체험과 경험’은 기억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지닌 속성을 거쳐 ‘인지와 개념화’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의 경험이라는 것은 여전히 사적이다. 이것은 두 가지 난점을 야기하는데, 첫째 경험을 자기 것으로 만든다는 것은 결코 우연적인 요소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문이고, 둘째 경험의 사적인 성격은 인간이 자신의 경험 속에 외부의 사실들을 동화시키고 있는 실제적 현실에 대해서 설명할 수 없게 한다. 따라서 벤야민의 ‘경험’이 의미 있기 위해서는 이 경험이 사적인 차원을 벗어나야 한다.

이것이 바로 벤야민이 발견한 인간 기억의 두 번째 층위에 관한 문제이다. 벤야민은 체험과 경험의 경계선을 명확히 긋기 위해 경험에 들어가 있는 커뮤니케이션적 가능성에 착목한다. 예컨대 ‘똥간’에 빠진 단순 체험은 그 자체에선 기억 속에서조차 잊힐 법한 성격의 것이지만, 이것이 인간의 회상과 기억해내기(Erinnerung)를 거친다면(물론 이 기억은 의지적일 수도 무의지적일 수도 있다),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하는 경험의 것으로 전화한다. 왜냐하면 벤야민이 보기에 이 ‘기억해내기’의 계기라는 것은 ‘종합적 기억’(Gedächtnis)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서도 의문점은 남는다. 종합기억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경험의 교류를 통해 나온 것이므로, 이것은 언제나 가상적인 속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이란 결국 왜곡된 체험과 경험을 공유하는 것에 불과한 일이 된다. 이것은 분석적으로 합당할 수는 있어도, 정치적으로는 다분히 부족함이 많은 설명이다. 그런데 여기서 벤야민은 종합적 기억이라는 것에 언제나-이미 순수기억의 계기 역시 포함되어 있다는 구도를 설정한다. 프루스트를 인용하면서 그는 “이들 사지 속에 저장되어 있는 기억의 이미지들을 끊임없이 얘기하면서 이러한 기억의 이미지들은 의식에 조금도 속하지 않으면서도 느닷없이 그 의식 속으로 침입해 들어온다.”고 설명한다. 기억의 이미지들에 대한 끝없는 분출 과정에서 의식적으로 체험되지 않았던 것, 즉 주체가 ‘체험’으로서 겪지 않았던 일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주목하는 ‘무의지적 기억’의 과정이다. 객관적으로 존재했던 사건이지만 체험되지 않았던 것, 그래서 의지적으로는 기억될 수 없는 것, 이것이 바로 벤야민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지향점이자 글쓰기의 목적이며 메시아적 순간이다.


(2) 새로움의 주술적 ‘현대성’

벤야민이 기억을 둘러싼 체험과 경험의 문제설정을 가지고 있다고 했을 때, 이것은 아직 신비주의적 요소가 남아 있는 개념들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둘러싼 하나의 중대한 이론적 계기를 내장한 것이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당시 독일의 지배적인 이념 전통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나온 것이었는데, 이를 집약할 수 있는 특성이 바로 반(反)합리성과 세속성이다. 오랜 기간에 걸쳐 국민국가 형성을 지상과제로 삼고 있었던 독일 지식계는 칸트 이래로 헤겔을 거치기까지 관념적 세계와 물질적 세계, 즉 신성한 세계와 세속적인 세계를 이분화하는 사유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이는 벤야민과 교류가 있었던 아도르노 등의 비판이론 진영 역시 마찬가지여서, 이들은 정신세계와 대비시킨 관점으로써 생활세계를 세속화되고 물상화되었다고 판단했으며 따라서 그들의 비판의식과 달리 계몽의 프로젝트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나 벤야민은 오히려 세속적인 것에 가치를 부여한다. 비판이론그룹이 합리성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을 때, 그는 과감하게도 의지, 무의지, 기억, 체험, 경험과 같은 비이성적인 속성들을 이론적 무기로 삼는다. 예컨대 아케이드에 대해 푸리에가 상찬하는 우를 범했을 때, 벤야민은 그를 비판하거나 몰아세우지 않았다. 이것은 군중에 대한 태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상품에 매혹된 군중들은 일차적으로 냉소와 조롱의 대상일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물신성으로부터 해방할 수 있는 동력 그 자체였다. 그런 면에서 벤야민은 군중을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는 욕망과 내재성의 구도를 통한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에게서는 정념과 충동 그리고 쾌락 등의 정서적인 계기들이 끊임없이 발견된다.

