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역습? ― 보수시민언론 인터넷 ‘독립신문’의 부안 관련 보도 담론의 분석


김성윤



1. 들어가며 ― 보수단체의 시민사회 부상


지난 국회의원 선거에서 시민운동단체들이 모여서 일대의 파란을 일으켰던 ‘낙선운동’은 한국사회에서 시민사회와 시민운동에 가질 수 있는 전망을 더욱 밝게 하였다. 중앙집중화된 권력을 일거에 해소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시민운동이 하나의 절대적인 희망으로 부상했던 것이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1987년 민주화 물결 이래에 노동조합을 비롯한 많은 이익단체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공공영역을 형성하면서 다양성의 물결을 이루었다. 그런 와중에 대의 민주주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선거과정에 개입해 시민사회의 영향력과 그 위력을 십분 발휘했으니, 이제 한국은 본격적인 시민사회로 진입하는 것만 같다.

최근 들어 한국의 시민사회는 뚜렷한 변화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무엇보다 보수시민단체의 행보이다. 보수시민단체들이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적으로 2002년 말 매주 토요일 서울시청 앞에서의 촛불시위가 전국을 휩쓸 무렵인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몇 주째 시청 앞이 촛불로 점철되고 반미감정이 고조되자, 결국 보수단체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되었다. 그 첫 신호탄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서 개신교도를 동원하면서부터였다. 신도들은 촛불시위가 열리는 바로 그 날(밤이 아니라) 그 장소에 모였다. 즉 같은 장소를 낮에는 보수세력이, 밤에는 개혁세력이 점거했던 셈이다. 어쨌든 이들 신도들은 각자의 종교적 신념을 레드컴플렉스에 기반한 국가주의 담론과 결합시키면서 2000년대 들어 보수시민단체들의 행보에 그 첫 테이프를 끊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흩어져 있던 보수시민단체들의 발언이 증가하기 시작한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계속적으로 확산되어 가는 반미정서에 대다수 국민들이 공감을 갖고 주한미군마저 적잖은 당황함을 느끼자, 보수시민단체들로서도 반미=친북이라는 대항논리로써 자기 존립근거를 수호해야만 했던 것이다. 하버마스의 도식대로 한국사회를 체계와 생활세계를 나눌 수 있다면 보수시민단체들이 생활세계에서의 투쟁에까지 종사할 수밖에 없는 판국에 처한 것이다. 어쨌든 이후 보수시민단체들은 한국사회 주요 쟁점마다 깊숙이 개입하면서 가장 중요한 뉴스메이커의 하나로 급부상하게 된다. 어느 지방 초등학교 교장의 자살 사건, 이라크 파병문제와 전교조의 반전교육 등에서 나타났던 것처럼 보수진영의 행보가 시민적 움직임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양상마저 엿보였다.

본 연구는 보수시민단체들의 부상과 그 움직임을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 변화를 중심으로 대략적으로 살펴본 후, 그들의 주장 이면에 깔린 의미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함으로써(특히 보수시민언론 인터넷 ‘독립신문’을 중심으로) 시민사회에서의 보수 세력의 부상이 함의하는 바를 고찰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점차적으로 다층화되는 구도 속에서 한국 시민사회의 판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가늠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이 글은 보수시민단체들의 시민행동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었던 인터넷 시민언론 ‘독립신문’을 중심으로 진행될 것이다. 이 경우 독립신문의 자료를 분석하는 문헌연구를 중심으로 하여, 이중적 의미의 사례연구가 개입될 것이다. 하나는 보수시민단체들의 행보를 인터넷 ‘독립신문’의 담론유형의 사례를 중심으로 서술하는 것이고, 두 번째의 의미는 독립신문의 담론 중에서도 최근 뜨거운 감자였던 부안문제1)를 다룬 기사/칼럼 등을 중심으로 담론유형을 분석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우선 독립신문과 부안문제에 대하여 배경적인 설명을 수행하고, 부안문제에 관한 독립신문의 담론유형을 어떠한 이론적 틀로써 분석할지 밝힐 것이다.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그리고 정세의 변화에 따라서 담론의 현상과 논리적 구조가 어떻게 전이되고 있는지 기술한 후, 그 인과관계를 총체적인 층위와 부안지역의 국지적인 층위에서 밝혀낼 것이다.



