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 제3부 4장 탈근대화, 즉 생산의 정보화
김성윤, 2002년 7월 27일
경제적 근대화(농업의 지배에서 산업의 지배로, 산업화)→경제적 탈근대화(산업의 지배에서 서비스와 정보의 지배로, 정보화). 양적 관점은 이런 경제 패러다임들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양적 지표로는 하나의 패러다임으로부터 또 하나의 패러다임으로의 진전에서 나타나는 질적 변형이나 각 패러다임의 맥락 안에서의 경제 부문들 사이의 위계를 파악할 수 없다. (370, 371)
양적 관점은 또한 전지구적 체계 속에서의 민족적 혹은 지역적 경제들 사이의 위계들을 인식하지 못하며, 전혀 있지 않은 유사성들analogies을 주장하면서 온갖 종류의 역사적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질적 관점에서, 즉 전지구적 권력관계 속에서 자신들이 차지하는 지위라는 점에서, 이러한 사회들의 경제들은 비교할 수 없는 지위들을 완전히 차지하고 있다. 앞서 있었던 경우(과거의 프랑스나 영국)에서 농업 생산은 경제 영역에서의 지배적인 부문으로 존재했고, 뒤에 있었던 경우(20세기의 인도나 나이지리아)에서 농업 생산은 세계 체제 속에 있는 산업에 종속되었다. 역사적 변화는 경제 영역 도처에 있는 권력관계의 측면에서 인식되어야만 한다. (371, 372)
발전에 대한 환상들
전후 시기에 뉴딜 모델과 함께 미국의 헤게모니 아래에서 강요된 경제 발전이라는 담론은 그러한 그릇된 역사적 유사점들을 경제 정책을 위한 근거로 사용한다. 이 담론은 모든 나라들의 경제사가 제각기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속도에 따라 단일한 발전 유형을 따른다고 생각한다. 발전적 시각은, 이른바 선진국의 경제는 특정한 양적 요소들이나 선진국들의 내적 구조들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하게는 전지구적 체계에서 선진국들의 지배적인 지위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372, 373)
저발전 이론가들 스스로도 경제 발전에 대한 유사한 환상을 반복한다. 도식적인 말로 요약하면, 우리는 저발전 이론가들의 논리가 두 가지 타당한 역사적 주장으로 시작하지만 그 주장에서 잘못된 결론을 도출한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 그들은 지배적인 자본주의 경제들이 식민지 체제들 그리고/혹은 다른 제국주의적 지배 형태들의 부과를 통해, 종속된 경제들을 자신들의 전지구적 네트워크 속에 통합시키고, 그들을 부분적으로 접합시키고, 그래서 그들을 실질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자신들에게 의존하게 함으로써, 종속된 경제들의 저발전을 창조하고 유지했다고 주장한다. 둘째 그들은 지배적인 경제들 자체가 처음에는 상대적 고립 속에서 다른 경제들 및 전지구적 네트워크들과의 제한된 상호 작용만을 한 채 아주 뚜렷하고 독립적인 자신들의 구조들을 발전시켰다고 주장한다. (374)
만일 발전된 경제들이 상대적 고립 속에서 완전한 결합을 이루었고, 저발전된 경제들이 전지구적 네트워크들에 통합되는 것을 통해 해체되고 의존적으로 되었다면, 그때 저발전된 경제들의 상대적 고립[자립]을 위한 기획은 결국 저발전된 경제들의 발전과 완전한 결합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이다. 달리 말해, 지배적인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제학자들이 영합했던 “거짓된false 발전”에 대한 대안으로서, 저발전 이론가들은 “진정한real 발전”을 장려했다. 우리로 하여금 경제 발전 법칙들이 역사적 변동의 차이들을 어느 정도 초월할 것이라는 점을 믿도록 요구한다. (374, 375)