그는 도덕적인 가치, 즉 신성한 가치로써 세상을 구제하는 데에 지극히 회의적이었다. 이를테면 그가 인용하는 것은 정념(passion)의 푸리에주의였지, 미덕(virtue)의 오웬주의는 절대 아니었다. 그는 현재의 세상도 그러하거니와 앞으로 와야 할 세상 역시 정념이 지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유년시절 유대교 신년축제의 밤, 심부름을 갔다 길을 잃은 벤야민은 교회로 가길 포기한다.

“이러한 속수무책의 상황 속에서 나를 엄습한 것은 처음에는 너무 늦어 시나고그[유대교회: 인용자 주]에 참석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의 뜨거운 감정의 물결이었고, 또 이 감정이 미처 사라지기도 전에 아니 사라지려는 바로 그 찰나에 밀려든 두 번째 것은 ‘될 대로 돼라, 그것이 나에게 무슨 상관이냐’는 식의 일종의 완전히 철면피한 감정의 물결이었다. 이 두 감정의 물결은 간단없이 한데 어울려 하나의 커다란 쾌락의 감정이 되었다. 이 쾌락의 감정 속에는 신년축제일을 모독한다는 감정과 거리의 뚜쟁이적 감정이 함께 뒤섞여 있었다. 이날 저녁 여기에서 나는 처음으로 나의 성적 충동에 도시의 거리가 무엇을 해줄 수 있는 것인가를 어렴풋이 감지할 수 있었다.”(Benjamin, 1983: 19)

애초부터 그에게 신성한 것이란 자기 자신을 억압하는 어떤 것이었다. 그것을 깨닫게 해준 것은 바로 ‘길 잃음’이었다. 이 ‘체험’(Erlebnis)을 기억해낸 순간, 그토록 신봉해왔던 신성한 것(시나고그)이 실상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길을 잃는 이 우연적인 계기야말로 세계와 도시가 직조한 그물망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지점이다.7) 이것은 의도된 이탈이 아니라, 종합적 기억으로부터 순수 기억이 우발적으로 부상하는 순간이다. 여기에는 온전히 감정만 남아 있고, 그 감정은 쾌락을 향할 뿐이다.

그러나 이 쾌락이 그 자체를 소환해낸 기억만큼 순수한 쾌락일 수 있을까. 전술했듯이 순수한 기억과 무의지적인 기억이란 불현듯 찾아오는 ‘찰나’에서 찾아지는 것이지, 정치적으로 조직화하고 구조화하는 계기들에서 마련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벤야민은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운 시공간을 발견했으면서, 동시에 이데올로기로부터 언제나 예속적일 수밖에 없는 주체를 문제 삼고 있는 셈이다. 그가 끊임없이 갈구하는 충동과 쾌락의 순간은 언제나-이미 종합적 기억의 공간 속에 파묻혀 있는 것으로서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예컨대 푸리에가 팔랑스테르에서 거래되길 바랐던 정념과 아케이드에서 역사적으로 실제 거래되었던 정념 사이에는 동일성과 유사성이 존재한다. 따라서 도처에 우울함만이 난무할 수밖에 없다.

그는 과연 이 우울함을 배겨낼 수 있었을까. 물론 그의 비평이론과 역사철학이 단순한 신비주의에 매몰되어 있는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집합적 꿈’8)과 ‘꿈에서 깨어남’ 등으로 특징 지어지는 신비주의적 요소는 후기로 갈수록 보다 계급적이고 물질적인 개념틀로 변모했는데, 이는 그가 초현실주의자들의 도시인상학에서 점차 멀어지고 세속적인 군중들 속에서 대도시의 야만에 대한 정치학으로 접근했기 때문이었다. 아케이드의 꿈에 머물러 있는 다른 이들과 달리, 벤야민은 19세기에 대한 기억작업을 통해 꿈에서 깨어나는 방법, 즉 현대의 신화를 해소하는 구원의 희망을 펼쳐낸다. 영락한 19세기의 아케이드 속에서 벤야민은 침잠해 있는 그 무언가로부터 순수한 기억을 일깨움으로써 동시에 20세기에 꿈에 취해 잠들어 있는 사람들을 깨우려 한다. 그는 자칫 빠져버릴 수도 있는 허무주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렇듯 안간힘을 썼다.