2. 부안을 말하는 인터넷 보수언론 ‘독립신문’


(1) “좌익 인터넷 매체들에 맞서”

독립신문은 지난 200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나날이 거세어져 가던 “좌익들의 선전?선동”에 맞서기 위하여 5백만원을 초기자금으로 2002년 7월 8일에 창간되었다. 그 이래로 “작지만 강한 신문”을 좌우명으로 애국주의와 반(反)김정일-자유시장경제 노선을 굳게 지켜 온 인터넷 신문이다. 독립신문의 대표는 신혜식씨이다. 신 대표는 올 3월 1일에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반핵반김 3?1절 국민대회’에서 청년대표로 연설하면서 시민사회에 널리 부각된 인물 중의 하나이다. 현재 대표와 편집장 1명, 취재기자 4명 등 5명의 편집진이 독립신문을 만들어 가고 있다. 독립신문은 2003년 10월 24일 현재 랭키닷컴 집계 인터넷 뉴스분야 67개 사이트 중 9위, 전체 5만여 개 사이트 중 565위를 기록하고 있다. 자사의 기록기에 의하면 일일 방문자수는 10~12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2)

독립신문의 창립배경을 볼 때 가장 특이할 만한 것은 역시 시민언론의 원조격인 ‘오마이뉴스’에 대항하고자 하는 성격이 짙다는 점이다.


생각해 보면 지난 해 말부터 이어진 조국파괴세력의 폭주는 예정된 결과였는지도 모릅니다. 애국세력이 방심과 안일에 빠지거나 기회주의적 보신에 여념이 없는 동안, 좌익들은 제한된 인적?물적 자원을 총 동원하고, 실패한 교육이 낳은 젊은 세대의 좌절과 편견, 뒤틀린 취향, 목표 잃은 증오를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증폭?조작함으로써 마침내 좌경세력의 집권이라는 자신들의 음험한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 성공하였으며, 그러한 기만적인 정치 공작의 배후에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신세대의 사이버 문화가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의 안위를 결정지을 중차대한 사안들을 둘러싸고 뻔뻔스러운 궤변과 욕설들이 인터넷을 통해 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습니다.

사이버 공간에서 전열을 재정비하지 못한 채 지금처럼 패주만을 거듭하다가는 조만간 현실 세계에서도 애국세력이 설자리는 남지 않을 것입니다. 애국세력의 광범위한 결집과 총 동원을 가능케 할 인터넷 매체의 강화가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3)


창립선언문에서 인용한 위의 구절만 보더라도 독립신문이 얼마나 오마이뉴스나 진보적 시민세력에 대해 대항적이고 전투적인 입장을 가졌는지를 알 수 있다. 인터넷 ‘독립신문’은 이러한 보수시민세력의 시대적 요청과 위기감에 부응하여 탄생했다. “거대세력화한 좌익 인터넷 매체들”에 맞서 그 선전선동의 허구성을 밝힌다는 의도 아래, “애국세력”이라고 지칭되는 보수주의의 대의를 결집하고자 한 것이다.

만약 이것이 진보적 시민언론과 보수적 시민언론의 대결양상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그 1차전은 진보적 시민언론이 승리한 것으로 보인다. ‘독립신문’이 숭배하고 있는 ‘공정한 시장의 논리’를 통해서 봤을 때, 이미 독립신문은 한차례 위기를 겪었다. 2003년 10월 3일 보수-진보진영간의 온라인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독립신문이 재정적 문제로 인해 사이트 운영을 일시 중단한 것이다. 당장에 장비구입와 경비충당을 위해 5000여만원이 필요한 상황에 직원 월급 등 월 유지비용 1200만원을 마련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4)

물론 12월 20일 현재부터 정상운영 중에 있지만5), 독립신문은 이번 일을 계기로 너무나도 큰 문제점을 노출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애초에 표방했던 시민언론으로서의 성격이 크게 훼손되었다는 점이다. 독립신문의 라이벌이라 할 만한 오마이뉴스가 ‘뉴스게릴라’를 표방하듯 시민회원들의 뉴스포스팅(news-posting)체계로 운영되는 반면, 독립신문의 경우는 월급제 기자들을 둔 전형적인 웹진(webzine)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독립신문의 경우는 시민언론이라는 ‘자칭’이 무색했던 것이다. 게다가 후원금조차 제대로 마련이 안되는 열악한 사정 역시 약 2개월 간의 서비스 중지라는 만만치 않은 문제점을 야기했다.