발전에 대한 대안적 관념은 역설적으로 자신이 반대하는 지배적인 발전 이데올로기의 핵심인 동일한 역사적 환상에 근거하고 있다. 지배적인 국가들조차도 이제는 전지구적 체계에 의존하고 있으며, 세계 시장의 상호작용은 모든 경계를 전반적으로 해체해 왔다. 점점 더 모든 고립이나 분리의 시도는 단지 전지구적 체계에 의한 더욱 잔인한 종류의 지배, 즉 무력함과 빈곤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375)
정보화
근대화는 끝났고 전지구적 경제가 오늘날 정보 경제를 향한 탈근대화 과정을 겪고 있다는 주장은 산업 생산이 사라질 것이라거나 심지어 지구의 가장 지배적인 지역들에서조차도 산업 경제의 중요한 역할이 끝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산업화 과정이 농업을 변형시켰고 농업을 더욱 생산적으로 만들었던 것처럼, 또한 정보 혁명도 제조 과정을 재규정하고 활력을 되찾게 함으로써 산업을 변형시킬 것이다. 여기서 작동하는 새로운 경영 명령은 “제조업을 하나의 서비스로 다루라”이다. 근대화 과정을 통해 모든 생산이 산업화되는 경향이 있었던 것처럼, 또한 탈근대화 과정을 통해 모든 생산은 서비스 생산을 향하고, 정보화되는 경향이 있다. (376, 377)
마뉴엘 카스텔Manuel Castells과 유코 아오야마Yuko Aoyama는 두 가지 기본적인 정보화 모델 혹은 길을 구분하였다. 첫 번째 길은 서비스 경제 모델service economy model을 향하고, 미국, 영국, 그리고 캐나다가 이끌고 있다. 이 모델은 산업 직업의 급속한 감소와 그에 상응하는 서비스 직업의 증가를 수반한다. 특히 자본을 관리하는 금융 서비스업들이 다른 서비스 부문들을 지배하기에 이른다. 두 번째 모델, 즉 일본과 독일이 대표하는 정보 산업 모델info-industrial model에서는, 산업 고용은 첫 번째 모델에서 감소하는 것보다는 더 천천히 감소한다. 그리고 더욱 중요하게는, 정보화 과정은 현 산업 생산에 긴밀하게 통합되며, 현 산업 생산의 힘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 그러므로 이 모델에서는 산업 생산과 직접 연관된 서비스들이 다른 서비스들과 비교하여 더욱 중요한 것으로 남아 있다. (377)
오늘날 모든 경제 활동은 정보 경제의 지배 아래 들어가는 경향이 있으며, 정보 경제에 의해 질적으로 변형되는 경향이 있다. 전지구적 경제에서 지리적 차이들은 서로 다른 발전 단계들이 공존한다는 신호들이 아니라 새로운 전지구적 생산 위계의 선들이다. (379)
최근 이탈리아의 변형은 “초기 산업화proto-industrialism에서 초기 정보화proto-informationalism로의 흥미 있는 이행”을 드러낸다. 경제 단계들은 동시에 모두 현존하고, 지구를 가로질러 종류에서가 아니라 정도에서 서로 다른 잡종적이고 혼합적인 경제로 점차 바뀌게 된다. (380)
근대화가 이전 시기에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탈근대화나 정보화는 인간되기의 새로운 양식을 나타낸다. 무질이 말했던 것처럼, 정신의 생산에 관한 한, 사람들은 산업 기계의 전통적인 기법을 정보 및 소통 기술의 인공 두뇌적 지성cybernetic intelligence으로 실질적으로 대체해야 한다. 우리는 피에르 레비Pierre Levy가 가상 공간의 인류학이라고 부르는 것을 발명해야 한다. (380)
비물질적 노동의 사회학
정보 경제로 이행하는 것은 반드시 노동의 질과 본성의 변화를 수반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변화의 첫 번째 측면을 공장 노동이 - 자동차 산업을 하나의 핵심적인 준거점으로 사용한다면 - 포드주의 모델에서 도요다주의 모델로 변화한다는 측면에서 인식한다. 포드주의 모델은 생산과 소비 사이에 상대적으로 “무언의” 관계를 구축했다. 소비에서 생산으로의 피드백 회로가 있어서 시장의 변화가 생산 공학의 변화를 자극하긴 했지만, 그러나 이런 소통 회로는 (계획과 설계 구조들의 고정되고 구획화된 경로들 때문에) 제한됐고 (대량 생산의 기술들과 절차들의 경직성 때문에) 느렸다. (381)