그에게 있어 견딜 수 없는 현실은 현대성이라는 꿈에 취해 있는 군중들 그 자체였다. 이 꿈이 버거웠던 것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실정적인(positive) 구속력 때문이기도 했다. 벤야민이 「우울과 이상」9) 등으로 자주 인용했던 보들레르는 현대성을 순간적이며 동시에 영원한 것이라고 이해했다. 이 역설적인 현대성은 새로운 것이면서도 언제나 익숙한 것이었다. 새로움은 상품의 사용 가치와는 독립적인 성질이다. 이것은 동시에 패션(유행)이 끊임없이 공급하려는 착각의 원천이기도 하다. 최고로 새로운 것이 “최고 오래된 것”으로 제시되는 이러한 역설을 통해 보들레르는 자신의 현대성 개념에 생동감으로 부여했다. 새롭게 등장하는 어떤 상품이라도 언젠가 태곳적부터 있었던 것이라는 숙명을 낙인처럼 갖고 있다는 현실 진단이다.

현대성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벤야민에게 적어도 두 가지 상반된 길을 열어두고 있었는데, 이것은 당시에 난무하고 있었던 도덕주의와 허무주의를 표적으로 삼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첫째는 상품의 물신성과 관련하여 문명 전체를 꿰뚫을 수 있는 유용한 무기를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태고 이래로 인간이 신(神)을 소비하고 있었다면, 벤야민이 목격한 현대에는 상품물신이 그 존재형식을 대체하고 있었다. 이것은 하나의 주술적 세계와 다를 게 없다. 이것은 이미 널리 퍼져 있는 사회학주의가 근대 개념에 부여하고 있는 ‘탈주술화’의 속성과는 전혀 상반된 것이기도 하다. 벤야민이 목격한 현대인들은 역사적으로 진보했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여전히 주술에 강력히 의지하고 있었다. 이렇게 역설적인 현대의 발견은 일체의 합리성이나 도덕주의가 개재할 수 없는 빈틈없는 주술적 시공간의 발견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둘째는 현대성의 보들레르적 용법이 시간에 대한 재개념화를 이끌었다는 점이다. 현대성이 순간적이며 영원한 것이라고 했을 때, 이것은 지극히 역사비판적인 것이다. 「역사철학테제」의 전반에 걸쳐 재확인되는 이러한 비판의식은 기실 현대성에 대한 색다른 이해에서 연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성과 물신성의 주술적 신화는 언제 해소되는가. 벤야민에게 그 시점은 바로 지금이다. 꿈에서 깨어남이란 미래에 필연적으로 오고 말 그런 것이 아니라, 현재의 우리들을 관통하는 것이다. 어쩌면 벤야민의 말대로 ‘깨어남’의 그 순간은 무의지적으로 우리의 의식에 어떤 여유도 주지 않으면서 불현듯 지나간 것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사유는 ‘영겁회귀’ 등으로 절대 수렴될 수 없는 특성을 함의한다. 즉 미궁 속에 빠져 쳇바퀴를 돌아야만 하는 역사비판이 아니라, 그 헤맴의 찰나에 다가오는 충동과 쾌락의 순수기억의 이미지들, 그 내부로부터 혁명과 해방의 비평이론이 설파된다(Eagleton, 1981: 57). 단적으로 해방은 미래의 어느 순간에 오는 모호한 어떤 것이 아니라, 지금 도처에 널려 있어 순간순간 우리를 조롱하며 지나가는 흔하디흔한 것이다.10)


(3) 역사유물론 비판인가, 허무주의의 또 다른 덫인가

따라서 벤야민 사후에 남아 있는 이들에게 유일한 과제는 해방적이고 혁명적인 그 찰나를 기억해냄으로써 현대성을 그 극한의 소진점으로 밀어붙이는 것으로 정리된다. 이렇게 벤야민의 비평기획이 허무주의 비판의 전략을 포함하고 있다고 했을 때, 이것은 그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와는 다소 상이한 이해방식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겠다. 일반적인 견해라 함은 아우라의 상실, 상품생산의 ‘새로움’이 가진 역설, 니체식의 ‘영겁회귀론’, 존재론적․초월적 절단의 함의 등으로 표현되는 허무주의적 목록들이다. 그러나 전술한 논의들은 이러한 견해들을 일종의 편견으로 불식시켜버린다. 물론 그에게 위의 목록들이 유효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면성만으로는 벤야민이 자신이 내장하고 있던 정치학적 의미들이 퇴색될 수는 없다. 가령