(2) 독립신문의 알레고리, 부안문제 보도

본 연구가 부안문제를 다루려는 데에는 특정한 배경이 있다. 그것은 ‘독립신문’이 하나의 사안에 대해서 시간과 정세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의 담론유형을 유포하고 있다는 점에서이다. 그런 면에서 부안은 하나의 알레고리가 될 만하다. “애국세력”의 전통적인 논리에 따르면, 굳이 전체주의적 경향을 따지지 않더라도,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불가피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부안문제는 독립신문이 그러한 일반론으로부터 분열되어 있다는 점을 드러내주는 훌륭한 지표가 된다.

국토의 전기에너지를 공급해주는 데에 필요한 핵폐기장 시설이 부안군민들에게는 위화감이 될지는 몰라도,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그 정도의 희생은 감수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있다. 독립신문은 분명 그러한 의견에서 부안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그러나 묘하게도 시간이 흐르고 정세가 달라지자, 독립신문의 담론은 부안문제를 부안군민의 입장에서 다루기 시작한다. 담론의 전화와 발화자의 변신이 순식간에 이뤄지는데, 본 연구가 주안점을 두는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 과연 왜 이러한 변화가 일어났는가 하는 것이다.


<표 2)> 각 일시별로 보도된 부안문제 관련 독립신문의 보도기사들

게시일

기사제목

2003/07/26

북핵무기는 되고 핵폐기물은 안된다 - 북핵 침묵한 단체, 핵폐기장 결사반대 이유 뭔가

2003/07/28

떼쓰면 돈으로 해결 형평성, 나쁜 선례 우려 - 핵폐기물장 ‘현금보상’ 검토, 국책사업마다 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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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 칼럼] 핵 폐기물 처리장이 정략에 이용되어서야

2003/07/30

문규현 신부 편지 파문, 핵폐기물 수출하라고 - “자극적 용어로 지역감정 조장” “김정일에겐 무슨 말을 할거요”

2003/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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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총련 난동, 부안군수 폭행...내각 총사퇴하라 - 유준상 한나라당 광진을 지구당 위원장 정부에 직격탄

2003/09/12

[조갑제 칼럼] 전근대와 근대의 치열한 싸움

2003/09/18

차라리 청와대 옆에 핵폐기장이면 몰라도... - “위도에 대통령 별장”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는 꼴” 비판 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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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28

“부안주민은 부시 미 대통령이 부럽다” - 부시 이라크 방문…네티즌들 노와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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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만 잘하면 정부도 움직인다 - 정부-군민 5개월 사투…결국 남은 건 ‘불신뿐’

2003/12/18

[기자수첩] 정부가 키운 부안사태

(3) 중도화된 국가와 다원복합화 되는 시민사회

보수시민언론을 표방하는 ‘독립신문’의 등장과 그 담론의 유형은 다음 그림과 같은 변화요소들의 배치를 통해 이론적 분석이 가능하다. 크게는 국가의 성격이 변하면서 이와 조응하는 시민사회 역시 다음 그림처럼 변화 양상을 띠게 되었다는 점이 지적될 수 있다.


국가성격의 변화

[

보수시민세력의 위기

]

시민사회의 변화

보수시민언론의 창간

↓↓↓

부안문제

↑↑↑

진보시민단체의 개입

우선 국가의 성격이 중도화되었다는 점이 지적될 수 있다. ‘독립신문’의 지적에 따르면 이는 “마침내 좌경세력의 집권이라는 자신들의 음험한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 성공”6)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김대중 정권이나 노무현 정권이 좌경세력이라 할 만한 이론적 근거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조희연이 지적하는 것처럼 국가가 정상화되어가는 과정에서 민주노동당과 같은 좌파정당이 등장하고, 정권도 합리적 성향을 띤 경향으로 수평적으로 교체된 과정이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중대신문, 2003).