도요다주의는 생산과 소비 사이의 포드주의적 소통 구조의 전도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모델에 따르면, 생산 계획은 이상적으로 시장들과 지속적이고 직접적으로 소통할 것이다. 공장들은 재고가 없는 상태를 유지할 것이며, 상품들은 현존 시장들의 현재 수요에 따라 적기just in time에 생산될 것이다. 왜냐하면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생산 결정이 실질적으로 시장 결정 이후에 그리고 시장 결정에 대한 반응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381, 382)
서비스 생산물이 물질재와 내구재로 귀결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생산에 포함된 노동을 비물질적 노동-즉 서비스, 문화 상품, 지식, 혹은 소통과 같은 비물질적 재화를 생산하는 노동-이라 규정한다. 비물질적 노동의 한 측면은 컴퓨터의 기능작용과의 유사성 속에서 인식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점점 더 컴퓨터처럼 생각하고 있고, 소통 기술들과 그것들의 상호 작용 모델은 더욱더 노동 활동에 중심이 되고 있다. 컴퓨터가 지닌 하나의 새로운 측면은 자신을 사용하여 자기 자신의 작동을 끊임없이 수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컴퓨터 및 소통에 의한 생산 혁명은 노동 실행을 모두 정보 및 소통 기술 모델을 향하도록 변형 시켜 왔다. 상호 작용적이고 인공두뇌적인 기계들은 우리의 신체들과 정신들에 통합된 새로운 인공 보철물이 되고 우리의 신체들과 정신들 자체를 재규정하는 렌즈가 된다. 가상 공간의 인류학은 사실상 새로운 인간 조건에 대한 인식이다. (382, 383)
로버트 라이시는 컴퓨터 및 소통 작업과 관련된 비물질적 노동 종류를 “상징적-분석적 서비스들” - “문제들을 해결하고 문제를 명시하며 전략적으로 중개하는 활동들”을 포함하는 과업들 - 이라 부른다. 우리는 생산의 정보화와 비물질적 노동의 출현이 가져온 하나의 결과가 노동 과정의 실제적인 동질화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19세기 맑스의 관점에서는, (중략) 자신들의 구체적인 실행들에서 추상화되었을 때에만 서로 다른 노동활동들은 결집될 수 있었고 더 이상 재단과 직조로서가 아니라 인간 노동력 일반의 지출로서, 즉 추상 노동으로서 동질적인 방식으로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생산의 컴퓨터화와 더불어 구체적 노동의 이질성은 축소되는 경향이 있고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 대상에서 점점 분리된다. 컴퓨터화된 재단 노동과 컴퓨터화된 직조노동은 정확히 동일한 구체적 실행들 - 즉 상징들과 정보의 처리 - 을 포함할지도 모른다. 컴퓨터는 보편적 도구로,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활동들이 통과할지 모를 핵심적인 도구로 나타난다. 그때 노동은 생산의 컴퓨터화를 통해 추상 노동의 지위로 향한다. (383~385)
비물질적 노동의 다른 측면은 인간의 접촉과 상호 작용이라는 정서적 노동affective labor이다. 이러한 노동은 신체적이고 정서적일지라도 노동의 결과물들, 즉 안심, 행복, 흥분, 혹은 정열을 만질 수 없다는 의미에서 비물질적이다. 실제로 비물질적 노동에 본질적인 것은 정서의 창조와 처리이다. 그런 정서적 생산, 교환, 그리고 소통은 일반적으로 인간적 접촉과 연관된다. 하지만 그런 접촉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그런 것처럼, 현실적일 수도 있고 가상적일 수도 있다. (385)
