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 억압, 불평등, 그리고 젠더 개념


김성윤, 2006년 11월 28일


1. 시대와 지역, 그리고 특정한 국면에 따라서 여성주의적 테제는 각기 다른 양태로 나타난다. 전통적인 가부장제를 극복하기 위해 여성주의 이론과 실천은 거의 모든 경우 승인투쟁의 형식을 빌린다. 젠더에 대한 인지가 거의 없는 사회, 아니 정확하게는 젠더에 대한 인지가 거의 은폐되고 억압되어 있는 사회에서 여성주의는 사회적 승인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터져 나온다.


2. 성이 억압 받고 있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이 가설을 받아들인다면, 과연 억압의 주체는 누구인가. 혹은 억압의 이데올로기와 담론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억압하는 자는 남성인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가령 시집 온 며느리를 훈육하는 시어머니의 생물학적 성은 무엇인가. 여성이다. 억압 가설은 기본적으로 이분법적 착상을 전제로 한다. 남성 대 여성, 부르주아 대 프롤레타리아, 백인종 대 유색인종, 이성애자 대 동성애자 등등. 그러나 사회학적 상상력을 요구하는 이러한 문제들은 생각 이상으로 훨씬 복잡하다.


3. 주체가 구조의 담지자일 수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문제는 좀 더 수월해질지 모른다. 물론 구조를 공고히 하는 특정한 담론이나 이데올로기에 책임을 묻는 것도 그다지 명쾌해 보이진 않는다.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담론의 체계와 구조는 차별적으로 나타나며 확대재생산되기 때문이다. 가령 한국사회에서 유교적 엄숙주의는 여성 차별을 야기하는 조건으로서 다른 민족국가와는 다른 점을 보여준다. 아랍계 여성이 이슬람 교리에 따라 차도르로 자신의 정체성을 봉쇄해버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4. 그러나 (어떤 형식으로라도) 마초이즘이 여성 차별과 억압의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모든 여성들이 살아내고 있는(live out) 차별과 억압은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백인 여성이 경험하는 불편함이 라틴계 여성의 그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가. 상류층이나 중산층의 여성은 왜 하층 노동계급 여성과 경험의 양식이 다른 것인가. 왜 각 여성 개인마다 그 강도가 달라지는 것일까.


5. 이와 같은 질문이 여성 외부의 요인, 즉 사회적 특성에 따라 여성의 목소리가 달라짐을 지적하는 것이라면, 반대로 여성들 내부의 원인으로 여성주의가 분분해지는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어떤 페미니즘 이론은 사회적 승인을 얻는 것 정도를 주장할 수 있고, 아주 급진적인 경우에는 사회에서의 성 분리를 통해 여성들만의 공동체를 주장할 수도 있다. 경향적으로는, 생물학적 성과 사회적 성 역할 사이의 관점에 따라 실천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은 분포를 보일 수 있다. 특히 앞서 4번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성적 차이에 사회적 관계라는 것이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착안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6. 여성주의적 실천의 매트릭스는 따라서 훨씬 다차원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 계급과 인종의 관점은 그런 측면에서 유용 가능한 자원이 된다. 여기서 차이 짓기(doing difference)의 중요성이 새삼 부각된다. 차이라는 것은 이전보다 훨씬 복합적인 것이어야 한다. 차이 개념은 젠더 개념에서만이 아니라 젠더, 인종, 계급의 관계에 대한 함의를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는 물론 닫힌 체계가 아니라 젠더/인종/계급이 아닌 그에 값하는 또 다른 사회적 모순에도 열려 있는 개념이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불평등, 차별, 억압 등이 생산되고 유지되는 메커니즘을 파헤칠 수 있기 때문이다.


7. 여기서 페미니즘적 사고방식에 깃들어 있는 백인중산층적 편향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인종이나 계급의 모순을 끌어 들인 순간, 백인(인종)-중산층(계급 혹은 계층)이라는 위치가 문제시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인종과 계급을 일제히 경험하지 않고 젠더를 경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러한 모순들은 개별적으로가 아니라 동시에 일제히 발생한다.


8. 그렇다면 이러한 과정에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 들어갈 것인가. 이것은 방법론의 문제이다. 중요한 것은 차별-억압-불평등이 발생한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발발하는 바로 그 순간이다. 시간적으로는 과정이며, 공간적으로는 관계이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특정한 국면을 해부하고 그 움직임과 생동감을 포착하는 것이다. 불평등은 기본적으로 파묻혀 있으며 사회적 관계에 놓여 있다. 젠더/인종/계급의 영향력을 가정할 때, 우리는 이 과정과 관계의 포괄성에 주목해야 한다. 과정으로서 이 차별과 억압과 불평등의 구조를 재개념화할 때, 자칫 그 양상을 점수와 서열로 매기면서 속단에 빠지는 문제점을 피할 수 있다.


9. 민속지적 방법론을 떠올린다면 그런 점에서 어느 정도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젠더(혹은 인종 혹은 계급 혹은 그 모두)를 연구한다고 했을 때, 그 젠더/인종/계급을 이미 배태한 사회적 맥락과 동떨어진 채, 사회적 행위들을 연결시킬 수는 없다. 그리고 각 모순의 자칫 도식적일 수 있는 범주적 다원성으로부터도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사회적 상호작용이라는 차원에서 생각해보자면, 같은 행위로 보이는 것들도 그 행위에 결부되어 있는 젠더/인종/계급의 맥락에 따라 각각 상이한 의미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10. 결론적으로, 차별-억압-불평등의 문제는 어느 한두가지 관점만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 그 양상은 시대, 지역, 국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거기에 따라 여성주의적 실천이란 것도 복잡한 전략 속에서 설계되어야 한다. 이러한 사회적 관계들을 충분히 고려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 과정들을 파헤치기 위해서, 우리를 둘러싼 일상의 평범한 것들조차 켜켜이 고르고 다져내는 복안이 필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Posted by 김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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