이 과정 속에서 이전에 국가에 의해 자행되던 원시적 폭력이 감소하고(조희연, 2000),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부분 역시 복합체계로서의 특징을 비교적 높은 수준에서 갖게 됨에 따라, 한국의 사회운동도 다원복합적 성격을 강화하게 된다(박형준, 2001). 저항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던 시민사회가 민주주의의 절차화를 거치면서 타협과 교섭의 성격을 띠다가, 점차 국가의 성격이 중도화되고 민주주의도 정상화되자 시민사회 역시 그에 맞춰 그 내부적 성격이 훨씬 다원화된다는 점은 특히 주의할 만하다. 국가와 시민사회의 이러한 조응에 따라 ‘다원복합화’된 시민사회는 보수시민단체들에 대해 조명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2002년과 2003년에 들어서 잦아진 보수적 시민단체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 지점이 바로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 변화에 따라 분석되어야 할 사안이 된다.



3. 오락가락 ‘독립신문’


위 <표 1>의 총 12편의 글을 토대로 볼 때, 단순히 제목만 보더라도 핵폐기장과 특히 부안지역의 정서에 대한 독립신문의 입장이 오락가락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여기에는 부안문제에 대한 입장뿐만 아니라, 정부에 대한 입장과 진보적 시민세력에 대한 입장이 섞여 있는데, 이러한 입장들의 교차점을 통해서 부안문제에 관련한 독립신문의 담론유형을 보다 입체적으로 고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 흔들리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표 2> 여러 입장에 따른 담론 유형

순서

부안문제에 대한 입장

진보적 시민단체에 대한 입장

정부에 대한 입장

(핵폐기장 건설 간접적인 긍정)

‘친북반미’ 성향 단체 합류

(정부비판은 여과 없이 보도)

입장 없음

입장 없음

현금보상 추진 논란 일고 있다

현재 상황 이해 불가능

입장 없음

당리당략이나 정략

“무조건 항변 좋지 않소”

비난이 일고 있다

(정부비판은 여과 없이 보도)

(군민들 입장 전달)

(참여단체 열거)

구호만 참여정부

있을 수 없는 폭력사태

입장 없음

갈등조정 능력의 부재

억지와 미신에 과학과 합리가 폭행

전근대와 김정일의 악성교배/좌익선동

표 의식하며 억지와 미신에 끌려다님

안전성 보장 없다

(우호적 멘트 인용)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꼴

입장 없음

입장 없음

노대통령 비롯한 수뇌부들의 강경대응

입장 없음

입장 없음

“극동의 어느 나라 ‘졸통령’”

대형 폭력시위로 많은 희생 발생

입장 없음

‘님비’보다는 졸속 정책

입장 없음

입장 없음

책임이 정부에 있다


<표 2>7)는 다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수 있겠는데, 핵폐기장에 관련한 부안지역에 대한 입장 그리고 진보적 시민단체에 대한 입장이 긍정-중립-부정의 세 가지 태도를 모두 경유하고 있음에 반하여, 정부에 대한 입장만큼은 유독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태도를 일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적인 예로 부안지역에 대한 입장에서 ‘억지와 미신에 과학과 합리가 폭행을 당하고 있다(조갑제, ⑦)’고 밝히는가 하면, 몇일 지나지 않아서는 지역정서를 완화하기 위해 위도에 별장을 짓겠다는 정부 의견에 그런다고 해서 안전성이 보장되진 않는다는 의견들(⑧)을 끌어들이고 있다. 진보적인 시민단체에 관해서도 친북반미 성향의 인사들과 단체들(①)이라며 선동에 나서다가도 정작 상황에 따라서는 이들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아예 동조를 하기도 한다. 반면에 정부에 대해서는 시종일관 직접적으로 비난하거나, 네티즌들의 비판을 직접인용하거나(여기에 대한 공신력도 문제가 된다. 여기에 대해서는 (1)의 3) 부분을 참조할 것), 행사장에서의 정부비판구호를 그대로 간접인용하는 태도를 유지한다.