정서적 측면은 컴퓨터가 규정한 지성과 소통의 모델을 넘어서 확장된다. 정서적 노동은 “여성 노동”에 관한 페미니스트적 분석들이 “신체적인 양식의 노동”이라 불렀던 것에서 출발함으로써 더욱 잘 이해된다. 보호 노동caring labor은 확실히 신체적인 것, 체질적인 것에 완전히 집중되지만, 보호 노동이 생산하는 정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물질적이다. 정서적 노동이 생산하는 것은 사회적 네트워크들, 공동체의 형태들, 생체권력이다. 여기서 사람들은 경제적 생산의 도구적 행동이 인간관계의 소통적 행동과 일체가 되어 왔다는 점을 다시 한번 인식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소통이 약화된 것이 아니라, 생산이 복잡한 인간 상호 작용의 수준으로 풍부해진 것이다. (385)
우리는 서비스 부문을 정보 경제의 첨단으로 몰아가는 세 가지 형태의 비물질적 노동을 구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정보화되어 온 그리고 생산 과정 자체를 변형시키는 방식으로 소통 기술들을 통합해 온 산업 생산 속에 포함되어 있다. 제조업은 하나의 서비스로 간주되고, 내구재를 생산하는 물질적 노동은 비물질적 노동과 혼합되고 비물질적 노동을 향한다. 두 번째는 분석적이고 상징적인 일들을 하는 비물질적 노동인데, 이 비물질적 노동 자체는 한편으로는 창조적이고 지성적인 처리와 다른 한 편으로는 일상적인 상징적 일들로 나누어진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형태의 비물질적 노동은 정서의 생산과 처리를 포함하고 (가상적인 혹은 현실적인) 인간적 접촉, 즉 신체적인 양식의 노동을 요구한다. 이러한 것들이 전지구적 경제의 탈근대화를 추동하는 세 가지 노동 형태이다. (385~386)
비물질적 노동의 협동적 측면은 이전의 노동 형태 속에서처럼, 외부로부터 부과되거나 조직화되지 않는다. 오히려 협동은 노동 활동 그 자체에 완전히 내재적이다. 이 사실은 노동력을 “가변 자본”, 즉 자본에 의해서만 활성화되고 결합되는 하나의 힘으로 생각하는 (고전 경제학과 맑스주의 경제학에 공통적인) 낡은 통념에 이의를 제기한다. 왜냐하면 노동력(특히 비물질적 노동력)이 지닌 협동적 역능은 노동에게 자신을 가치 증식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생산성, 부 그리고 사회적 잉여의 창조는 언어적, 소통적 그리고 정서적 네트워크들을 통한 협동적 상호 작용의 형태를 띤다. 자기 자신의 창조적 에너지를 표현하는 데서, 비물질적 노동은 일종의 자생적이고 초보적인 코뮤니즘을 위한 잠재력을 제공하는 것 같다. (386~387)
네트워크 생산
정보 생산으로의 이행과 네트워크 조직 구조는 생산적 협동과 효율성이 더 이상 인접성과 집중화에 그런 정도로 의존하지 않도록 만든다. 정보 기술은 거리를 상관하지 않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똑같은 과정에 포함된 노동자들은 인접성을 고려하지 않고 멀리 떨어진 장소들에서 효과적으로 소통하고 협동할 수 있다. 결국, 노동 협동의 네트워크는 영토적이거나 물리적인 중심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388)
(서비스와 내구재 둘 다의) 정보 생산 노동은 우리가 추상적 협동이라 부르는 것에 의존한다. 그런 노동은 노동자들 사이의 지식과 정보의 소통에 더욱 중심적인 역할을 부여한다. 하지만 그 협동하는 노동자들은 같은 자리를 하고 있을 필요가 없으며, 상대적으로 서로 알지 못할 수도 있으며, 혹은 교환된 생산정보를 통해서만 서로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생산 부지들은 탈영토화될 수 있으며, 소통 네트워크에서의 조정자들처럼 가상적으로 실존하는 경향이 있다. 낡고 수직적인 산업 및 기업 모델과는 반대로 생산은 이제 수평적인 네트워크 기업들로 조직되는 경향이 있다. (388~389)