새로움에 대한 신화적 갈망에 의해 만들어지는 현대의 신화가 해소될 때 현대의 소진점이 발견된다. 소진점의 발견은 “역사가 일단 상품 생산 사회에 이르면 더 이상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이룩할 수 없고 유행처럼 겉모습이 변한다고 해도 늘 똑같이 열악한 세계 상태임에는 변함이 없다는 경험에 기반을 둔다.”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두 번째 연구계획서를 불어로 재작성하면서, 벤야민은 독일어 판에는 없었던 결론을 추가했다. 그 결론은 블랑키(Blanqui)의 󰡔천체를 통한 영원󰡕을 인용하면서 시작된다. “19세기 사람들이여, 우리의 환영들이 출몰하는 시간은 영원히 고정되고, 항상 똑같은 상태로 우리를 되돌려 놓는다네.” 󰡔천체를 통한 영원󰡕에서 블랑키는 역사 자체의 환영이란 다름 아닌 진보의 이미지였다는 것을 추적한다. 진보의 이미지는 사실 반복에 대한 알리바이이다. “우주는 무한대로 스스로를 반복하며 제자리에서 발만 긁어댄다. 무한은 동일한 틀에 박힌 것을 한치 빈틈없이 무한히 반복한다.” 벤야민은 블랑키의 모습 속에서 보들레르의 「일곱 노인」이 예고하고 있는 현대성으로 돌입하고 있는 우주 전체를 발견한다. 보들레르는 “도깨비가 대낮에도 행인을 잡아끄는, 북적거리는 도시, 꿈들로 가득 찬 도시!”에서 일곱 노인을 발견한다. “난데없이 한 노인이 내 앞에 나타났다. 비 머금은 하늘 빛깔을 닮은 누런 누더기에, 그 눈에 번득이는 심술만 없어도, 동냥을 빗발치게 했을지도 모를 그런 몰골로” 초라한 노인의 모습 속에서 보들레르는 ‘영원함’을 발견한다. “나와 똑같은 소름이 끼치지 않는 사람은 잘 생각해 보라. 그 흉측스러운 일곱 괴물이 비록 그토록 늙어빠지긴 했어도 뭔가 영원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초라한 노인의 모습에서 영원함을 발견한 보들레르처럼 벤야민은 19세기의 유물 아케이드에서 영원함을 발견했다.

대도시의 야만을 벗겨내는 정치학은 그의 마지막 논문인 「역사의 개념에 관한 테제」에서도 드러나듯이 마르크스주의적 역사 실천과 거리를 둔다. 「역사의 개념에 관한 테제」는 ‘역사주의’에 대한 비판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역사유물론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역사주의’와 역사유물론은 진보를 신뢰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며, 벤야민이 보기에 진보에 대한 신뢰와 현대성의 신화는 닮은꼴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신화를 다시 탈신화하려는 벤야민의 도시인상학의 종착점은 메시아적 구제에 대한 믿음이다. 메시아적 순간은 진보라는 껍데기를 쓰고 있는 반복 동일적 시간에 의해 구성된 역사적 시간에 종말을 가져온다. 따라서 도시인상학의 정치학은 파리의 바리케이트전에서 시계탑을 공격했던 군중처럼 도시에서 반복동일성에 의해 지배받는 시간의 축적에 빚어내는 신화를 공격하며, 신화적 시간을 종식시킬 메시아적 순간을 향한다. “투쟁의 첫날밤에 파리의 여러 곳에서 상호간에 아무런 관련도 없이 독자적으로 그리고 동시적으로 시계탑에 총격이 가해졌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아마 시의 압운에 힘입어 그의 통찰력을 획득했다고 생각되는 이 사건의 어느 증인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누가 믿을 것인가? 들리는 말에 의하면 모든 시계탑 밑 서 있던 새로운 여호수아가 마치 시간이 못마땅하기라도 하듯이 시계판에 총을 쏘아 시간을 정지시켰다고 한다.” 그 순간은 언제 오는가? 그 순간을 누가 오게 할 수 있는가? 그에 대한 대답을 벤야민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놓았다. 󰡔아케이드 프로젝트󰡕 는 우리가 대답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4) 알레고리와 변증법적 이미지, 그리고 몽타쥬