위의 <표 2>를 조금 더 단순화하여 우호적인 입장을 P로, 부정적인 입장을 N으로 하여 단순화하면 다음과 같다. 이를 통해 한 가지 사안에 대해 입장이 어떻게 다양한 양태로 변형되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짚어낼 수 있을 것이다.


<표 3> 여러 입장에 따른 담론 유형의 단순화

순서

부안문제에 대한 입장

진보적 시민단체에 대한 입장

정부에 대한 입장

N

N

N

입장 없음

입장 없음

N

N

입장 없음

N

N

N

N

P

P

N

N

입장 없음

N

N

N

N

P

P

N

입장 없음

입장 없음

N

입장 없음

입장 없음

N

P

입장 없음

N

입장 없음

입장 없음

N

(2) 2003년 9월, 무슨 일이 있었나


왜 이러한 모순과 역설이 발생하는 걸까를 밝히기에 앞서 이러한 변화를 규정지을 만한 조건을 더 찾아볼 필요가 있다. 위의 <표 3>을 보면 부안문제에 대한 독립신문의 입장이 시간이 흐를수록 긍정적으로 변하거나 아예 입장을 숨기려는 경향이 짙어짐을 알 수 있다. 이는 진보적 시민단체에 대한 입장도 마찬가지이다. 그 시기를 보면 대략 9월 12일에서 9월 18일 사이로 추정할 수가 있다.8) 이를 시기적으로 보면 부안에서 등교거부투쟁이 한창 시작되던 무렵으로, 국내 여론이 점차적으로 부안문제를 단순히 보상금이 오고가는 문제로는 해결되지 않을 님비 이상의 사안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즈음이었다.

또한 9월 15일에 1989년 당시 영광 핵발전소 11?12기 건설 반대 성명에 노무현 대통령이 서명에 참가했던 사진 자료가 공개되었고, 사흘 뒤인 18일에는 1991년에 한국원자력연구소의 보고서에 인문ㆍ사회 및 자연환경부적격 도서(嶋嶼)이자 방사성폐기물 부적격 부지로 위도가 포함되었던 사실도 알려진 바 있었다.9) 게다가 9월 17일 윤진식 산업자원부 장관이 위도에 대통령 별장을 지을 용의도 있다는 다소 문제적인 발언을 하면서부터 부안문제에 관해서는 정부에 대한 국민적 불신감이 고조에 달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부안문제에 대한 지역주민의 정서가 여론적 공감을 얻고 반면에 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떨어지기 시작하자, 독립신문 역시 대정부 공세를 강화한 측면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표 3>를 중심으로 봤을 때도 독립신문이 부안문제와 관련한 보도를 작성하더라도 여론형성의 초점을 부안의 핵폐기장 건설 문제로부터는 벗어나서, 정부의 졸속행정과 갈등조정능력 등을 총체적으로 비판하는 보도태도를 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3) 짜깁기 게임


또 한가지의 문제는 논리상의 근거가 매우 빈약하다는 것이다. 논리적인 전개에 흠을 잡기 어려운 글은 단지 두세가지 정도 밖에 없을 정도인데, 이는 단순히 글쓴이의 능력부족부터 시작하여 독립신문이 가지는 여론적 기반의 부족에까지 폭넓게 걸쳐 있는 문제로 파악된다.

우선은 기사의 공신력을 높이기 위해서 동원되는 네티즌들이나 신원을 알 수 없는 시민들의 발언이다. 오늘날 네티즌들이 사회적 영향세력을 형성한 것은 분명하지만, 과잉감정적인 의사표현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이것이 그만큼 오프라인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불특정 소수의 의견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그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 또한 명백한 사실이다. 게다가 네티즌들을 이용하더라도 구체적으로 어느 게시판에서 인용을 했는지조차 밝히고 있지 않음으로써 취약한 자기신빙성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시민들의 발언을 인용한 부분 역시 그들의 정체감을 확인할 수 없다는 점에서 마찬가지의 문제적 소지를 안고 있다. 위의 12개의 글 중 칼럼을 제외한 8개의 글 중에서10) 무려 5개가 이러한 경우에 속했다.