생산의 탈영토화와 자본의 이동성 증가를 향한 이런 경향들은 절대적이지 않으며, 거기에는 중요한 상쇄경향들이 있다. 하지만 전자의 경향들이 진전하는 한, 그것들은 노동을 약화된 협상 지위에 놓이게 한다. 산업적 대량 생산을 포드주의적으로 조직하던 시기에, 자본은 특정한 영토에 구속되어서 제한된 노동인구와 계약상으로 거래할 수밖에 없었다. 생산의 정보화와 비물질적 생산의 중요성이 증가하면서, 자본은 영토와 협상의 구속에서 벗어나는 경향이 있다. 확실한 안정성과 계약의 힘을 누려 왔던 전체 노동인구는 점점 더 불확실한 고용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일단 노동의 협상 지위가 약화되면, 네트워크 생산은 자유 계약 노동, 가정 노동, 파트타임 노동, 그리고 삯일과 같은 다양하고 낡은 비보장 노동 형태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 (389, 390)
경제의 탈근대화 혹은 정보화를 특징짓는 생산과정과 부지들의 탈중심화와 전지구적 분산은 상응하는 생산 통제의 집중화를 촉진하였다. 원심력적인[지역 분산적인] 생산 움직임은 구심력적인[중앙 집중적인] 명령 경향과 균형을 이룬다. 생산 체계들에 내재적인 컴퓨터 네트워크와 소통 기술은 멀리 떨어진 중심 장소에서 노동자들을 더욱 광범위하게 감시라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노동 활동에 대한 통제는 잠재적으로 개별화될 수 있고 네트워크 생산의 가상적 원형 감옥 속에서 계속될 수 있다. 제조업의 지리적 분산은 점점 더 집중화된 경영과 계획에 대한 요구를, 그리고 또한 전문화된 생산자 서비스들 특히 금융 서비스의 새로운 집중화에 대한 요구를 창조해 왔다. (뉴욕, 런던 그리고 도쿄와 같은) 몇몇 핵심 도시들의 금융 서비스, 무역과 관련된 서비스가 전지구적 생산 네트워크를 경영하고 지배한다. 인구의 대량 이동에 따라, 산업 도시들의 쇠퇴와 공동화는 전지구적 도시들, 즉 진정한 통제 도시들의 부상과 일치해 왔다. (390)
정보 고속도로
소통 네트워크의 구조와 관리는 정보 경제엣 생산을 위한 본질적인 조건이다. 새로운 정보 인프라의 참신함은 그것이 새로운 생산 과정 안에 박혀 있고 새로운 생산 과정에 완전히 내재적이라는 사실이다. 현대적 생산의 정점에서, 정보와 소통은 바로 생산된 상품이며, 네트워크 자체가 생산과 유통 모두의 장소이다. (390~391)
정치적 용어로, 전지구적 정보 인프라는 네트워크 체계의 서로 다른 모델에 따라 작동하는 민주주의적democratic 메커니즘과 소수 독점적oligopolistic 메커니즘의 결합체로서 특징지을 수 있다. 인터넷이 이러한 민주주의적 네트워크 구조의 가장 좋은 예이다. 무한한 수의 상호 접속된 노드들nodes[연결점들]은 어떠한 중심점 없이 소통한다. 더욱 급진적인 방식으로 네트워크의 소통 지점들을 풀어헤치는 휴대폰과 휴대용 컴퓨터의 발전은 탈영토화 과정을 강화하였다. 이 민주주의적 모델은 들뢰즈와 가타리가 리좀rhizome, 즉 위계적이지 않고 중심이 없는 네트워크 구조라 부르는 것이다. (392)
소수 독점적 네트워크 모델은 방송국들에 특징적인 것이다. 중심화된 생산, 대량 살포 그리고 일방향 소통이 방송 네트워크를 규정한다. 전체 문화 산업 - 신문과 책의 공급에서 영화와 비디오 카세트에 이르기까지 - 은 전통적으로 이 모델에 따라 작동해 왔다. 비교적 소수의 회사들(혹은 특정 지역들에서는 루퍼트 머독Rupert Murdoch, 실비오 베르루스코니Silvio Berlusconi 혹은 테드 터너Ted Turner와 같은 개인 기업가)이 이런 네트워크 모두를 효과적으로 지배할 수 있다. 이 소수 독점적 모델은 리좀이 아니라 가지 전체를 중심 뿌리에 종속시키는 수목tree 구조이다. (393)
