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도시 서울, 그리고 표류하는 빈민들

중앙대 대학원신문 2006.4.4

김성윤/ 사회학과 박사 1차

한강이 넘실거리고 남산이 아른거리는 서울은 그야말로 세계-도시이다. 평화로워 보이는 이 도시는 중심국의 세계-도시들 그리고 지역의 군소도시들과 위계를 맺으며 그 생명력을 유지한다. 이곳에서 인간 군상들은 자기 생존과 번영을 위해 나름의 지도와 나침반을 가지고 각자의 경로를 항해하고 있다. 그리고 그 군상 중에 바로 도시빈민이 있다.


지난 2004년 상도동 달동네 철거를 마지막으로 사실상 서울에는 빈민 집성촌이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1966년 미국 존슨 대통령 방한 때 ‘쪽 팔렸다’는 박정희 대통령의 ‘파문’으로 시작된 서울의 빈민촌 철거가 근 40년 만에 마무리된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흥미로운 것은 대중들이 자기-기만적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서울의 빈민을 망각해버린 것 같다. 물론 빈민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진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될 수 있는 한 작은 잔상조차 남지 않도록 자기 기억에서 빈민을 지운다.


도시의 잉여에서 기억의 잉여로까지 전락해버린 도시 빈민은 자신들의 거주공간에서 철거되고 대중의 기억에서도 축출됐다. 그러나 공간과 기억이 없어졌다고 해서 도시의 위계구조에 변동이 찾아온 것은 아니다. 우리가 소각하고 남은 잔상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도시빈민은 엄존해 있다.


천재시인 이상을 흉내 내 서울을 산책하다보면, ‘33번지의 18가구’는 쪽방과 반지하와 150세대 8평 임대아파트로, ‘경성역의 티이루움(tea-room)’은 서울역의 쇼핑몰로 대체됐을 뿐이다. ‘미쓰꼬시’ 백화점과 ‘오탁의 거리’가 지녔던 위계는 프레이저 수츠와 노숙의 거리로 잔존해 있다. 사실상 ‘33번지’와 ‘오탁의 거리’는 그대로이다. 도시의 빈민들은 표류하면서 엄존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실재이다.


사실 빈민촌의 철거와 빈민의 표류는 그다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60~70년대 경기 광주?성남 강제이주 정책 때도 그러했고, 80년대 합동재개발 전략 때도 그러했다. 빈민은 무허가정착지에 집성하고(판자촌), 쫓겨나면 흩어지고(철거?이동), 그러다 빈틈이 생기면 재집결한다(달동네). 이것은 임대주택 정책 시기라 할 수 있는 현재에도 예외가 아니다(달동네-철거-이동-노숙?쪽방). 즉 대도시 서울과 도시 빈민들 사이에서 쫓고 쫓기는 게임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 게임 와중에, 최근 대중들 사이에서 새로운 인식이 돌고 있음이 감지된다. 임대주택 시작 이후 빈민들이 부재한다고 여겼던 사람들이 빈민의 존재를 다시금 실감하고 있는 것이다. 양극화 현상이라는 담론적 영향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분산돼 있던 도시빈민들이 쪽방 등지로 ‘서서히’ 재집중하고 있는 풍경, 즉 실천적 효과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양극화 해소와 빈곤의 퇴치가 당면한 사회적 의제로도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한편으로는 다행이라 생각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겸연쩍은 기분을 거둘 수 없다. 1백년을 넘게 장기지속하고 있는 도시 빈민의 문제는 단순히 경제학적?복지학적 문제로 국한할 성격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견 도시 빈민은 일순간의 경제적인 이유로 배태된 집단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빈곤은 우리의 전체를 설명하는 데 있어 불가결하게 수반되는 구조적인 결핍이자 공백이다. 우리에게 있어 도시빈민의 문제는 수십년을 반복하고 있는 게임이 아니던가. 즉, 부의 (일시적인) 재분배를 넘어서는 극약처방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이다. 분명, 이제는 그 게임을 종료할 시점이다.

Posted by 김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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