⑤, ⑧, ⑨번이 이 부분에서는 특별히 문제가 될 만한 인용을 취하지는 않았는데, 그나마도 <표 3>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부안문제나 진보적 시민단체에 관해서는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던 글들이었다는 데서 문제를 찾을 수 있다. ⑨번 글의 경우에는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지만 극단적인 스트레이트형 보도기사였다는 점에서 여론을 인용할 필요가 아예 없는 성격의 글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도 “한편 경찰의 이런 강경한 법적용이 노 대통령을 비롯한 수뇌부들의 강경대응 원칙에 따른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는 근거와 발화자를 알 수 없는 말로 자기논리를 고수하고 있다. 달리 말해서 이는 독립신문이 부안문제와 진보단체에 관해서 우호적이면서도 정부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기에는 동원가능한 여론적 기반이 취약함을 반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각 글들을 이러한 주제에 맞춰서 다시금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표 4> 각 담론의 논거 문제

순서

부안-진보-정부에 대한 입장

기사성격

익명시민

네티즌

특정시민

N - N - N

보도

? - ? - N

보도

N - ? - N

칼럼

N - N - N

보도

P - P - N

보도

N - ? - N

칼럼

N - N - N

칼럼

P - P - N

보도

? - ? - N

보도

? - ? - N

보도

P - ? - N

보도

? - ? - N

칼럼


4. ‘독립신문’이 부안으로 간 까닭


부안문제를 보도하는 독립신문의 위와 같은 현상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입장의 균열이 생긴다는 점, 부안과 정부에 대한 여론이 명백해지자 초점을 정부에 두게 됐다는 점, 취약한 여론적 기반 때문에 근거가 미약한 인용들이 동원되고 있다는 점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러한 문제들이 앞에서 제시했던 문제들이 어떤 인과관계를 함의하고 있고,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에 대해서 서술하도록 하겠다. 이러한 분석은 사례연구로서 선택된 부안지역의 국지적인 층위는 물론이고, 크게는 국가와 시민사회를 둘러싼 총체적인 층위를 함께 파악함으로써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1) 부안 보도의 맥락


i) 정부의 대처 : 가장 먼전 정부의 미온적인 대처가 지적될 만하다. 위도에 핵폐기장을 건설하겠다는 입장에서부터 시작하여, 부지를 독단적으로 선정해놓고서는 나중에서야 보상금을 올려주겠다는 안이한 협상태도, 안정성을 보장을 위해 대통령 별장을 짓겠다는 촌극적인 요소까지 정부의 중심 없는 지배과정(governance process)은 부안주민들에게만 상처를 준 것이 아니라, 보수시민언론의 여론형성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주민투표 문제에 있어서도 비슷한 지적이 가능한데, 초기에 핵폐기장으로 부지가 선정되고서는 김두관 당시 행정자치부 장관을 중심으로 향후 부지 선정에서는 주민투표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만들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그런 식으로 부안지역에서의 주민투표를 무화하려고 하다가, 나중에는 주민투표를 2004년 총선 이후에 실시하겠다는 입장으로, 그리고 결국에는 아예 부지 문제까지 백지화하고 처음부터 모든 논의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행보를 보였다.

이러한 정부정책의 실수들은 ‘독립신문’의 부안관련 담론이 논리적으로는 도저히 성립이 불가능한 역설로 귀착하게 만드는 빌미를 제공했다. 그런 와중에서 독립신문은 (비록 논리적으로는 불충분하지만) 12편의 글들을 통해 초지일관 반정부적인 입장을 견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ii) 진보적 시민단체들의 개입 : 부안문제에 대한 진보적 시민단체들의 개입은 초기 부안관련 담론 형성에 있어 독립신문이 비판적 입장을 형성하는 요인이 되었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부안대책위의 핵관련 사실 증거가 확보되고(과학적 증거가 아니라 사회학적 증거였다) 대항담론이 국내여론에서 통용되자, 독립신문 역시 부안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시민사회에서의 진보주의자 중심의 이념적 헤게모니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부분은 <표 3>에서 확인했듯이 9월을 전후로 하여 부안문제나 진보단체에 대해서 독립신문이 왜 갑자기 태도를 돌변할 수밖에 없었는지 잘 설명해주는 부분이다.