새로운 정보 인프라의 네트워크는 이런 두 모델의 잡종이다. 오늘날 우리는 새로운 정보 인프라를 지배하는 준독점체들을 설립하고 공고화하려는 초국적 기업들 사이의 경쟁을 목격하고 있다. 물론 망web[웹]의 상호 작용적이고 탈중심화된 구조 때문에 통제에 저항할 이런 견고한 망이 지닌 민주주의적 부분들이나 측면들은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할리우드Hollywood,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아이비엠IBM, 에이티앤티AT&T 등과 같은 정보 및 소통 권력 구조의 주요 부분들을 (사실상 혹은 법률상) 통일시킴으로써 엄청난 통제의 집중화가 진행 중에 있다. 새로운 민주주의와 새로운 사회적 평등을 약속한 새로운 소통 기술들은 사실상 지배적인 국가들 안에서 그리고 특히 지배적인 국가들 밖에서 불평등과 배제의 새로운 선들을 창조해 왔다. (393, 394)
공통적인 것들
산업 사회가 공고화되는 동안, 공공 공간의 구축과 파괴는 더욱더 강하게 나선형적으로 전개됐다. 공공 재산은 곧 사적 소유자들에게 재전유되었다. 자본주의는 공공재의 사적 재전유, 즉 공통적인 것의 몰수에 대한 지속적인 순환 주기를 작동시킨다. (394)
복지국가의 위기는 우선 공적 자금을 통해 구축된 공적 부조와 분배의 구조들이 사적 이익을 위해 사유화되고 몰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에너지 서비스와 소통 서비스의 사유화를 향한 최근의 신자유주의적 경향은 나선형적 진행 과정의 또 다른 선회이다. 시장 체제와 신자유주의는 제2, 제3의 그리고 n번째의 자연에 대한 이런 사적인 전유에 기생하여 생존한다. 일단 공적인 것the public이라는 개념의 기초로 간주되는 공통적인 것들the commons은 사적인 사용을 위해 몰수되고 아무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다. 즉 사실상 사적 소유의 초월적인 권력이 공적인 것과 공통적인 것 사이의 내재적 관계를 대체한다. (395)
우리는 탈근대성, 정보 혁명, 그리고 뒤이은 생산양식 변형의 한가운데에서 오늘날 작동시키는 파괴와 수탈에 대해 슬퍼하려는 것은 아니다. 상품을 사용하고 상품의 점유에서 유래하는 모든 부를 처분할 수 있는 배타적 권리로 이해되는 사적 소유 개념 자체는 이 새로운 상황에서 점점 더 무의미해진다. 이러한 틀에서 배타적으로 소유하고 사용할 수 있는 상품들은 더욱 적어진다. 즉, 공동체가 바로 생산하는 것이며, 생산하는 동안 그 공동체는 재생산되고 재규정된다. 그러므로 고전적이고 근대적인 사적 소유 개념의 근거는 탈근대적 생산 양식 속에서 어느 정도 해체된다. 사적 소유는, 자신의 법적 역능에도 불구하고 더욱 더 추상적이고 초월적인 개념이 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더욱더 현실에서 분리될 수밖에 없다. (395, 396)
“공통적인 것”에 대한 새로운 통념은 이런 지형 위에서 출현해야 할 것이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철학이란 무엇인가?What is a philosophy?』에서, 현대에 그리고 소통적이고 상호 작용적인 생산의 상황에서, 개념의 구축은 인식론적 작동일 뿐만 아니라 마찬가지로 존재론적 기획이라고 주장한다. 개념들을 구축하는 것과 그들이 “공통 이름common names”이라 부르는 것은 실제로 대중의 지성과 행동을 결합하여 그것들이 함께 작동하도록 만드는 활동이다. 개념을 구축하는 것은 공동체라는 기획을 현실에 실존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공통적인 방식으로 일[작업]하는 것을 제외하고 개념을 구축할 다른 방법은 전혀 없다. 공통적인 것은 대중의 구현, 생산 그리고 해방이다. 루소는 자연의 일부를 그 혹은 그녀 자신의 배타적 소유물이기를 원하여 사적 소유의 초월적 형태로 변형시킨 첫 번째 사람은 악을 발명한 사람이라고 말하였다. 반대로 선은 공통적인 것이다. (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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