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os Poulantzas, On Social Classes, in John Scott(eds), Class: Critical Concepts, Routledge, 1996
김성윤/ 2006년 9월 19일/
- 풀란차스의 계급론은 우선 계급을 위시로 한 경제결정론에 대해 비판했다는 점을 이해의 시작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알튀세르는 ‘구조적 총체성’의 맥락을 지적하고 있는데, 풀란차스는 이를 ‘권력관계의 작동’으로 이어받는다. 이 둘 다 계급의 구조적 결정을 지적하면서 그 동력으로 이데올로기를 삼은 것이다. 이데올로기론의 도입으로 경제결정론은 상대적 자율성에 의해 극복된다. 이러한 일련의 계열들은 종종 ‘구조주의적 계급론’이라 불리기도 한다.
- 이러한 주장을 펼치게 된 계기는 과연 무엇일까. 풀란차스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20세기 들어서 새로운 형태의 노동자가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문제는 이들을 어떻게 이해하며, 이들로 인해 새롭게 형성된 조건 하에서 어떻게 정치활동을 전개하겠는가로 봉착한다. 예를 들어 화이트칼라 관리직이 등장했을 때, 그는 이들을 ‘노동자가 아니라, 새로운 쁘띠부르주아’로 분류했다. 왜 그랬을까. 그에 의하면, 이들은 경제적으로 노동계급이지만, 정치적으로 그리고 이데올로기적으로는 노동계급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분류가 까다로운 새로운 경향이 등장하면서 그에 따라 새로운 이해방식이 필요하게 되었다. 즉, 어떻게 하면 전통적인 노동의 지위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이 새로운 흐름을 끌어안을 수 있을 것인가.
- 풀란차스는 이를 ‘계급들의 연합세력’으로 분리해낸다. 그는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는 계급을 아래 그림과 같이 분류하면서, 3번에 속하는 노동자들이 진정한 노동계급이며 나머지 부류를 새로운 형태의 쁘띠부르주아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들 1, 2, 4번의 사람들을 경제적으로는 서로 다르지만, 이데올로기적으로는 동일한 계급이라고 단언했다. 이들은 성취지향적이며 자본주의 체제에서 성공하려는 사람들로서, 구-쁘띠부르주아와 같은 성격이라는 것이다. 또한 관리․감독․전문 직종에 속하는 이들이 자본주의 구조 내에서 재생산 기능을 담당한다는 점 또한 풀란차스에게는 곱지 않은 시선을 샀다. 어쨌든 풀란차스에게 있어서 노동계급의 진정한 주체는 생산하는 육체노동자가 된다.
생산적 | 비생산적 | |
1 | 2 | 정신노동 |
3 | 4 | 육체노동 |
-> 그러나 생산노동과 비생산노동, 그리고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구분은 명확한 것인가. 그 중간 지대는 없는가. 또 사회변화에 따라 이러한 구분은 불명확하지 않은가.
-> 우리나라 민노당의 주지지층은 풀란차스식의 PBG이다.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 이데올로기에 대한 강조가 자칫 물질적 관계에 대한 경시를 낳지는 않는가.
- 풀란차스는 계급론뿐만 아니라 국가론에 있어서도 신기원을 이룩했다. 계급과 사회 범주에 있어서 그는 어디까지나 계급 역학을 추적하였고, 그 결과 계급 단위의 집단적이고 정치적인 실천에 주목했다. 그를 주목하게 만든 것은 여기서 비롯되는 ‘권력 블록’이라는 개념이다. 그는 지배를 단일 계급의 순수한 지배로 보지 않는다. 그는 노동계급의 분화와 더불어 자본가계급의 분화 역시 목도했다. 풀란차스는 노동귀족의 대두, 쁘띠부르주아의 성격 분화와 더불어, 애초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해석에 따라 자본가계급에서도 민족자본과 매판자본이 구별되는 지층 또한 지적했다. 계급 실천과 사회적 실천의 국면에 따라 노동계급이나 자본가계급 모두 사회적 분절과 다양한 형태의 연합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 따라서 권력 블록은 일종의 지배연합을 의미하는 것이며, 여기서 헤게모니적인 이데올로기와 지배의 문제, 즉 국가론이 대두된다. 풀란차스는 국가가 총자본의 이해를 대변한다고 말한다. 각 계급들은 국가를 차지하려 하고, 반면에 기성의 국가는 총자본의 이해를 강변하는 것이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 중 하나이다. 여기서 그는 지배계급은 지배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자본가계급의 관심은 지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확대재생산에 있다. 현실적으로도 정치와 경제는 분리된 측면이 존재한다. 가령 자본주의 사회에서 좌파정권이 들어선다 하더라도, 전체적인 구조 차원에서의 그 영향력은 지속된다.
-> 풀란차스의 이론적 편력은 앞서 말한 대로, 중간계급의 대두와 이데올로기적 문제 설정을 기초로 하는 계급론과 국가론으로 살펴볼 수 있다. 풀란차스는 계급분석을 통해 현실정치를 볼 수 있는 일련의 레퍼토리(권력 블록, 헤게모니적 지배, 이데올로기)를 제공해준다. 계급구분에 대한 모호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현실정치 분석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특히 그동안 교조적 맑스주의가 가졌던 정치-경제에 대한 일치적 이해를 해소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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