iii) 보수진영의 기회주의적 판단 : 부안관련 보도태도가 바뀌게 된 외부적 조건이 있었다면, 그에 걸맞게 내부적인 조건 또한 무시할 수가 없다. 앞서 <표 4>를 통해 지적한 것처럼 독립신문 기자들의 글쓰는 능력 내지는 소양의 문제가 거론될 수 있다. 근거 없는 혹은 근거가 미약한 발언들을 인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부에 대한 비판이라면 전혀 다른 맥락의 발언이라도 짜깁기해 쓰는 보도행태는 독립신문의 언론으로서의 윤리성 문제까지도 거론할 수 있는 문제이다. 어쨌든 이러한 비윤리적인 보도태도로 인해 부안문제에 관련한 태도 역시 전환될 수 있었다는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정세의 흐름 상 부안주민에 대한 비판과 정부에 대한 비판을 동시에 진행할 수 없어서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2) ‘좌경적(?)’ 노무현 정권의 등장


이 문제를 보다 큰 층위에서 보자면, 우선 앞서 언급했던 대로 국가와 시민사회가 변화하게 된 양상을 지적할 수 있다. 그 계기는 당연히 독재의 종식과 수평적 정권교체의 성립이다. 군부독재가 끝나면서 시민사회가 봇물처럼 팽창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진보적 사회학자들이 전성기를 맞이하고(김성국, 1998), 시민단체들도 설립단체수, 회원규모, 재정규모 등 모든 측면에서 양적 성장을 가속화했다(조희연, 2000). 그 변화의 양상은 대략적으로 반공규율사회에서 민주주의사회로 한층 이동한 것으로 볼 수 있다(조희연, 2001). 게다가 곧바로 이어진 대선에서의 수평적 정권교체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시민사회를 성숙하게 하는 하나의 계기로 작용했다.

여기서 관건이 되는 것은 그런 와중에 시민사회에서 침잠해 있던 보수시민세력이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 이전만 해도 한국사회에서 우익적 여론을 주도해 갔던 것은 다름 아닌 정당과 언론이었다. 독재시기에 주로 관변단체 성격으로 우위를 점했던 보수적 시민세력은 독재 종식 이후에는 줄곧 그 역할을 정당과 언론에 위탁한 채 묵묵히 지내왔던 것이다. 그러나 1997년 대선을 통해 김대중 정권이 탄생하고 이윽고 2002년 대선을 앞두고는 노사모를 비롯해 개혁적 시민세력이 헤게모니를 형성/지속하자, 더 이상 발언권을 정당과 언론에 위임할 수만은 없는 입장이 된 셈이다. 게다가 현 상황은 우익들의 우려대로 ‘좌경적인’11)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극우세력의 존재기반마저 위태로운 시기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거의 유일한 대안이었던 제도정치권을 봐도 자민련은 몰락해가고 있으며 한나라당은 실정만을 거듭하고 있다. 게다가 언론 역시 안티조선을 비롯하여 개혁세력의 수구언론비판에 위태로운 상황이다.

종합해보자면, 보수시민세력의 등장으로 볼 때, 한국의 시민사회가 다층화되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떤 역사적 충분조건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점점 그 대립각이 예리해져가는 국가와 보수시민세력의 특정한 조건 속에서 산출된 것이라는 특성을 지적할 수 있다. 그런 관계망 속에서 보수시민세력이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마련된 것이다.

국가와 시민사회의 이러한 변화 양상, 즉 국가는 중도화되고 시민사회는 다층화되는 이러한 양상이 앞으로 한국사회의 모든 정책결정과정에 어떤 함수관계로 작동할지는 분명 두고 볼 일이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분석이 가능한 것은 보수시민세력의 권력지향적이고 기회주의적 경향이 당분간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5. 결론


이러한 전후관계를 종합해봤을 때, 우리 사회에서 보수시민단체들의 시민사회 진입은 두 가지 지점에서 특이점을 형성한다.