미시적인 것(파리 혹은 각각의 지배소들)으로부터 역사전체(부르주아 사회)를 관찰하려는 도시인상학적 태도. 도시는 19세기의 소우주이며, 아케이드는 소우주인 도시의 모나드. 인간행위의 흔적(잔해). “파리는 자본주의의 전성기에 등장한 바빌론의 재림으로서, 현대의 바빌론으로서 소비와 사치의 천국이다.“

알레고리에 대한 통찰은 “사물들의 무상성(vergänglichkeit)에 대한 통찰이며, 이들을 영원으로 구원하려는 욕망이다.” 알레고리적 통찰은 영원함에서 무상성을 발견하며, 무상함이 역설적이게도 영원히 반복됨을 인식한다. 즉 알레고리는 영원함과 무상성이라는 대립적인 힘들이 빚어내는 구도(constellation)의 형상이다. 알레고리는 아름다움이 풍키는 영원함의 가상을 파괴하려는 해체의 시도이자 동시에 무상성에 대한 경험을 표현하는 개념이다. 벤야민에게 알레고리는 절대화에 대한 도전의 표현이다. 알레고리는 개념의 추구가 아닌 상상력의 자유를 즐긴다. 왜냐하면 알레고리는 동일성이 아닌 양의성과 다의성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알레고리는 의미의 동요를 추구한다. 그래서 벤야민은 독일비극에 관한 연구를 통해 “의미의 순수성과 통일성에 대한 저항”인 알레고리야말로 바로크의 긍지라 했다. 19세기의 현대성은 반립적 힘들의 구도로 등장하며, 알레고리 형상으로 현대성이 형성되는 아케이드는 따라서 역사를 지속적인 발전과 진보로 파악하려는 ‘역사주의’의 역사철학이 해체되는 현장이다.

19세기의 부르주아의 기념물 아케이드는 폐허가 되어버렸다. 아케이드의 폐허화는 19세기가 만들어낸 신화의 해소이다. 해소된 신화는 새로움과 진보에 대한 광신이다. 19세기 부르주아 시대의 유물로 거기 남아 있는 공동화된 아케이드는 자기 파괴의 씨앗을 내포하고 있었다. 아케이드를 가득 채운 것은 새로움에 대한 신화이다. 바로 아케이드는 자신이 품고 있는 새로움에 대한 신화에 의해 폐허가 될 수밖에 없었다. 폐허가 된 아케이드는 새로움에 대한 현대적 신화의 자기 파괴에 대한 알레고리이다.


(5) 변증법적 이미지들 ― 몽타쥬의 시각 구성과 수집가

그는 도시에 관한 인상학적 분석의 서술이 도시의 모습을 닮기를 바랬다. 도시경험의 특성을 벤야민은 시각성의 전면배치에서 찾는다. 아케이드는 시지각이 전면에 배치되는 대표적 공간이다. 시각적 공간에서 펼쳐진 것들을 다시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방법을 찾기 위해 벤야민은 아라공의 초현실주의적 방법에 기댄다. 그는 “시각-공간(Visionsraum)에서 구름과 같은 분위기, 구름처럼 변하는 사물”들 속에서 현대성을 발견하려 한다. 따라서 그가 선택했던 방법은 인상학의 몽타주였다.

우리가 아우라를 지각의 주체와 지각 대상 사이에서 발생하는 관계론의 문제로 볼 경우, 아우라 소멸 테제는 예술작품의 성격변화에 관한 담론을 넘어서서 현대성이 관철되고 있는 사회에 대한 해석 테제로 확장될 수 있다.

