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프레시안 기자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심형래 감독의 <디워> 논란에 대해 글을 하나 부탁한 것이었다.

진중권 선생의 <100분 토론> 출연이 논란을 일으킨 직후였다.

처음에는 진중권 선생이 네티즌들의 '테러'를 당하고 있으니, 그를 옹호하는 방향의 글을 써줄 수 없나 하고 제의해왔다.

거절했었다.

구구절절 진중권 선생의 의견에 동의하기는 하지만, 그의 생각에 딱 하나 동의하지는 못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애국주의에 관한 것이었다.

황빠와 심빠가 다른 점은 애국주의를 옹호하느냐 반발하느냐 하는 점에 있었다.

<디워>라는 영화가 애국주의적인 내적요소와 마케팅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관객들은 애국주의 때문에 영화를 보는 것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중에 대해 논평을 할 때에는 대중이 가진 '희망의 원리'를 추출해야 한다는 것이 평소의 지론이었기 때문에, 대중을 이데올로기적 구성체에 오로지 부하뇌동하는 존재로 간단히 정리해버리는 비평 태도에 거부감도 있었다.

이런 생각을 얘기하고 청탁을 거절했다.

기자는나중에 연이 닿으면 원고를 부탁하겠노라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바로 이틀 뒤에 다시 연락이 왔다.

그때 얘기했던 취지로 글을 하나 써달라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거절하기 어려웠다.

약속한 것도 있었고, 내 생각이 프레시안의 논조와 다르더라도 올곧게 반영되리라 믿었던 것이다.

수락했다.

그 기자는 <디워> 논란에 대한 다른 기고문이 프레시안에 떴으니 참조해달라고 얘기했다.

그 글도 보고 변희재의 글도 보고, 어쨌든 글을 한편 완성해서 프레시안에 보냈다.

당일 오후에 다른 기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무래도 좀 더 데스크 쪽에 가까운 기자였던 것 같다.

그는 내 글이 '대중이 애국주의가 아니라 영구의 도전에 열광한 것'이 주요 논지인지를 확인하고자 했다.

그렇게 한 마디로 정리되는 것이 못마땅하기는 했지만, 일단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는 내게 글 후반부를 가필하는 것이 가능하겠냐고 문의했다.

다른 프로젝트 일정 때문에 경황이 없었던 데다, '후반부에 논지가 불분명했나보다' 하는 생각에 '약간의 교정은 있어야 하나보다' 하고 동의했다.

그날 밤 늦게 컴퓨터를 켜고 프레시안에 접속해보니 내가 보냈던 '<디워> 논란, 비평가들에 한 마디'라는 제목이 '[기고] 대중은 애국주의가 아니라 '영구의 도전'에 열광했다'라는 제목을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글 후반부에는 내 문장이 아닌 프레시안 편집자의 문장이 약 두 세 단락 정도 포함되어 있었다.

내 예상을 넘어가는 분량이었다.

그것도 아주 논쟁적이었다.

매우 불쾌했다.

글 말미에 썼던 것처럼, 나는 논쟁 구도 자체에 문제 제기를 했었는데, 정작 내 글은 매우 논쟁적인 글이 되어버렸다.

또한 내 글은 프레시안에 실렸던 이형기의 글에 대한 "반론"으로 명시되어 있기까지 했다.

본문 중간 중간 소제목들도 내가 보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수정되어 있었다.

순간, 그 기자의 가필 문의를 거절하고 내가 직접 수정을 했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나도 한 때 매체에 있었던 사람이기에, 조금은 이해한다.

논쟁이야말로 매체를 살리는 힘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필자의 의도를 완전히 왜곡하는 편집은 윤리적인 문제인 것 같다.

나는 본의 아니게 진중권 선생의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이 됐고, 오히려 변희재 편에 선 사람이 되어버렸다.

기사에 달린 댓글도 확연히 두 그룹으로 갈렸다.

한 쪽에서는 개념글이라는 칭찬이 대세였고, 다른 한 쪽에서는 대중추수주의자라는 비판도 있었다.

우스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진중권 선생 의견에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고 해도, 관객을 비롯한 매체수용자들이 애국주의 이외의 지배이데올로기에 포섭된다는 점에서는 그와 대동소이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네티즌들은 내가 진중권 선생 생각에 반기를 드니까, 단지 그게 맘에 들었던 것 같다.

며칠 후에는 진중권 선생이 어느 라디오 방송에서 인터뷰했던 내용이 프레시안의 기사로 편집되어 실렸다.

제목은 "심형래가 마이너리티인가"라는 것이었다.

이 제목은 내 글에 대한 반론으로 프레시안이 편집한 것이었다.

기사 중간에는 내가 쓰지 않은 내 글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었다.

나 역시 심형래가 마이너리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마이너리티 감수성이 있어서 그게 선전됐을 뿐이다.

어쨌든 프레시안의 편집 태도는 매우 불쾌한 것이었다.

나는 그 기사가 실릴 때쯤, 가필되었던 내 글을 직접 재수정해서 프레시안에 보냈다.

글이 재게재되긴 했지만, 인터넷에떠돌고 있는 글은 내 손아귀에서 이미 떠나 있었다.

애초에 논평 글을 쓰면서 상처받지 않고자 하는 생각이었는데, 결국에는 전혀 뜻밖의 부분에서 상처를 받게 되었다.

의도치 않게 나는 대중문화 비평이 아니라, 대중적인 문화비평을 하게 된 셈이었다.

결국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또 속을 삭히는 수밖에...

2007.8.18

Posted by 김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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