먼저, 이들이 이제 더 이상은 관변단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시민단체는 정부의 허용아래 일방적으로 정부활동을 지지?지원하는 이른바 관변단체만이 존립할 수 있었다. 1994년에 관련법규가 전면개정/폐지됨으로써 시민사회단체의 시대가 찾아왔지만, 이른바 보수관변단체들은 그 잔영을 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이 관변단체 성격을 버릴 수 있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정권의 성격에서 기인한다. 앞서 말한 대로 정권이 중도화 내지는 합리적-보수화하면서, 극우적 성격의 시민단체가 더 이상 관의 주변에 서성거릴 수 없는 임계점에 다다른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면서 보수세력 내부에서도 관변적 성격의 시민단체로서의 그 태생을 일단은 뒤로 하고 자립적인 형태의 시민단체로 탈바꿈할 필요성이 주어졌다. 이로써 보수우익세력의 시민사회에서의 권력형성이 본격화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들의 움직이는 행동양태가 다분히 소수자운동 지향적이라는 사실이다. 여태껏 한국의 주류를 형성해 왔던 이들은 시민사회에서 발언을 하는 내내 줄곧 자신들이 소수임을 강조한다.12) 이러한 아이러니는 단 한 가지 사실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그것은 이들이 현 정권으로부터 소외된 사회적 입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부안문제에 대한 독립신문의 담론유형이 바로 그러한 예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북 부안에서의 핵폐기장 반대투쟁이 절정을 이룰 무렵, 이전과는 다르게 독립신문은 전혀 뜻밖의 논평을 내놓는다. ‘차라리 청와대 옆에 핵폐기장이면 몰라도…’라는 제목의 글(⑧)을 통해 정부의 대처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라며, ‘뜬금없게도’ 환경련이나 참여연대 같이 극우색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시민단체의 말을 잔뜩 인용한 것이었다. 극우단체의 일관된 논리대로라면, 위도에는 핵폐기장을 건설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에너지 문제라는 ‘대의를 위해 소수의 희생은 불가피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역설의 논리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김대중 정권이 들어섰을 때만 하더라도 극우파들은 이 정권이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헤게모니가 젊은 층의 폭발력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흐름으로 이양되고 이윽고 노무현 정권이 들어섰으니 불안감은 극에 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배신당하고 말았지만) 한나라당에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고, 전쟁의 상흔 탓에 ‘빨갱이 논리’라는 집단 히스테리-파시즘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진중권, 2002) 시대적 정서와 우울함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선택지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차기 정권에서 역전을 노리는 것뿐이다. 그것이 반미=친북의 딱지 붙이기이건, 반핵반김의 선전구호이건, 노무현 정권 퇴진 운동이건 모든 동력을 가동해보는 것이다. 그들의 실험이 성공을 거둘지 혹은 실패로 판가름 날지는 아직 모를 일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국 시민사회의 건전성과 생명력을 생각했을 때, 이들 보수시민세력이 형성하고 있는 시민사회에서의 권력을 어떤 의미로 판단해야 할지는 주의를 요하는 일임이 분명하다.

참고문헌


◎ 국내문헌

김성국(1998), 「국가와 시민사회의 변화」, 안계춘 편, 『광복 50년 한국사회와 사회학』, 나남339~365쪽

박형준 (2001), 「새로운 사회운동과 경실련 운동」, 권태환 외, 『신사회운동의 이론적 기반』, 서울대출판부, 119~148쪽

조희연 (2000), 「한국 시민사회단체(NGO)의 역사, 현황과 전망」, 김동춘 외, 『NGO란 무엇인가』, 아르케, 127~156쪽

조희연 (2001),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의 전개」, 조희연 외, 『NGO 가이드: 시민?사회운동과 엔지오 활동』, 한겨레신문사, 282~302쪽

중대신문 (2003), 『한국의 좌파지식인을 찾아 (3)조희연 - 폭력다층화된 사회에 급진민주주의를!』, 2003년 3월 17일자

진중권 (2002), 『폭력과 상스러움 - 진중권의 엑스 리브리스』, 푸른숲


◎ 인터넷 사이트

인터넷 독립신문, http://www.independent.co.kr/

반핵부안, http://www.nonukebuan.or.kr/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kr/

Posted by 김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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