“아무리 가까이 있다고 느껴지더라도 먼 것의 일회적인 나타남”으로 사물을 아우라적으로 경험하던 지각방식은 사물을 가까이에 두고, 가까이 두는 것을 통해 일회성을 극복하려는 현대적 군중의 탈 아우라적 지각에 의해 대체된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역사를 그려내는 데 쓴 자료들이 이전의 학자들은 전혀 거들떠보지 않은 역사의 폐품들, 그러니까 일상의 자질구레한 소품들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건물·상품·기술에서부터 창녀·도박·비행기·일기예보·도로표지판·먼지 등 지금까지 진지한 사유의 대상이 된 적 없었던 것들을 관심의 영역 안으로 끌어들였다. 개념이 아닌 사물이 사유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이런 대상들을 일관된 주제의 소재로 조립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나란히 늘어놓음으로써 그 이미지가 말하게 하는 방식을 썼다는 사실이다. 마치 아케이드에 밀집된 상점들이 어떤 총체적 이미지를 구성해내듯, 그가 끌어들인 소재들이 병렬돼 ‘몽타주 효과’를 내는 것이다. 개념으로 설명하지 않고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그것이 베냐민의 의도였다. 독자는 이 이미지들 사이에 선을 그어 나름의 별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독법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 된다.

아케이드, 신유행품점, 패션, 권태, 오스만, 바리케이드, 박람회, 광고, 수집, 실내, 보들레르, 꿈의 집, 미래의 꿈, 산책자, 매춘, 도박, 거리들, 영화, 사진 등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들만 보아도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즉 자본주의를 사는 우리 현실에서는 매 분초마다 우리 눈앞에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막상 어느 누구도 본격적으로 분석해보지 않은 현상들을 벤야민은 벌써 60년 전에, 그것도 19세의 파리로, 자본주의의 탄생지로, 자본주의의 뿌리로 거슬러 올라가 근원적으로 사유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용마루기와에서 하나의 … 이름 없는 민중예술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용마루기와의 최후의 명성은 아닌 것이다. 그것을 창조해 낸 사람들을 증언해 주는 영웅의 얘기는 한 권도 없다>하고 푹스는 쓰고 있다. 이름 없는 자들과 그 이름 없는 자들의 솜씨의 흔적을 보존하였던 것들을 향한 그러한 관찰이…” 「수집가와 역사가로서의 푹스」

성좌(constellation)라는 가상적인 구조의 형성.


(3) 글쓰기 전략으로서의 에세이

「글을 잘 쓴다는 것」

혁명적 비평주의(Eagleton, 1981)

「이야기꾼과 소설가」



4. 보론 : 한 가지 제언


우리는 벤야민의 독법을 따라서 현대 도시인의 역사적이고 현재적인 시공간 경험의 의미를 추적해볼 수 있을 것이다.

- 벤야민의 알레고리, 몽타쥬 독법으로 도시 읽기.

- 아케이드, 세계박람회, 실내, 거리, 바리케이드 등의 도시적 이미지들 혹은 알레고리들.

- 푸리에, 그랑비유, 루이 필립, 보들레르, 오스망 등 정념과 쾌락의 발신자 혹은 전도사들.

- (건축)기술주의, 코스모폴리타니즘, 디스플레이적 가치체계, 우울과 이상의 변증법, 통제와 계획적 구상 이념 등의 몽타쥬 결과물들.

우리는 서울에서 알레고리를 발상해낼 수 있다 : 지하철, 시티투어, 공항/터미널/항구/기차역, 극장, 공원, 노인, 디아스포라, 빈민촌, 유흥의 거리, 풍수지리/도시계획/구획, 강변 시설, 약수터/휘트니스클럽/산, 재래시장/지하상가/백화점/대형마트/쇼핑몰, 학교/대학/교실/강의실/학원, 인테리어, 강남북의 빗장, 실내경마장/로또방, 재개발/부동산, 교회/점집 등.

또한 사전에 가설로서 제시 가능한 몇 가지 몽타쥬적 결과물도 고안할 수 있다 : 구획과 편집증의 욕망, 잉여향락의 희구, 건축과 미디어의 조절 양식, 구별과 분류의 정치, 주술성으로서 도시, 도시적 풍경을 형성하는 의지적/무의지적 체험들 등.

이 장소와 장소적 이미지들 사이에서 인간들은 어떤 체험과 기억을 양산해내고 있는 것일까. 벤야민이라는 욕망의 모호한 대상을 좇아, 대도시 서울(시민)을 반추하는 작업 역시 의미 있는 과정이 될 듯하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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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명우. 2003. 「아케이드 프로젝트와 현대성의 경험」. 『모색』 4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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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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